돈이 재료인 사람들

byStranding Credit

여기까지 정부가 지원기업을 고르고, 연구과제를 정하고, 사업 자금을 나눠주고, 창업을 돕고, 온 국민을 창업으로까지 불러내는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내가 정부는 그만하고, 반대편에 있는 시장이 해야 한다고만 주장하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시장만이 답이라고 말하려던 것이 아니다. 시장에만 맡기면, 갓 태어난 기업은 자금을 구하지 못해 말라죽는다. 초기 창업 기업은 은행에 담보와 신용을 제공하기 어렵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은 시작도 못 하고 빼앗길 것이다. 그래서 투자에 기대야 하는데, 투자마저 초기를 외면한다. 창업 기업의 사업은 위험이 크고, 언제 회수할지 모르고, 팔릴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시장은 냉정해서, 지금 당장 돈이 될 것에 돈을 쓴다. 이것이 시장 실패다.


당연히 정부의 역할이 있다. 시장이 외면하는 그곳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결국 내가 걱정한 것은 정부가 나선 것 자체가 아니다. 정부의 역할이 너무 커지고, 그것이 커져서 시장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것에 우려조차 없다는 걱정이었다. 시장이 스스로 해야 할 일마저 정부가 가로챈 것, 마중물을 부어야 할 자리에서 물길까지 틀어버린 것. 그 부작용이 있는데 그것을 염려하는 사람이 없다. 정부의 일과 돈이 늘어만 가고 있는 것이 나는 두렵다.


그렇다면 정부가 지켜야 할 선은 어디일까. 이것을 확인하려면, 먼저 시장이 원래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봐야 한다. 그 초기 창업을 돕는 일에는 원래 전문가가 있다. 그리고 릴레이로 이어지는 투자 생태계의 첫 주자 액셀러레이터(AC)이다. 갓 태어난 기업을 발굴해 될성싶은 곳을 골라내고, 자기 돈을 투자해서 키운다. 가장 먼저, 가장 위험한 씨앗 단계를 맡는다. AC가 씨앗을 틔우면, 다음 주자인 벤처캐피털, VC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어느 정도 검증된 기업에 큰돈을 넣어 크게 키우는 것이 VC의 몫이다. AC가 씨앗을 심고, VC가 나무로 키운다. 이 릴레이가 순조로울 때, 창업 생태계가 활발하게 순환한다.


먼저 살펴볼 AC는 우리말로 창업 기획자라고 번역한다. 이들을 부르는 우리말 이름이 그 오해를 그대로 담고 있다. 벤처캐피털에는 자본이라는 말이 들어가는데, 액셀러레이터의 우리말 이름에는 투자도 자본도 없다. 창업을 기획하는 자이다. 이름부터가 이들을 투자자가 아니라, 창업을 도와주는 기획자로 규정하고 있다. 원래 AC는 투자자다. 그 투자자가 경험이 부족한 창업자에게 수익을 내기 위한 방편으로 보육한다. 그런데 투자가 빠진 이 이름에서 정부가 창업을 기획하고 보육하는 일로만 보는 것이 드러나는 것 같다.


게다가 투자자 측면에서도 AC는 오해를 받고 있다. 바로 돈으로 사업을 하니 회사 자금이 많을 것으로 오해한다. 특히 정부 관계자들은 수억씩 투자하는 AC의 모습에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러나 AC에게 투자금은 운영비가 아니다. 금을 세공하는 사람이 금을 다룬다고 부자가 아니듯, 투자자에게 돈은 그저 재료일 뿐이다. 귀한 재료지만 애초에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다. 그 돈을 기업에 투자해, 은행 이자보다 나은 수익으로 되돌려 받는 것이 그들의 목표이자 기술이다. 투자할 돈의 상당 부분은 빚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돈은 늘 부족한 재료이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 AC는 가난하다. 2024년 기준 국내 AC 463곳의 자본금 평균이 중윗값이 약 2억 2천만 원이었다. 평균은 20억이지만, 그것은 소수의 큰 회사가 끌어올린 숫자일 뿐, 중간쯤 되는 AC는 자본금 2억 남짓의 영세한 회사다. 그중 셋에 하나는 자본 잠식 상태였고, 등록된 AC의 다섯 중 하나는 아예 투자 실적이 없어 개점휴업이나 다름없었다. 창업 생태계에서 가장 먼저 뛰어야 할 주자가, 정작 창업 기업보다 힘들다. 원래 이어달리기도 가자 빠른 사람을 첫 주자와 마지막 주자로 내세운다. 우리의 첫 주자는 너무 부실해서 릴레이 전체가 흔들린다. AC가 창업의 씨앗을 제대로 틔워야 VC가 바통을 받는데, 싹을 틔우는 일부터 난관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음 주자인 VC마저 씨앗을 외면한다. 2025년, 전체 벤처투자는 늘었는데 업력 3년 이하 초기기업에 간 투자는 오히려 20퍼센트 줄었다. VC는 이미 수익을 증명한 후기 기업에만 몰렸다. 극초기에 투자하는 개인인 엔젤투자자도 4년 사이 그 수가 반토막이 났다. AC는 가난해 씨앗을 못 키우고, VC는 다 자란 나무에 투자하니, 그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구간이 생긴다. 창업 3년에서 5년, 죽음의 계곡에서 릴레이의 바통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이 릴레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첫 주자인 AC를 키워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재료가 부족하니 재료를 대주고, 그들이 자기 돈으로 투자해 수익을 내며 자립하도록 판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정부는 팁스 운영사 자격을 주고, 개인투자조합에 세제 혜택을 얹고, 모태펀드로 출자도 했다. 하지만 그 키우는 방식에는 문제가 있었다.


바로 투자자를 세금으로 돕는 일에는 명분이 서지 않는 것이다. 가난한 창업자를 돕는다면 누구도 토를 달지 않지만, 돈으로 돈을 버는 투자자를 국민 세금으로 지원한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니 정부는 AC를 투자자로서 키우기가 껄끄러웠을 것이다. 명분이 있는 방법은 AC가 자립하도록 투자의 판을 열어주는 대신, 정부의 창업지원 사업을 대신 운영하는 일을 맡긴 것이었다. 그렇게 투자자였던 AC는 정부 사업의 대행자가 되어갔다. 남이 투자한 창업 기업에 대한 보육이 성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자기 자식을 보육원에 맡긴 셈이다. 게다가 정부는 그 창업을 키우는 일의 상당 부분을 직접 하기 시작했다.


전국에 창업보육센터가 있고 대학마다 기술지주회사가 있다. 지역마다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있고, 창업을 진흥하는 기관들이 있다. 이들이 하는 일이 바로 창업 발굴과 보육, AC가 해야 할 그 일이다. 그런데 이 기관들은 AC와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이들은 수익으로 사는 곳이 아니다. 정부 돈으로 운영된다.


대학 기술지주회사를 들여다본 어느 대학의 학위논문은, 대부분의 기술지주회사가 소규모 자본금과 인력 부족으로 정부 사업비로 운영을 유지한다고 적었다. 기술지주 중에 수익을 내는 곳은 전문성이나 산업계 네트워크라는 강점이 있는 소수에 불과했다. 대다수는 정부 돈을 받아 근근이 유지하며,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수익으로 살지 않는 AC는 기업이 성공해도 그들의 이익이 없고, 망해도 손해가 없다. 그러니 그들의 목표는 수익이 아니라 수치가 된다. 창업과 보육 건수, 투자자 추천 건수. 그 숫자만 채우면 잘한 것이 된다. 정부가 민간에 넘겼다는 팁스라는 사업조차, 운영사를 평가하는 지표가 추천 건수와 선정률이다. 그 기업이 살아남았는지, 수익을 냈는지 보다 몇 개를 추천하고 몇 개가 뽑혔는지를 센다. 실제로 팁스 연구개발 자금의 회수율은 절반을 겨우 넘겼다. 수익성으로는 성공한 사업이 아니다.


좋은 기술을 선정해 사업화하고, 그 수익으로 다음 창업에 다시 투자하는 순환은 남의 돈으로 할 수 없다. 자기 돈을 건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운영비를 주고 남의 돈으로 하는 투자시장은 더 이상 순환하지 않는다. 그 창업 기업은 망하든가, 성공해도 수익은 기업의 몫으로 사라진다. 앞서 보았던 생존율 33퍼센트가 이제 조금은 보이지 않는가?


다음 주자인 VC 쪽은 어떨까. VC가 바통을 받으려면, 앞 주자가 제대로 틔운 씨앗을 넘겨줘야 한다. 자기 돈을 건 투자자가 시장을 보고 골라 키운 싹이라면, VC는 그 판단을 믿고 큰돈을 건다. 서로 위험을 분담(햇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씨앗의 상당수는 그렇게 자라지 않았다. 정부의 심사로 뽑혀 지원금으로 자랐다. 그런 싹은 시장이 원해서 자란 것인지, 지원이 있어 버틴 것인지 알 수 없다. 옮겨 심으면 뿌리내릴지, 지원이 끊기는 순간 시들지 모를 싹에 VC는 온전히 리스크를 감당해야 한다. 앞에서 초기 투자가 20퍼센트 줄었다고 했다. 정부가 억지로 틔운 씨앗이라면, VC가 투자를 주저했을 것이라는 당연한 예측이 된다.


그래서 나는 정부가 그 끊긴 자리를 다시 이으려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VC에는 모태펀드로 자금을 대고, AC에는 팁스라는 사업을 맡겼다.


팁스는 매우 성공한 정바카라으로 칭송받는다. 민간이 유망 기업에 먼저 투자하고 추천하면, 정부가 R&D 자금을 얹는 방식이다. 정부가 아니라 민간이 기업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가장 시장 친화적인 정부 사업으로 평가받는다. 2013년부터 10년간 2,800개가 넘는 기업을 지원했고, 그 기업들이 유치한 후속 투자가 13조 원에 이른다. 숫자를 보면 눈부신 성과다.


그런데 지금까지 모든 것을 의심해 온 우리는 그 성공의 진위를 확인해 보고 싶어진다. 팁스가 성공으로 판정하는 조건 가운데 가장 흔히 쓰이는 것이 후속 투자 유치다. 즉 팁스 기업이 성공했다는 것은, 대개 다음 투자자에게서 또 돈을 받았다는 뜻이다. 시장에서 물건을 팔아 수익을 냈다는 것이 아니라, 다음 투자를 유치했다는 것이다. 13조 원이라는 숫자도 그렇게 쌓였다. 시장이 사준 돈이 아니라, 투자가 투자를 부른 돈이다. 릴레이로 치면 결승선에 닿은 것이 아니라, 바통을 다음 주자에게 넘긴 것을 성공이라 부르는 셈이다.


게다가 그 후속 투자가 온전히 시장의 판단이었는지도 알 수 없다. 팁스에 선정되었다는 것은 정부와 민간 모두 투자한 기업이라는 보증서가 된다. 다음 투자자는 그 보증서를 보고 투자한다. 그러니 팁스 기업이 후속 투자를 받는 것은, 시장의 평가인지 팁스의 간판 덕인지 알기 어렵다. 팁스가 후속 투자를 쉽게 만들고, 그 후속 투자로 다시 팁스의 성공을 증명한다. 이것은 순환논증의 오류이다.


성공의 기준이 이러하니, 기업을 대하는 방식도 여기에 맞춘다. 운영사가 추천한 기업이 후속 투자를 받아야 운영사의 성적이 오른다. 그래서 일부 운영사가 기업에 후속 자금을 빨리 구해 오라고 압박하고, 과한 지분을 요구한다는 논란이 있었다. 기업을 시장이 아닌, 다음 투자자에게로 떠민 것이다. 팁스 자금은 성장의 마중물이라 했는데, 어느새 팁스 선정 자체가 목표가 되었다. 창업 여섯 달 만에 누구나 받고 싶어 하는 돈, 그것이 팁스가 되었다.


그리고 이 성공을 성공이라 부르는 이들이 팁스를 대표 사업으로 운영하는 정부, 팁스로 먹고사는 운영사, 팁스 자금을 받은 기업이다. 셋 다 팁스가 성공이어야 하는 이들이라는 점에서 나는 그 성공이라는 것에 믿음이 안 간다. 정부는 그 성공을 이유로 팁스 예산을 3년 사이에 두 배로 늘렸다. 이들은 성공이라 부르며 세금으로 판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팁스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은 아니다. 민간이 고르게 한 취지는 옳다. 다만 성공의 기준을 시장이 아니라 후속 투자에 세우는 그것이 틀렸다. 시장을 향해야 할 릴레이가, 투자가 투자를 부르는 순환이 되어 투자금으로 버티는 회사가 될까 우려스럽다. 하지만 또 투자 프로그램이 투자를 목표로 삼은 것이 뭐가 문제냐고 하면 딱히 할 말이 없기도 하다. 이 팁스 안에 있는 정부, 운영사, 기업이 모두가 만족하고 있으니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


모태펀드도 사정은 비슷하다. 정부가 기업을 직접 고르지 않고, VC에 자금을 대어 그들이 자기 돈을 보태 투자하게 하는 방식이니, 앞에서 설명한 것들보다 낫다. 그런데 지금 한국 벤처 자금의 약 20퍼센트가 정부에서 나오고, VC의 3분의 2가 정부 출자에 매달린다고 한다. 미국에서 정부가 벤처투자에 관여하는 비중은 3퍼센트 남짓이다. 미국은 정말 마중물만 붓고 물러났는데, 우리는 20퍼센트를 붓고도 손을 떼지 못한다. 어느 언론에서는 ‘돈은 늘었는데, 모험은 줄었다. 정부 돈을 받은 이들이 정부가 정한 분야로만 움직이고, 정부에 보고할 실적에 쫓겨 안전한 투자만 하게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상황만 보면 모태펀드는 VC를, 팁스는 AC를 살리는 일이다. 그런데 그 결과로 VC는 정부 돈에 묶여 모험 수익을 잃었고, AC는 정부 사업 운영으로 먹고살며 투자수익을 잃었다. 하이 리스크는 줄었지만, 하이 리턴도 줄었다.

만약 정부가 창업을 직접 고르지 않았다면, 자기 돈을 건 AC가 될성부른 씨앗의 싹을 틔웠을 것이다. 그 검증된 씨앗을 VC가 믿고 받았을 것이고, 이 릴레이는 생태계의 선순환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모태펀드도 팁스도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가 직접 뛴 릴레이로 바통이 끊기자, 정부 돈으로 메운 것 같다. 병에 약을 주었지만, 계속 다른 병이 생기며 약물 의존증이 되고 말았다.


마중물을 붓는 것과 물길을 트는 것은 다르다. 재료를 주는 것과, 그 재료로 무엇을 만들지 정하는 것은 다르다. 정부는 실패한 사업에는 손을 떼고, 성공한 사업은 판을 키우곤 한다. 하지만 그것이 시장이라면, 그 반대여야 한다. 정부가 지켜야 할 선은 거기에 있다. 시장의 실패를 지원하고 극복해야지 시장의 성공을 정부 사업에 편입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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