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와 비색채

by함빛

그는 날 소유하기를 원한다

나는 그에게 나를 주고 싶어 한다

그 관계에서 소유란 약속된 절차이며 으레 그러한 관계


그는 날 해치기를 원한다

나는 그가 주는 고통을 원한다

그는 나의 복종을 원하지만 동시에 반항을 기뻐하고

나는 그의 소유권에 항복하지만 동시에 더 깊은 소유를 원한다

그렇다면 이 속에서 거머쥘 영광은 누구의 것일까


어떤 이들에게 복종이란

삼류 소설에서 등장하는 의미심장하거나 뻔한 씬

혹은 종교적이며 폐쇄적인 비상식적인 것

그들에게 복종이란 단어가 재미없고 몰상식한 것만큼이나

나에게 그들은 색도 없고 향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것


그러므로 내 세계는 온통 흑백이었다


가끔 누군가에게서 색깔을 발견하면

그 색깔이 정말 그에게서 나오는 색깔인지

아니면 내 외로움이 빚어낸 허상인지를 가늠하느라

눈을 게슴츠레 뜨고선

호흡조차 가지런히

그대 누굴까, 하고선


그러므로 내 세계는 온통 흑백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회색의 희끄무레한 것이 방을 비추이고

밖으로 나가면 하얗거나 까만 그림자가 인사하고

아무 맛 나지 않는 것을 먹고

아무 향 나지 않는 것을 맡고

나는 살아간다 살아간다 살아있는 것은 무엇인가

지독히도 외로웠다


그는 날 소유한다

나는 그에게 종속된다

그는 나에게 권리를 부여한다

나는 그 권리를 누린다

그것은 오직 복종할 권리


그와 나의 관계는 색채, 빛깔, 밝고 맑음

향이 있다면 달고 뭉근한 것이 오래도록 남아

씻어도 씻어지지 않고

곁을 맴돌다가

어느 때에든지 들이마실 수 있는 향일 것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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