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후불제 인생I
유독 선불로만 결제되는 인생이 있다. 사용해 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환불이 가능한 물건과는 달리, 어떤 선택은 결과를 맛보기도 전에 값을 치른다. 너무 쉽게 선불인 것들을 결제한다. 젊음, 시간, 믿음과 같은 것들은 통장 잔고처럼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나 역시 그렇게 살았다. 먼저 쓰고, 나중에 바카라임지는 태도였다.
주로 선불로 사용하는 것들은 처음엔 가벼웠다. 밤을 새우는 대가로 내일을 맡기고, 무리한 욕심으로 몸을 담보 잡히고, 사랑이라는 고금리 이익에 눈이 멀어, 자신의 영혼을 무담보로 넘겨준다. 그때마다 인생은 아무런 경고를 보내지도 않는다. 영수증을 발급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공짜로 얻은 것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선불금은 돌려받지 못할 시간과 감정으로 소모되었다.
이미 지불한 선불금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도 없었다. 남은 것은 피로와 공허였다. 젊음은 쏜살 같이 흘러갔고, 몸은 쉽게 회복하지 못했으며, 사랑은 흘러갔는지 남은 게 없었다. 우리 인생에는 환불이 불가능한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한 번 사용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물론, 가장 큰 선불 요금은 내 인생이었다. 점잖은 척 넘긴 나이, 겨우 버텨온 육신, 뼈아픈 마음의 상처를 껴안았던 시간이었다. 돌아보면, 다시 돌려받을 수도 없는 것들이 미련스럽게 꿈틀대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남은 선택은 하나였다. 더 이상 나를 헐값에 선불하지 않는 것. 내 삶의 분명한 사용처를 정하고, 나의 습관화된 작은 결정들을 바꾸어 나가는 일이었다.
선불금은 여전히 환불되지 않는다. 과거의 선택은 수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앞으로의 결제 방식은 바꿀 수 있다. 인생은 선불을 요구하지만, 그 쓰임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더는 헐값의 할부로 나를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남은 선불금은 오직 행복한 삶을 지피는 화력으로 쓰면 된다. 한 번 쓰면 환불이 없는 선불금이지만, 후회하지 않는 곳에 사용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