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후불제 인생I
사람들은 마음보다 머리로 계산부터 한다. 관자놀이를 파고드는 송곳 같은 두통이나, 명치 끝에 맺힌 딱딱한 덩어리가 잡히는 순간에도, 아직은 견딜 수 있고 괜찮다는 계산 속에 머무른다. 몸은 관리의 대상이고 품목일 뿐이었다. 통증과 슬픔은 가끔 겪어내야만 할 변수였다. 그저 내 몸은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마르지 않는 통장이었다.
그런 탓에 삶의 선택 앞에서 언제나 이익과 손해를 따지고, 몸은 계산서 뒤로 늘 밀려났다. 몸과 맞닿지 못한 삶의 숫자들은 깔끔하지도 않았다. 몸이 동의하지 않은 결정에도, 마음이 먼저 반응하곤 했다. 잠들지 못하는 새벽 세 시의 익숙한 천장, 천근만근 내려앉는 눈꺼풀은 대수롭지 않았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하지만 몸은 조용히 기록을 남겼다. 무시했던 피로, 삼켜버린 고통, 미뤄둔 고민까지도 모두 누적되는 상태였다. 내 삶 속에서의 효율과 성과를 위해 깎아낸 몸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장부 위에 하나씩 기록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도 계속해서 거짓말을 삼켰다.
“지금은 버틸 때야. 나중에 다시 회복하면 돼”
몸의 신호는 경고가 아니라 잡음으로 취급했다. 세면대 위의 수북이 빠진 머리카락, 셔츠 깃이 죄어오는 목의 뻣뻣함, 젓가락질이 서툴러진 손떨림이 다가와도, 그 계산서에 제대로 동의한 적이 없었다. 이런 상황들이 쌓이면, 몸은 어느 날 갑자기 제동을 걸었다. 스스로 멈춰버렸다. 평소 같으면 무시하고 넘어갔을 작은 자극에도 심란하게 요동을 쳤다. 그제야 컨디션보다 내 삶 속에서 정산해야만 할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이미 몸은 오래전부터 경고장을 보냈다. 다만 내가 듣지 않았을 뿐이다. 오직 버틴 시간만큼, 참은 감정만큼, 무시한 신호만큼 반대급부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렇다고 몸은 단 한 번도 빚을 탕감해 준 적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때가 되면, 자비가 없는 고리대금업자였다. 마음이 허락하지 않던 휴식을, 몸이 강제로 요구하는 날이 온 것이다. 몸이 먼저 내민 계산서들, 그제야 자기 삶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오래 사는 삶의 기술은, 몸으로만 버티는 데 있지 않다. 그 무거운 삶의 청구서를 읽어내려갈 때, 무너진 삶의 수평이 다시 균형점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