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대한민국에 단 두 개뿐인 학과라면서요

전공은 환불이 안 되나요: N회차 이직과 비전공자의 발버둥

byNoA


내가 입학한 학과의 이름은 '운동처방학과'였다. 지금도 사람들에게 말하면 고개를 갸웃거리며 "헬스 트레이너 키우는 곳이냐"고 묻는 이 낯선 학과는, 당시 대한민국을 통틀어 단 두 개 대학에만 개설되어 있었다. 그마저도 나는 ‘1회 입학생’이었다.


선배라는 존재가 아예 없는 대학 생활이었다. 족보도, 조언을 구할 사람도, 길을 먼저 걸어간 이의 등판도 없었다. 강의를 맡은 교수진조차 어디선가 급조된 듯 전공 분야가 미묘하게 엇갈려 있었고, 학교의 교육 인프라는 처참했다. 전공 강의실은 학기마다 이 건물 저 건물로 쫓겨 다니듯 바뀌었고, 학과 사무실마저 철새처럼 캠퍼스를 떠돌았다.

그럼에도 우리를 버티게 한 건 기묘한 자부심이었다. "전국에 딱 두 개뿐이다. 너희가 1회 졸업생이니 앞으로 이 분야의 개척자가 될 거다." 교수들도, 주변 어른들도 입을 모아 장밋빛 미래를 읊어댔다. 어느 순간 나 역시 술자리에서 후배들에게 그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엉성한 커리큘럼과 부실한 인프라를 가리기 위해 우리 모두가 단체로 걸려든 일종의 집단 최면이자 세뇌였다.


수능 점수와 내신 등급의 타협 끝에 밀려 들어온 학과였지만, 대학 공부는 묘하게 내 적성에 맞았다. 고등학교 시절 바닥을 기던 성적이 무색하게 학과에서는 늘 '탑3' 안에 들었다. 주입식 암기에는 젬병이었던 내가 흥미를 붙이자마자 동기들 사이에서 '노 박사'라는 그럴듯한 별명까지 얻었다.

어느 날, 전공 주임교수가 나를 연구실로 불렀다. "노아야. 이번에 우리 학과 대학원이 신설되거든. 네가 1호로 진학해보는 게 어떻겠니? 너 정도 실력이면 1회 졸업생이 대학원에 가서 나중에 전임교수 자리까지 꿰차는 그림이 딱 나오잖아. 내가 끝까지 밀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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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일무이한 학과의 전임교수라니. 영어라는 거대한 장벽이 눈앞을 가로막긴 했지만, 그 외에는 두려울 것이 없어 보였다. 어차피 이 분야의 전공 지식만큼은 내가 대한민국 상위 0.1%일 터였다. 왜냐하면 우리 학과가 사실상 유일했으니까.

그 길로 부모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대학원에 가겠노라 선언했다. 교수가 전임교수까지 바카라임지고 밀어주겠다고 했다며, 20대 초반 특유의 근거 없는 확신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현실은 차가웠다. 나는 98학번이다. IMF 외환위기가 나라 전체의 숨통을 틀어쥐고 흔들던 시절, 대학이라는 온실 속에서 철없이 낭만을 즐기던 청춘이었다. 나라가 겨우 산소호흡기를 떼고 숨을 쉴까 말까 하던 그 위태로운 시기에, 넉넉지 못한 우리 집안 형편으로 대학원 학비까지 감당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욕심이었다. 부모님의 깊은 한숨 앞에서 나의 거창했던 '교수 플랜'은 소리 없이 바스러졌다.


그날 이후 삶의 갈피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졸업하고 나면 난 대체 뭘 해서 밥을 벌어먹고 살아야 하지?'라는 본질적인 공포가 밀려올 때마다 소주 한 모금으로 목구멍 뒤편에 쑤셔 넣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엄습할 때 내가 찾아간 곳은 도서관이 아니라 어둑한 당구장과 자욱한 담배 연기 가득한 PC방이었다. 회피와 방황의 시간은 잔인할 만큼 빠르게 흘렀고, 정신을 차려보니 4학년 2학기 마지막 수업의 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동기들이 하나둘 짐을 싸서 떠나고, 텅 빈 캠퍼스를 영혼 없이 배회하던 나를 그 교수가 다시 불러 세웠다. "노아야, 너랑 몇 명만 어디 취업하면 이번에 우리 학과 취업률 100% 찍거든? 마침 저기 모 병원에서 우리 과 애 하나 보내달라는데, 가볼래? 내가 추천서 써줄게."


그것이었다.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던 개척자의 낭만도, 학문의 탑을 쌓겠다던 '노 박사'의 포부도 아니었다. 단지 학교 평가 지표를 채우기 위한 '취업률 100%'라는 숫자의 마지막 퍼즐 조각으로 내 첫 온라인 게임이 결정된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집에서 덜컹거리는 시내버스를 타고 1시간을 가야 하는 어느 병원에 첫 발을 내디뎠다. 대학 4년 내내 외웠던 해부학 용어와 운동 처방 이론들은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거짓말처럼 아무런 쓸모가 없어졌다. 그것이 내 인생을 뒤흔든 'N회차의 궤도 이탈' 중, 아주 작고 초라했던 첫 번째 탈선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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