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은 환불이 안 되나요: N회차 이직과 비전공자의 발버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톱배우의 대학 전공은 뜻밖에도 동양화였고, 밤을 새워 마감하는 스타 웹툰 작가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수재였다. 주말 저녁 안방극장을 주름잡던 유명 개그맨은 어느 날 신내림을 받고 박수무당의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사실 멀리 갈 것도 없다. 당장 당신의 명함과 졸업장을 나란히 바카라상 위에 올려놓아 보라.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라. 내 아내도, 퇴근길에 마주친 단골 술집 사장님도, 20년 지기 친구 녀석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는 보통 사람들의 대학 전공과 현재 밥벌이의 일치율을 계산해 보면 10%를 넘기기조차 버겁다. 나 또한 그렇고,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당신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잠시 시간을 돌려 당신이 그 전공을 선택하던 10대 후반의 어느 계절로 돌아가 보자. 당신의 나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것은 최소 10년, 길게는 20년 전의 일이다. 묻고 싶다. 10년 전, 20년 전의 당신이 과연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하나로 세상을 조종하고,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자리를 넘보며, OTT 플랫폼이 방송 3사를 집어삼킨 오늘날의 생태계를 단 1초라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세상에서 가장 용하다는 점쟁이도, 미래학을 연구하는 석학도 내다보지 못한 시대를, 고작 교복을 입은 열아홉 살의 아이가 무슨 수로 내다본단 말인가. 10대 후반의 우리가 내린 전공 선택이란 결코 남은 60년의 인생을 보장하는 정교한 설계도가 아니었다. 조금 더 냉정하게 찔러보자면, 그것은 단지 그 시절의 얕은 유행과 입시 학원이 쥐여준 배치표, 그리고 수능 점수와 내신 등급의 타협점에 불과했다. 획일화된 주입식 교육의 폐해는 반세기가 넘도록 지겹게 지적되어 온 레퍼토리지만, 앞으로의 반세기 동안에도 이 무의미한 도돌이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앞서 말한 배우는 미술을 전공했지만 숨길 수 없을 만큼 얼굴이 찬란하게 예뻤을 뿐이다. 의대를 나온 웹툰 작가는 공부 머리보다 손재주가 먼저 깨어났고, 수술용 메스를 쥐면 덜덜 떨리던 손이 드로잉 펜을 잡는 순간 마법처럼 날아올랐을 뿐이다. 개그맨이었던 이는 이미 몸주를 모셔야 할 기구한 팔자가 운명처럼 등을 떠밀었을 따름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저마다의 고유한 재능(Talent)이 있다. 문제는 그 재능이라는 녀석이 대체 언제 깨어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대학 간판을 고르고 원서 접수 버튼을 누르기 전에 그 재능이 번쩍 눈을 떠준다면야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겠지만, 현실은 그리 친절하지 않다. 설령 재능을 일찍 발견한다 한들, 스스로 그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전공'이라는 족쇄 하나 때문에 10년, 20년 동안 붙들고 버텨내는 것은 일종의 고문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학 간판과 전공이라는 허울에 너무 아등바등 매달릴 필요는 없다. 남들이 정해준 '전공 트랙'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강박은 결국 제 손으로 자신의 목을 조르는 밧줄이 될 뿐이다.
물론 대학 4년 동안 강의실과 도서관을 오가며 배운 시간들이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 시절에 익힌 작은 기술, 과제를 마감하며 배운 버티기, 동기들과 부딪히며 깨달은 삶의 지혜는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훌륭한 밑거름이 되었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다.
그 지혜와 밥벌이의 기술은, 반드시 ‘그 대학’, ‘그 전공’이 아니었어도 상관없었다는 점이다.
이 바카라은 전공이라는 과대포장된 상자를 과감히 뜯어버리고, N회차의 이직과 궤도 이탈을 거치며 맨몸으로 자신만의 밥벌이를 발명해 온 한 비전공자의 솔직한 생존 기록이다. 정해진 정답의 궤도를 벗어나 불안해하는 모든 이들에게 담담한 안부를 건넨다.
우리가 걷는 길에 정해진 규격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그리고 비전공자로 살아가는 지금, 당신과 나의 오늘은 생각보다 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