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은 뒤, 더 맑음
식탁 위에 놓인 말들이 눅눅하다
비구름이 내려앉은 방 안
우리는 서로의 눈동자 속에 고인 천둥을 읽는다
낮게 깔린 침묵이 장마처럼 무거워질 때
서로를 건너편에 둔 두 사람 사이로
차가운 공기가 지나간다
누군가 던진 마른번개처럼 떨어진 말에
오래된 안부의 지붕이 들썩이고
서로의 가슴에 그은 빗금은
본래 푸르던 하늘을 갈기갈기 찢어놓지만
기억하라, 찢긴 자리에서만 공기는 비로소 숨을 쉰다는 것을
폭우가 휩쓸고 간 거실 바닥엔
서로의 살에서 떨어져 나온 젖은 비늘들이 가득하다
우리는 등을 맞대고 그 비늘을 말리며
각자가 가진 어둠의 짙음을 가늠한다
가장 캄캄한 밑바닥에 닿아서야
비로소 별들이 제 눈동자를 닦으며 올라온다
비에 젖은 땅이 단단해지는 것은
흙이 물을 이겨냈기 때문이 아니라
물을 끝까지 받아내어 제 몸의 일부로 삼았기 때문
내일 아침, 베란다 너머의 하늘이 유독 시리게 푸르다면
그것은 우리가 어젯밤
서로의 먹구름을 남김없이 마셨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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