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예습
온라인카지노 작가님의 글 속에 조카(언니 딸)와 같은 이름이 등장해서 잠시 그리운 추억에 잠겼다.
엄마가 작명소에서 조카의 이름을 지어 왔을 때, 난 속으로 반대했었다.
예쁜 이름이긴 하지만, 너무 흔하고 여자여자한 이름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형부와 언니가 몇 개의 후보 중에 고른 이름이었고, 내가 끝까지 반대할 근거도 권리도 없었다.
난 전에도 썼던 기억이 나지만, 아기와 어린이를 엄청나게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었다.
친가 쪽은 아빠가 고모 셋에 막내아들이라 사촌들이 아빠랑 별로 차이가 안 날 정도의 어른들 밖에 없었고, 외가도 사촌들이 나보다 조금 위거나 비슷한 연령대라서, 난 자라면서 아기나 어린이를 가까이서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전철에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아기나 아이들이 있으면 눈을 피하거나 자리를 피했다.
무서운 게 아니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
특히 아기는 울음을 터트리진 않을까, 맑은 눈으로 응시하는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내 사악한 속마음을 들키진 않을까 전전긍긍했던 것 같다.
이런 내가 아기와 어린이에 대한 어색함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조카들, 언니의 두 딸 덕분이다.
언니는 나와 달리 엄마의 극성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형부와 맞선을 보고 결혼에 골인했다.
연애 한 번 안 하고, 엄마 말대로 순순히 조용히 맞선 보고 결혼을 한 언니가 난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언니는 형부와 결혼하고 30여 년을 알콩달콩 누구보다 깨가 쏟아지게 잘 살고 있다.
조카가 태어났을 때, 난 꼬물거리는 작은 생명체를 보면서 세상에 어찌 이렇게 작고 신비한 존재가 있을까... 감탄했다.
당시엔 언니가 우리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어서 언니가 자주 집에 조카를 데리고 왔다.
조카는 우리 집에서 첫 조카이고 유달리 외탁을 해서(우리 엄마의 축소판) 우리 가족의 사랑이 집중되었다.
너무 귀여웠다.
다른 집 아이는 울까 봐 쳐다보지도, 부서질까 안지도 못했던 내가 조카를 반짝 안아서 어르기도 하고 나를 보고 방글방글 웃기라도 하면 예뻐서(얼굴이 아니라 존재가) 다리에 힘이 다 빠질 정도였다.
뒤이어 연년생으로 태어난(우리 세 모녀는 출산을 모두 연년생으로... 유전인가요?) 두 번째 조카도 예뻤다.
언니의 딸들은 언니를 닮아 붙임성도 좋고 다정했다.
조카들이 초등학생이 되기 전에 한국을 떠난 나는 조카들의 입학식에 맞춰 귀국을 했고, 조카들이 기다리는 언니 집에 일정 기간 머무르며 함께 뒹굴었다.
밤에 잘 때는 그림바카라도 읽어 주고, 이불속에서 도란도란 같이 이야기도 나누었다.
내가 떠나는 날 아침, 일찍 공항에 가기 위해 바스락거리고 있으면 조카들은 잠이 깨어 현관까지 따라 나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날 배웅해 주곤 했다.
부모와 형제 외에 누군가를 이렇게 조건 없이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고, 감동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어느덧 그 조카들도 예쁘게 성장해, 큰 조카는 결혼해 잘 살고 있고, 둘째 조카는 멋진 싱글 라이프를 즐기며 청춘을 구가하고 있다.
그 사이 오빠와 남동생의 아이들도 태어나, 난 두 명의 조카에게는 "이모", 세 명의 조카에게는 "고모"로 불리게 되었다.
오빠와 남동생의 아이들은 내가 이곳에 있을 때 태어나서 그런 건지, 아니면 "고모"라는 자리가 그런 건지 모르겠으나 언니의 딸들과는 뭔가 다름을 느낀다.
언니도 자연스럽게 우리 아이들을 "내 새끼들"이라고 하는데, 오빠와 남동생의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언젠가 한국 드라마에서 중년의 아주머니들을 친근하게 부를 때 "이모!"하고 부르는 장면을 봤다.
왜 "고모"가 아니고 "이모"일까.
실제로 나도 "고모"들이 용돈도 많이 주고 하셨지만, 정서적 거리는 "이모"쪽이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왜일까?
실제로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나 혼자 또 멋대로 가설의 세계에 빠져든다.
한국은 결혼을 해도 아버지의 성을 그대로 따르니까, 딸들은 결혼을 해도 평생 같은 성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엄마와 성이 같은 이모에게 아이들은 조금 더 친근감을 느끼는 건 아닐까... 싶다.
오빠와 남동생의 아이들이 소중하고 예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조카들 옆에 새언니가 서 있느냐, 언니가 서 있느냐에 따라 내가 조카들을 대하는 태도에는 분명 차이가 생기는 것 같다.
결혼 전 조카들 덕분에 난 아기, 어린이 공포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딸아이도 비교적(?) 자연스럽게 안을 수 있었다.
난 출산 후 조산사가 깨끗하게 닦아 강보에 싸서 눕혀 놓은 딸아이의 카트를 놓고 나갔을 때, 당황스러웠다.
그때 내가 왜 혼자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분만실 옆의 작은 방에 나와 아기, 둘만 달랑 놓여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딸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본 채, 만지거나 안을 용기를 내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었다.
그냥 이 생명체를 어찌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낳자마자 사랑한다고 쓰다듬으며 웃고 우는 엄마들의 영상을 많이 봤는데 나에겐 그런 감정 같은 건 없었다. 그리고 이런 나 자신의 모습이 더 당황스러웠다.
난 모성애가 없는 여자인가, 아니면 역시 모성애는 신화였던가.
하지만 이때 두 조카들이 떠올랐다.
조카들도 이렇게 작고 부서질 것 같았어.
괜찮아, 나도 해 봤잖아.
조카들처럼 우린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이런 확신과 자신감이 들자 조심스레 딸아이의 카트로 손을 뻗어 얼굴을 만질 용기가 생겼다.
만약......
그때 딸아이의 얼굴 위로, 조카들의 해맑게 웃는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난 과연 어떻게 엄마로서의 첫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을까.
나는 이렇게 “이모오~"라고 불러 주는 예쁜 조카가 둘이나 있는데, 우리 딸은 남동생밖에 없으니 앞으로 "고모"로만 불리게 될 걸 생각하면 괜히 조금 미안해진다.
* 일본에서는 한국의 '이모'와 '고모'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모두 おば([oba]伯母, 叔母)라고 부른다.
엄마 쪽인지 아빠 쪽인지가 아니라, 부모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형제인지 어린 여자형제인지에 따라 한자의 伯母와 叔母로 구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