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추석 아침, 쿠스코에서
내 마추픽추 이야기에는 남들과 딱 하나 다른 점이 있다.
나는 그 위대한 잉카 유적을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닌 사람이다. 올 9월 5일 영국을 떠난 뒤로, 슬리퍼 말고는 한 번도 신어본 신발이 없다. 마추픽추 전주곡으로 탄 카리브해 크루즈 갑판에서도 슬리퍼, 리마에서도 슬리퍼, 쿠스코 고산에서 코피를 쏟을 때도 슬리퍼.
그리고 잉카 성채에서도 슬리퍼였다.
물론 운동화도 챙겨 왔다. 혹시 몰라서.
그 운동화는 지금 내 가방 속에서 3주째 남미 일주 중이다. 카리브해를 건너고 안데스를 넘고 마추픽추까지 다녀왔는데, 땅은 한 번도 밟지 않았다.
세상에서 제일 팔자 좋은 운동화다. 나보다 여행을 편하게 하고 있다.
-
사연이 있다. 나는 골다공증이 심하다. 그래서 뼈를 네 번이나 부러뜨렸다.
처음엔 갈비뼈,
그다음엔 등뼈,
발목,
마지막으로 발등뼈.
순서를 보라. 위에서부터 아래로, 차곡차곡 내려왔다. 내 뼈들이 계단을 내려가듯 차례를 지켜서 부러진 것이다. 이 정도면 질서 의식 하나는 잉카 돌담 못지않다. 발등까지 왔으니 이제 더 내려갈 데도 없다. 내 골절 인생도 드디어 바닥을 찍었다. 적어도 그러길 간절히 바란다.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 물론 버스 타고.
내 뼈는 아마 전생에 과자였던 모양이다.
사실은 전생 탓이 아니다. 깜불이는 아침엔 김치에 보리밥, 저녁에도 보리밥에 김치를 먹고 컸다. 순서만 바뀌었지 메뉴는 그대로였다. 뼈가 튼튼하려면 어릴 때 우유를 마셔야 한다던데, 나는 우유 대신 김칫국물을 부어주며 뼈를 키웠다. 그렇게 키운 뼈는 쉰이 넘자 줄줄이 사직서를 냈다. 남들은 오십에 인생 2막을 연다는데, 내 뼈는 오십에 조기 퇴직을 했다.
마지막 발등뼈는 두 개나 부러졌는데, 영국 의사 선생님들은 참 느긋했다.
"가만히 있으면 붙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뼈는 선생님 말씀대로 붙긴 붙었다. 다만 제자리가 아니라, 자기가 붙고 싶은 자리에. 영국 생활 41년 만에 깨달았다. 이 나라는 뼈도 '알아서 하세요' 주의라는 걸. 그 뒤로 내 발은 운동화를 거부한다. 신으려고 하면 아프고, 발이 말한다.
"주인님, 그건 안 돼요."
-
믿기지 않겠지만, 이 발에게도 화려한 시절이 있었다.
한때는 크루즈를 타면 뾰족구두를 신고 밤마다 탱고를 췄다. 조명 아래서 또각또각, 턴 한 번에 치맛자락이 휘날리던 그 발이 바로 이 발이다. 그런데 이번 크루즈에서 이 발이 한 일이라고는 슬리퍼 끌고 뷔페 줄 서기, 그리고 자정에 초콜릿 분수 앞까지 걸어가기가 전부였다. 탱고 대신 케이크, 턴 대신 리필. 더 기가 막힌 건, 탱고의 고향이 바로 여기 남미라는 것이다. 한때 탱고를 추던 할매가 드디어 탱고의 대륙에 왔는데, 신발장에는 뾰족구두 대신 슬리퍼 한 켤레뿐이다. 아르헨티나에서 들으면 섭섭해할 일이다.
뾰족구두 신고 탱고 추던 시절은 이제 옛날이야기다. 하지만 괜찮다. 그 발로 탱고도 춰봤고, 이제 그 발로 마추픽추도 밟아봤으니까. 신발만 바뀌었을 뿐, 발은 여전히 무대 위에 있다.
-
그래서 슬리퍼다. 그런데 이 슬리퍼, 그냥 슬리퍼가 아니다. 큰딸이 사준 슬리퍼다. 별표 하나로 나와 티격태격하던 바로 그 딸이다.
아마 사줄 때만 해도 몰랐을 것이다. 이 슬리퍼가 카리브해를 건너고, 안데스를 넘고, 잉카 제국까지 가게 될 줄은. 동네 마트 다녀오라고 사준 슬리퍼 한 켤레가 세계 일주를 하고 있다. 슬리퍼 인생도 주인 잘 만나면 이렇게 출세한다.
그 아이가 어릴 때, 나는 곁에서 신발 한 켤레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엄마였다. 그런데 이제는 딸이 사준 신발을 신고 엄마가 세상 구경을 다닌다.
추석 아침, 송편 대신 딸 생각을 한 조각 먹는다.
영국에서 페루까지,
슬리퍼 한 켤레로
잉카 제국을 정복했다.
이쯤 되면 슬리퍼 회사에서 광고 제의가 와야 하는 거 아닌가. 모델료는 안 받겠다. 딸이 이미 선불로 냈으니까. 아무도 할매 발을 안 본다. 젊었으면 창피해서 못 했을 일을, 칠순은 슬리퍼 끌고 당당하게 해낸다.
-
마추픽추는 하루에 올라갈 수 있는 사람 수가 정해져 있다. 유적이 견딜 수 있는, 이른바 지속 가능한 숫자라고 한다. 그날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둘러봐도, 그 많은 사람 중에 슬리퍼를 신은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등산화, 운동화, 트레킹화 사이에서 슬리퍼 한 켤레.
이것도 나름 한정판이다.
그리고 슬리퍼 덕분에 제일 느리게 걸은 사람도 나 하나였다. 그래서 남들 지나친 돌담 하나하나에 다 인사하고 왔다.
인생이 꼭 운동화여야 하고, 뾰족구두여야 하는 건 아니다.
슬리퍼를 신고도 마추픽추에 오를 수 있다.
조금 천천히 갈 뿐이다.
이번 여행 내내, 나는 딸의 마음을 신고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