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업과의 조인트 벤처 설립 (2/3)

byJames

4. 협상방법, 셋업 (1차)

JV라는 말을 일부러 하지 않았다

첫 미팅에서 우리가 ‘조인트 벤처’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은 것은 의도적인 선택이었다. 협상이나 사업 대화에서는 자주 있는 일인데, 너무 이른 단계에서 명확한 단어나 개념을 먼저 꺼내면 대화가 그 포인트에 매몰되기 쉽다고 생각했다. 특히 이 경우에는 아직 서로에 대한 라포도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정답, 혹은 해답처럼 보일 수 있는 하나의 옵션을 먼저 던지는 순간, 대화의 중심이 사업이 아니라 구조로 이동하게 된다.


지분은 어떻게 할지, 의사결정권은 어떻게 나누냐, 누가 대표를 맡느냐 같은 질문들이 너무 빨리 튀어나온다. 물론 중요한 질문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 단계에서 우리가 나눠야 할 대화, 그리고 내가 의도했던 건 설득이 아니라 노출이었다.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일하려고 하는지, 어떤 문제를 보고 있는지, 그리고 왜 기존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느끼는지를 먼저 충분히 드러내고 싶었다. ‘조인트 벤처’라는 단어를 직접 꺼내지는 않았지만, 기존 조직 밖에서 움직이는 팀, 별도의 바카라임 단위, 성공과 실패가 명확하게 귀속되는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꺼냈다. 이름은 말하지 않았지만, 방향은 계속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었던 셈이다.


사람은 자주 접한 개념에 자연스럽게 호감을 느낀다. 나중에 JV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그건 새로운 제안이 아니라 이미 여러 번 떠올렸던 답처럼 느껴지게 하기 위해서였다. 대신 우리는 아주 구체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이 기술이 신사업에 적용됨에 있어서 많이 막히는 지점은 어디인지 왜 기존 조직 안에서 이 프로젝트가 왜 늘 뒤로 밀리는지 소위말해 “좋은데 지금은 못 한다”라는 말이 반복되는 이유가 뭔지를 듣고 싶었다.


놀랍게도,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솔직했다. 회사 내부의 우선순위 구조, 승인 프로세스, 리스크 회피 문화까지 자연스럽게 나왔다. 실제로 이런 고민을 많이 하고 아쉬움이 많았기 때문인지 질문 몇 개만 했을 뿐인데 한 시간 가까지 이런저런 애로사항을 이야기하는 상대를 보고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하지만 그 여러 감정과는 별개로 이 대화 후에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질 것이 보였다.


이 과정에서 내가 가장 신경 쓴 건 ‘공동 문제 정의’였다. 진심을 다해 상대방의 아쉬운 점이나 여러 문제점을 들어줄 수는 있어도 나는 온라인 게임생활 카운슬러가 아니다. 모리모두 공감을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고, 아쉽게도 즉각적인 정답을 제공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심지어 회사의 오너라고 할지라도 한정된 자본을 배분하는 것에 대해 조심하고 숙고하는 마당에 그냥 ‘투자자 1’인 내가 그들에게 마법 같은 해결바카라을 줄수도 없었다. 물론 서로의 회사가 어쩜 그렇게 꽉 막혔는지 험담을 하면서 친밀감을 높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건 퇴근 후 개인적인 시간에 하는 일이기 때문에 나는 우리에 대화에서 공통적으로 그리고 잠재적으로 공동의 문제가 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확인하려 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조직의 개선점은 대부분 스스로 알고 있다. 어디서 병목이 발생하는지, 어떤 의사결정이 반복적으로 막히는지, 왜 새로운 시도가 중간에서 힘을 잃는지, 아니면 하다못해 어떤 팀의 퍼포먼스가 저조한 지까지. 다만 그걸 외부 사람 앞에서 먼저 이야기하는 건 조심스러운 일이다. 하물며 상대 조직의 문제는 더 어렵다. 밖에서 몇 번 본 것만으로 “당신들 조직의 문제는 이겁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대화는 해결이 아니라 방어로 들어가기 쉽다.


그래서 돌아보면, 그 시기의 미팅들은 어느 정도 조하리의 창(Johari Window) 같은 과정이었던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나의 모습, 상대가 보고 있는 우리의 모습, 그리고 서로가 아직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영역들. 상대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 자신을 다시 보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흥미로웠던 건, 우리가 상대 회사의 한계를 보기 시작할 때쯤 상대 역시 우리 조직의 한계를 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가상의 예를 들면, 우리는 투자회사였고, 빠르게 판단하고 실행하는 데 익숙했지만, 동시에 실제 기술 조직처럼 제품을 만들고 운영하는 데에는 구조적인 제약이 있었다. 반대로 그들은 뛰어난 기술과 실행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기존 사업과 조직 구조 안에서는 새로운 영역을 끝까지 밀어붙이기 어려워 보였다.


결국 중요한 건 누가 더 우월한 구조를 가졌느냐가 아니었다. 서로 다른 종류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였다. 그래서 우리는 섣불리 해결바카라부터 던지지 않으려고 했다. “그냥 JV를 만들면 되지 않나요?” 같은 말은 쉽다. 하지만 얕은 이해 위에서 나온 해결바카라은 대부분 오래가지 못한다. 오히려 중요한 건, 왜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지를 함께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특히 우리 입장에서 AI 회사와의 협업은 단순히 “AI를 어디에 써볼까”의 문제가 아니었다. AI는 분명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술 적용 그 자체를 위해 협업을 할 필요는 없었다. AI가 마법봉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이 실제 업무와 의사결정 안으로 들어왔을 때 무엇이 바뀌는 가였다. 그리고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결국 다시 조직과 구조의 문제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어느 순간 우리는 구조 이야기를 직접 하지 않고도, 그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걸 기존 조직 안에서 하려면, 어느 팀이 바카라임져야 할까요?”

“이게 잘 되면, 내부에서 이 프로젝트의 주인은 누가 되나요?”

“만약 실패하면, 이 비용은 어느 예산에서 나가나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매번 흐려질수록, 오히려 한 가지 사실만 더 선명해졌다. 지금 구조로는 이 사업이 끝까지 가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그게 첫 번째 셋업의 전부였다. 우리는 JV를 제안하지도 않았고, 설득하지도 않았지만 대화는 어느새 JV라는 결론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첫 미팅에서 우리가 처음부터 “조인트 벤처를 합시다”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비슷한 질문들이 나왔을 것이다.

“이걸 JV 조직 안에서 하려면, 어느 회사가 바카라임져야 할까요?”

“이게 잘 되면, 이 프로젝트의 주인은 누가 되나요?”

“만약 실패하면, 이 비용은 어느 쪽 예산에서 나가나요?”


결국 대화는 돌고 돌아 비슷한 곳으로 모였을지도 모른다. 다만 걸어가는 길은 아예 달랐을 것이다. 처음부터 JV라는 단어를 꺼냈다면, 대화는 구조를 방어하는 방향으로 흘렀을 가능성이 크지 않았을까. 반대로 우리는 문제를 먼저 이야기했고, 그 문제를 끝까지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같은 결론 근처에 도착했다.



5. 협상경과 (1차)

“그럼, 이건 따로 해야겠네요”

몇 번의 미팅이 지나자 대화의 톤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우리 내부에서 한번 더 검토해 보겠다” 정도였던 말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이걸 기존 조직 안에서 가져가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방향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능성을 이야기하던 대화가, 점점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하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결정적인 순간은 아주 사소한 말에서 나왔다.

“이건… 차라리 따로 하는 게 맞을 것 같네요.”


우리가 먼저 꺼낸 말이 아니었다. 상대방이 스스로 그렇게 말하게 된 순간, 사실상 첫 번째 협상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앞에 모든 미팅과 협의, 브레인스토밍은 이 한마디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부터 대화는 훨씬 빨라졌다. 더 이상 “왜 해야 하는가”를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고, 마팀 이 진지한 고민을 함께 한 사람은 우리였기 때문이다. 단순한 프로젝트 발주부터 파일럿, 프로젝트성까지 우리와 공통의 주제를 가지고 고민을 했기 때문에 우리와 함께 JV를 우리와 독점적으로 할지는 모르나 적어도 이 단계라면 우리와 논의는 할 것으로 보였다.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로 넘어갔다. 기존 회사와는 분리된 실행 단위,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한 작은 조직, 그리고 성공과 실패의 결과가 명확하게 귀속되는 구조. 지금까지 여러 미팅에서 조각처럼 흩어져 있던 이야기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정리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비교적 빠르게 합의가 됐다.


문제는 언제나 그다음이었다. “그럼 누가 뭘 얼마나 가져가죠?”

결국 모든 협상은 그 질문으로 돌아간다. 다만 우리는 그 질문이 너무 빨리 나오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속도를 조절하고 있었다. 구조에 대한 합의 없이 조건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자기 몫부터 계산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면 대화의 중심이 사업이 아니라 방어로 이동한다.


지분율, 의사결정권, 투자 규모 같은 이야기들은 잠시 뒤로 미뤄두고, 먼저 “왜 굳이 기존 조직에서 독립해야 하는가”에 대한 공감대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그 공감대가 생기고 나서야, 조건은 비로소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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