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업과의 조인트 벤처 설립 (1/3)

byJames

1. 배경

우리는 원래부터 투자회사 중에서도 기업이나 학계와의 협업을 많이 해온 회사다. 그렇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협업의 방식도 비교적 정형화되어 있었다. 인턴십 프로그램, 채용 설명회, 외부 강연, 패널 참여 같은 것들. 기업 입장에서도 부담이 크지 않고, 상대방에게도 명확한 명분이 있는 방식이었다. 누가 봐도 “좋은 일”이고, 크게 실패할 이유도 없는 구조와 관계였다.


이런 활동들은 분명 의미가 있었다. 인재 풀을 넓히고, 브랜드를 알리고, 관계의 문을 여는 데에는 충분했다. 실제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밀도나 퀄리티는 말할 것도 없고 네트워크도 자연스럽게 확장됐다. 그리고 우리 회사가 오랫동안 구축해 온 네트워크는 단순한 산업에서 긴밀한 회사나 기관정도가 아니고 우리를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생태계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아쉬움이 있었다. 매번 새로운 사람과 회사를 만나고, 매번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서로 좋은 인상을 남긴 채 헤어지거나 혹은 간혹 단발성 프로젝트를 같이한다. 그런데 거기까지인 느낌이었다. 내 성과로 잡히기는 하지만 그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파이프라인을 만든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인턴십은 인턴십으로 끝났고, 설명회는 설명회로 끝났다. 강연은 박수로 마무리됐지만, 다음 분기 사업 계획에 반영되지는 않았다. 물론 매년 채용하는 100명에 가까운 인턴 중 한두 명은 채용으로 이루어졌고 강연에서 만난 수십 명 중 한두 명 정도는 팔로우업 미팅을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관계는 계속 쌓이는데,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는 느낌. 좋은 접점은 많은데, 결과로 이어지는 선은 거의 없었다.


AI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여러 AI 기업에 투자를 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같이 뭘 더 해볼 수 없을까”라는 이야기가 자주 나왔다. 데이터 협업, 공동 프로젝트, PoC, 파일럿. 말로는 간단했다. 슬라이드 몇 장이면 충분히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실행에 옮기려는 순간, 늘 같은 질문에서 멈췄다.

누가 바카라임을 지는가. 이건 실험인가, 사업인가. 실패했을 때 비용은 누가 감당하는가.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끝까지 밀고 갈 주체가 없었다. 각 회사의 이해관계와 우선순위가 달랐고, 기존 조직 안에서는 그걸 끝까지 바카라임지고 가져갈 사람이 명확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협업은 결국 “좋은 아이디어” 단계에서 멈췄다. 그러던 중, 우리가 이미 투자하고 있던 한 AI 기업에서 기회가 보였다. “새로운 시장을 더 공격적으로 보고 싶다”, “제품을 특정 영역에 더 깊게 적용해보고 싶다”, “기술은 있는데, 단독으로 가기엔 리스크가 크다” 같이 표면적으로 보면 흔한 이야기였다.


이런 말은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AI 기업들이 하지만 이 회사는 조금 달랐다. 기술은 이미 그 시점 기준 나름대로 충분히 성숙해 있었고, 실제 고객도 확보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 단계였다. 지금 조직 구조로는 한 단계 더 점프하기 어렵다는 걸 스스로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내부에서 새로운 영역을 전담하는 사업부를 만들자니 기존 조직과 충돌이 생겼다. 우선순위, 리소스 배분, 바카라임 구조. 모든 것이 얽혀 있었다. 외부 파트너십으로 풀어보려 해도 의사결정이 느려졌고, 결국 실행 속도가 나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단발적인 계약이나 공동 마케팅으로 끝낼 생각이 아니었다. 아예 새로운 영역에 진출을 위해 팀을 따로 만들고 사업영역을 개척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분명했다.


그 시점에서 우리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건 더 이상 인턴십을 하나 더 늘리고, 설명회를 한 번 더 하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었다. 관계를 만드는 단계는 이미 충분히 지나왔다. 특히 AI에 대해서는 우리의 시각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 있었다. MIT AI 펀드를 비롯해 여러 사례를 보면서 느낀 건, 당시 AI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는 점이었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AI라는 장난감의 어색한 답변을 보며 웃고 넘기는 사람들과, 현시점에서 가장 좋은 모델을 직접 써보고 나서 얼굴이 굳어지는 사람들.


나 역시 처음 몇 개의 AI 기업을 검토할 때까지만 해도, 그저 임팩트 있는 새로운 기술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퀀텀 컴퓨터도, 초전도체도, 자율주행도, 새로운 배터리와 반도체도 모두 세상을 바꾼다. 심지어 새로운 디저트 하나도 유행을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의 AI처럼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 그리고 일하는 방식을 통째로 바꿀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바뀐다 하더라도 적어도 내 영역은 아닐 거라고 여겼다.


투자라는 건 기본적으로 알파를 찾는 일이다. 당시 AI는 ChatGPT와 그보다 조금 부족한 Bard(현 Gemini)등 범용 챗봇 수준의 애플리케이션 혹은 그리고 몇몇 연구소와 스타트업에서 만들고 있던 굉장히 뾰족한 모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상태에서는 우리와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찾기 어렵다고 보는 게 자연스러웠다. 특히 이 챗봇들은 특정되지 않은 다수의 이용자들이 던지는 매우 다양한 질문에 그럴듯하게 답을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간단한 리서치나 번역에는 분명 유용할지 몰라도, 시장을 다른 각도로 해석하고 그 시장을 이길 수 있는 수익률을 만들어야 하는 투자 업무에는 맞지 않는 도구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엑셀을 비롯한 기존 오피스 툴과의 궁합이 좋지 않았다는 점도 컸다.


그런데 이 회사를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단순히 기술이 좋아서가 아니라, 우리와 맞닿을 수 있는 접점들이 분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걸 현실로 만들려면, 우리가 익숙하게 해 오던 단발성 이벤트로는 부족하다는 것도 명확해졌다.


AI 기업과의 협업이 실제 의미를 가지려면, 기존 조직 바깥에서 움직일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양쪽이 이해관계를 걸 수 있는 구조가 필요했다. 우리는 투자자로서 이미 그 기업의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 그 기업 역시 우리가 단순한 자금 제공자가 아니라, 구조를 함께 설계할 수 있는 파트너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조인트 벤처라는 선택지는 갑자기 튀어나온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그동안 반복해 온 단발성 협업의 한계, 기존 조직 안에서 풀리지 않던 실행의 문제, 그리고 이미 형성돼 있던 신뢰가 자연스럽게 밀어낸 다음 단계였다.



2. 협상의 목표

“나중에 재미있는 거 같이 해봐요”를 넘어서고 싶었다.

AI 기업과 무언가를 같이 해보자는 이야기는 이미 충분히 많이 들었다. 실제로 몇 번 해보기도 했다. 문제는 항상 그다음이었다. 파일럿은 끝나고, PoC는 리포트로 남고, 공동 프로젝트는 어느 순간 내부 우선순위에서 밀려 사라졌다.


그 과정이 너무 익숙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출발점부터 달랐다. 협업을 하나 더 만드는 게 아니라, 협업이 사라지지 않게 만드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어찌 보면 투자자보다 기술 컨설턴트의 일에 가깝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야근은 그보다 조금 더 많이 했고, 우리 팀원들의 원망 섞인 눈초리는 그보다 조금 더 많이 받았다. 이 기술이 좋으냐 나쁘냐 혹은 시장성이 있냐 없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각기 다른 종류의 2D와 3D 퍼즐 (투자회사의 프로토콜과 AI회사의 기술)을 가지고 전혀 다른 그림을 완성하는 기분이었다.


이런 질문을 계속하다 보니 기존 조직 안에서는 답이 보이지 않았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미 돌아가고 있는 고객과 제품이 우선이었다. 새로운 시도는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였지만, 대부분 “다음 분기”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외부 파트너십은 계약 단위로 잘게 나뉘어 있어, 누군가 끝까지 바카라임지고 끌고 갈 구조가 아니었다. 우리 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장 투자해야 할 딜은 계속 쌓이고, 하루하루 처리해야 할 업무는 명확했다. 그런 상황에서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내부 인프라에 투자팀이 주도적으로 리소스를 투입하기에는 현실적인 제약이 분명했다.


결국 문제는 같았다. 아이디어는 있는데, 계속 가져갈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나의 협상 방향은 자연스럽게 잡혔다. 기존 조직 안에서도 아니고, 단발성 계약도 아니고, 아예 전담 조직을 하나 따로 만드는 것. 내가 이 새로운 조직에게 바라는 것은 크게 세 가지였다.

기존 조직의 승인 라인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실행 속도

여러 프로젝트 중 하나가 아니라, 그 조직 자체가 이 일만을 위해 존재하는 구조

잘 되면 같이 업사이드를 가져갈 수 있으며, 데이터와 연구결과를 보호할 수 있는 구조


3. 상대의 목표

단독으로는 어렵다는 걸, 그들도 알고 있었다. 상대 AI 기업의 목표는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더 성장하고 싶다.”


기술은 이미 검증돼 있었다. 고객도 있었고, 시장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이 회사는 내부적으로도 그 한계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기존 조직 안에서 새로운 사업을 키우자니, 결국 기존 매출과 고객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스타트업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조직이었고, 동시에 자원은 늘 부족했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영역에 과감하게 투자하려는 순간, 자연스럽게 내부 충돌이 생겼다.


회사 입장에서도 이 상태로는 이 새로운 영역에 대한 고민과 기술이 계속 “가능성”에 머물 위험이 컸다. 그들은 그들의 기술을 더 많은 곳에 적용하고 싶었고, 특정 시장에서는 아예 새로운 형태로 사업화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단독으로 그 리스크를 끝까지 가져가기에는 부담이 컸다. 그래서 그들이 우리에게 기대한 것은 단순한 자금이나 네트워크가 아니었다. 같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같이 바카라임질 수 있는 파트너였다.


우리의 목표가 지속가능한 파워하우스를 만드는 것이었다면,

그들의 목표는 혼자서는 넘기 어려운 임계점을 함께 넘는 것이었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두 목표는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그 겹침이 협상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중요한 건, 이 시점까지도 조인트 벤처라는 선택지는 명시적으로 올라와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도, 그들도 아직 JV를 전제로 대화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기존 조직 안에서도 답이 없고, 단발성 계약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남는 선택지는 점점 줄어든다는 것.


그 결과가 무엇일지는 아직 이름이 붙지 않았지만, 그 방향은 이미 그쪽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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