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로 유인하고, 진짜를 버리다

- 숲 속 꽃들이 곤충을 속이는 방식

by웅토닌

가짜로 유인하고, 진짜를 버리다

- 숲 속 꽃들이 곤충을 속이는 방식

백당화 생거진천 치유의 숲

오늘 산림치유 활동 중에 백당화를 만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짜로 유인한다는 건, 허위광고와 다를 게 없지 않은가.

그런데 숲에서도 이런 전략이 당연하듯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그래서 가짜꽃으로 곤충을 유혹하는 식물들,

그리고 아예 진짜 꽃을 버리고 가짜만 남긴 식물들을 정리해 보았다.


• 범의귀과 수국속 식물 - 가짜를 앞세운 전략

범의귀과에 속하는 산수국·수국·목수국은 모두 같은 수국속 식물이지만,

자라는 방식과 주는 인상은 분명히 다르다.


수국류의 꽃색은 알루미늄(Al³⁺) 이온과 깊은 관련이 있다.

산성 토양에서는 알루미늄 이온이 잘 녹아 식물에 흡수되고,

꽃 색소인 안토시아닌과 결합해 파란색을 띤다.


반면 중성·알칼리성 토양에서는 알루미늄이 흡수되지 않아

안토시아닌의 본래 색이 유지되며 분홍·붉은색 계열로 보인다.

- 토양이 산성(pH 낮음) → 파란색,

- 토양이 중성~약알칼리성(pH 높음) → 분홍·붉은색


산수국은 우리 산과 계곡에서 자라는 야생성 식물로,

키가 크지 않고 잎과 꽃이 작고 섬세하다.

가운데에는 작고 소박한 진짜 꽃(유성화)이 모여 있고,

가장자리에만 장식꽃(무성화)이 달린 구조다.

토양 pH에 따라 분홍·보라·파랑으로 색이 변하며,

전체적으로 은은하고 차분해 숲의 경관과 잘 어울린다.


수국은 산수국을 바탕으로 개량된 원예종이다.

꽃과 잎이 크고 둥글며, 대부분이 장식꽃이라 매우 화려하다.

분홍·파랑·보라·흰색 등 색상이 선명하고

토양 산도에 따른 색 변화도 뚜렷해 정원과 공원에서 시각적 효과가 크다.


목수국은 줄기가 나무처럼 단단한 관목이다.

다른 두 종류보다 키가 크고 수명이 길며,

꽃은 둥근 공 모양이 아니라 원추형으로 핀다.

처음에는 흰색이나 연두색으로 시작해

시간이 지나며 연분홍으로 변하는데,

이는 토양 산도보다는 꽃의 성숙 과정에 따른 변화다.

안정감 있고 묵직한 인상을 주어 숲 가장자리나 장기 경관용으로 적합하다.


• 인동과 식물 - 진짜와 가짜의 역할 분담

백당화 역시 유성화와 무성화가 함께 피는 구조를 가진다.

겉에서 보면 큼직한 흰 꽃이 눈에 띄지만,

이들은 곤충을 유인하기 위한 가짜꽃이다.

실제로 꽃가루받이와 열매 맺기는

가운데 모여 있는 작고 소박한 유성화가 맡는다.


반면 불두화는 다르다.

불두화는 백당나무를 개량한 품종으로,

무성화만 피우는 식물이다.

즉, 진짜 꽃을 완전히 포기한 선택이다.


잎이 세 갈래로 갈라지는 점이 백당화와의 주요한 구분점이며,

5~6월에 꽃을 피우고 5월의 탄생화로 알려져 있다.


• 털설구화·설구화 - 닮은 얼굴들


털설구화(라나스덜꿩나무) 역시

바깥을 가꽃이 둘러싸는 구조를 가진다.

설구화는 불두화와 매우 비슷하지만,

잎은 라나스덜꿩나무처럼 둥근 형태를 띤다.


이처럼 인동과 식물들은 꽃 모양이 워낙 비슷해

잎을 보지 않으면 구분이 어렵다.


아래는 생김새가 유사한 세 종류의 흰색 가꽃을 갖고 있는 인동과 나무들이다.

좌: 백당나무 / 중: 분단나무 / 우: 털설구화라나스

인동과에 속하는 백당나무·분단나무·털설구화는

잎을 관찰해야만 정확한 구분이 가능하다.

. 또한 • 목수국, 불두화, 설구화처럼

아예 진짜 꽃을 버리고 가짜 꽃만 피는 식물들은

꽃만 보고는 거의 구별할 수 없다.


• 산딸나무

산딸나무는 조금 다른 전략을 택했다.

작은 꽃들을 가운데 모아 놓고,

꽃잎처럼 보이는 네 장의 흰 구조물을 배치한다.

이 흰 부분은 꽃잎이 아니라

꽃받침이 변형된 화포다.

벌과 나비, 때로는 새까지 유혹하기 위한 장치다

산딸나무, 산음 치유의 숲

• 개다래 - 가장 대담한 가짜꽃

개다래, 가평 치유의 숲

가장 인상적인 가짜꽃을 만드는 식물은 개다래다.


개다래는 꽃이 필 무렵

잎의 앞면이 녹색에서 흰색으로 변한다.

진짜 꽃은 너무 작아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잎 자체를 꽃처럼 바꾸어 곤충을 유인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곤충은 흰 잎에 이끌려 날아왔다가

잎 아래 숨겨진 진짜 꽃에서 나는 향을 맡고

그제야 꽃을 찾는다.

수정이 끝나면 흰 잎은 다시 원래의 녹색으로 돌아간다.

개다래는 목천료라 불리는 약용 열매도 맺는다.

열매는 매우 맵지만,

벌레가 파고들어 울퉁불퉁해진 것을 약재로 사용한다.

요산 배출에 효과가 있다는 임상 보고가 있어

통풍이나 요로결석 등에 활용되기도 한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개다래의 가지와 잎이

고양이과 동물에게 강한 반응을 일으킨다는 사실이다.

이는 개다래 속 액티니딘(Actinidine) 성분 때문이며,

서양에서는 개박하(캣닙)의 네페탈락톤이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다래 가평 치유의 숲

"숲의 꽃들은 늘 정직하지 않다.

그러나 그 속임은 기만이 아니라 생존이다.

앞에 내세운 화려함은 미끼일 뿐,

정작 중요한 것은 안쪽에 조용히 숨겨져 있다.


우리는 종종 눈에 띄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만,

자연은 언제나 본질을 드러내는 데 서두르지 않는다.

가짜가 앞에 서고,

진짜는 끝까지 남아 기다린다.


어쩌면 삶도 그렇다.

먼저 보이는 말과 표정, 성과와 타이틀이 아니라

쉽게 보이지 않는 태도와 시간,

끝내 버텨내는 마음이

마침내 열매를 만든다.


숲의 꽃들이 그러하듯,

우리의 진짜 또한

조용히 안쪽에서 피고 있을지 모른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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