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맹동여지도
아침이면 나는
초록 점으로 표시된 충북혁신도시에서
빨간 점, 맹동치유센터를 향해 출근한다.
자동차로 돌아가면 편한 길이 있지만
나는 오늘도 함박산 줄기의 고개를 넘는다.
이제는 지도가 아니라 몸이 기억하는 길이다.
산길로 들어가기 전
항상 먼저 만나게 되는 녀석이 있다.
레트리버 한 마리.
처음 두 달 동안은
내가 지나갈 때마다 세상이 무너질 듯 짖어댔다.
하지만 매일같이 이름을 불러주고
먼저 손을 흔들다 보니
이제는 녀석도 꼬리를 흔든다.
사람도, 짐승도
결국 먼저 마음을 열어주는 쪽을 기억하는 모양이다.
숲평선 중간 이빨 빠진 곳이
내가 매일 넘어가는 성황당 고개다.
원래는 임도로 쉽게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임도 진입로가 개인 사유지라고 철문을 달고 막아버렸다.
고개 너머 임도 역시 위험구간이라며
음성군청 녹지과에서 역시 철문을 달고 출입을 제한했다.
그렇게 길은 자연스럽게 폐쇄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거의 나 혼자만 그 길을 넘는다.
산길로 접어드는 순간
아까시 향이 진동한다.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달린 꽃들이
새벽바람에 흔들린다.
아카시 꿀을 따기 위해 많은 벌통이 놓였다.
꿀벌들 사이에서 반가운 놈을 발견했다
#웅벌
뒤영벌이 표준어다.
어떤 이는 곰벌, 뒤웅벌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호박벌이라 부른다.
왠지 나를 보는 것 같아 정이 간다.
통통하고 둔해 보이는 몸,
그에 비해 너무 작아 보이는 날개.
그래서인지 더 힘차게 날갯짓을 해야만
꽃과 꽃 사이를 건너 다닐 수 있다.
하지만 그 우직한 날갯짓 덕분에
수정 능력은 꿀벌보다 몇 배나 뛰어나다고
겉모습은 무뚝뚝하고 투박해 보여도
의외로 순하고 귀엽다.
말없이 자기 몫을 해내는 숲 속의
통통한 요정벌이다.
그런데 문득
부러진 가지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심하게 꺾였는데도
가지 끝에서 새순이 돋아나고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부러진 가지, 끝에서 다시 부활한다.”
라는 시를 쓰게 되었다.
아마 사람도 그럴 것이다.
많이 꺾인 사람일수록
끝에서 다시 새순을 낸다.
조금 더 올라가면
벚꽃길이 이어진다.
4월까지는 꽃비처럼 길을 덮던 곳이다.
그 길을 돌아서면
성황당 고개 정상에 닿는다.
햇살이 환하게 비춰주는 자리.
왼편에는 돌탑 세 개가 서 있고
오른편에는
“함박산 정상 1.7km” 표지판이 보인다.
돌탑사이 표지판에는 한양 가는 길목으로 조선. 중기 때부터 선배들이 넘나드는 고개라고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정상에는
함박산으로 이어지는 구름다리가 있다.
뒤돌아보면
돌탑 세 개가 조용히 서 있다.
누군가는 소원을 쌓았고
누군가는 마음을 올려두었을 것이다.
구름다리 아래 숲길로 내려서면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내리막이 이어진다.
조금 더 걷다 보면
껍질이 벗겨진 소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그 나무가 나타나면
비로소 “웅박길”의 시작이다.
3월과 4월,
두 달 동안 직접 개척한 길이다.
정글칼과 휴대용 톱을 들고
가시 많은 아카시아와 줄딸기 덩굴을 잘라내며
열 번 넘게 길을 뚫었다.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급경사에서 몇 번이나 굴렀다.
하지만 결국
가장 안전하고 빠른 숲길 하나를 완성했다.
위성사진 속 돌아가는 길을 가로질러
숲의 숨겨진 지름길을 만든 것이다.
전에 없던 길을 만들었으니
내 이름 “웅”과 함박산의 “박”을 합쳐
그 길을 “웅박길”이라 이름 붙였다.
입구는 일부러 눈에 띄지 않게 만들었다.
아는 사람만 들어오는 길이다.
어린 아카시아는
줄기에 사납게 가시를 달고 있지만
세월이 흐르면 가시가 사라진다.
사람도 비슷하다.
젊을 때는 상처받지 않으려
온몸에 가시를 세우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둥글어진다.
찔레나무 가시는 팔뚝을 그물무늬로 만들고
줄딸기 가시덩굴은 집요하게 발목을 붙잡는다.
하지만 그 길을 지나고 나면
새소리와 바람소리만 남는다.
웅박길에 남겨진 짐승들 똥을 보니
그렇게 고생해서 만든 길을
고라니와 멧돼지도 함께 이용하는 듯하다.
숲은
결국 먼저 지나간 존재의 흔적을 따라간다.
계곡 아래에 도착하면
작은 풀숲 개활지가 나오고
끊겼던 길은 다시 임도와 연결된다.
새로 정비된 임도에는
야자매트가 깔려 있다.
넓은 임도길을 걷다 보면
거대한 오동나무 한 그루가 나타난다.
나무 전체가 연보랏빛 꽃이다.
나는 그 앞에서 늘 송창식의
〈나의 기타 이야기〉를 튼다.
“딩동댕 울리는 나의 기타는…”
오동나무와 기타 이야기.
그 노래를 듣고 있으면
사람의 기억도
나무처럼 나이테를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연보랏빛 통꽃이 오동나무에 탐스럽게 피어 있는 모습이
너구리라면 멘트와 닮아
“오동통 내 너구리꽃”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 지점을 지나면
드디어 맹동저수지의 풍경이 펼쳐진다.
숲이 끝나고
물이 시작되는 자리.
임도 가로수에는
가시 없는 붉은 아까시나무가 심겨 있다.
내가 맹동 치유의 숲에서
가장 좋아하는 길,
“참바람길”이다.
그 길 끝에는
숲두드림터가 있다.
3월과 4월,
두 달 동안 직접 만든 통나무 난타 공간이다.
차가 들어올 수 없는 길이라
사람 몸통만 한 참나무 통나무를
로프로 묶어 직접 끌어올렸다.
숲두드림터에 서면
맹동저수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바람은 물 위를 지나
숲으로 들어오고
숲의 냄새는 다시 사람에게 스며든다.
참바람길을 더 내려오면
채움마루 전망대가 나온다.
오른쪽 샤스타데이지 꽃길을 따라가면
물두드림터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통나무 난타 공간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 나왔다.
아마 앞으로
맹동 치유의 숲을 대표하는 시그니처 공간이 될 것이다.
퇴근길,
다시 성황당 고개를 바라본다.
멀리서 보면
산 능선 한쪽이 이가 빠진 것처럼 보이는데
바로 그 자리에 구름다리가 걸려 있다.
나는 안다.
올해 이곳은
단순한 숲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다시 숨 쉬게 하는
명품 산림치유의 숲이 될 것이다.
대동여지도를 직접 걸으며 만드신 김정호 선배님을 생각하며 나 역시 모든 길을 발로 걸었다. 그렇게 두 달 만에 완성한 맹동여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