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니체가 경계한 원한은 단순히 순간적으로 화를 내는 감정이 아니다. 과거에 받은 상처를 계속 되새기며 그 일에 자신의 현재까지 붙잡아 두는 상태에 가깝다. 사건은 이미 지나갔는데도 마음속에서는 계속 그 일을 반복하고, 상대에게 무엇을 돌려줄지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의 행동이 끝난 뒤에도 그 사람은 계속 내 삶을 지배하게 된다.
분노 자체가 나쁜 감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화가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 분노가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려주기도 한다. 때로는 그 감정이 나를 움직여 문제에 대응하게 만들기도 한다. 필요한 경우에는 법적인 절차를 밟거나 관계를 끊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알려주는 것을 받아들이고 필요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하지만 대응이 끝났다면 그 감정도 언젠가는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면 비교적 쉽게 놓을 수 있겠지만, 현실에서는 항상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가 충분한 바카라임을 지지 않을 수도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대응을 다했는데도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일을 언제까지나 붙들고 살아갈 수는 없다. 바꿀 수 없는 것을 계속 붙잡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소모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포기하는 것과 용서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가 더 이상 대응하지 않기로 했다고 해서 상대의 행동이 옳았다고 인정하는 것도 아니고, 받은 피해가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여기까지라고 판단하고, 남은 삶을 위해 그 일을 내려놓는 것이다. 때로는 끝까지 싸우는 것보다 그만두는 것이 나에게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포기할 줄 아는 것도 결국 내 삶을 내가 선택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더 무서운 것은 최초의 피해보다 그 이후의 피해가 커지는 경우다.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 하나 때문에 계속 분노하고, 그 일을 반복해서 떠올리느라 일상을 망치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그 감정을 쏟아내게 될 수도 있다. 처음의 피해는 내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그 일이 내 삶을 얼마나 오랫동안 차지하게 할지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결정할 수 있다. 상대가 나에게 한 일을 몇 년 동안 붙들고 살아간다면, 상대는 나에게 한 번 피해를 준 것으로 끝나지 않고 내 시간과 감정까지 가져가게 된다.
나는 분노에도 유통기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응할 수 있을 때는 충분히 대응하고, 내가 지켜야 할 것을 지킨 뒤에는 다시 내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더라도 언젠가는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분노를 느끼지 않는 것이 강한 것이 아니라, 분노를 느끼면서도 언제 그것을 끝낼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받은 피해 때문에 남은 삶까지 잃어버리지 않는 것, 그것이 분노를 다루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