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왜 마지막에는 웃게 되는가 – 3악장 Part 3. 왜 마지막에는 웃게 되는가 – 3악장 어느 날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하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힘들었던 일은 참 오래 이야기하게 되는데, 행복했던 날은 의외로 짧게 지나간다는 것이다. “오늘 정말 좋았어.” 대부분은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반대로 속상했던 일이나 억울했던 일은 몇 번이고 다시 꺼내어 설명하게 된다. 무엇이 힘들었는지,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왜 서운했는지. 슬픔은 오래 머물고, 기쁨은 금세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진짜 행복한 순간에는 이상하게 말이 많지 않다. 가족들과 웃으며 식사를 마친 저녁,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헤어진 뒤의 가벼운 발걸음, 공연이 끝난 뒤 홀을 나오며 괜히 미소가 지어지던 순간. 기쁨은 크게 소리치지 않는다. 오히려 조용히 웃으며 다음 순간으로 걸어간다. 최근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슈만 피아노 협주곡 3악장'을 들으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음악도 사람과 닮았는지 모른다고. 1악장의 고백과 2악장의 속삭임을 지나온 음악은, 3악장에 이르러 비로소 웃기 시작한다. 사실 그 웃음은 이유 없이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슈만은 클라라를 사랑했고,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긴 시간을 견뎌야 했다. 클라라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비크의 극심한 반대 속에서 두 사람은 결국 법정까지 가야 했고, 오랜 기다림 끝에 비로소 함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슈만의 음악에는 기쁨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 기쁨에 이르기까지 지나온 불안과 기다림, 그리고 견뎌낸 시간이 함께 남아 있다. 어쩌면 슈만 피아노 협주곡 3악장의 밝음 역시 승리의 함성이라기보다, 긴 시간을 지나온 사람이 비로소 안도의 미소를 짓는 순간에 가까운 것인지 모른다. 슬픔이 사라져서 웃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슬픔과 기다림을 지나왔기에 웃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오히려 슬픔과 기다림을 지나왔기에 웃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2026년 네덜란드와 보스턴.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두 연주는 같은 미소를 품고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1월 네덜란드 – 미소가 하나가 되어가는 시간 3악장의 첫 문이 열릴 때, 그의 소리는 과하지 않았다. 스타카토는 가볍게 튀어 오르기보다 부드럽게 스며들었고, 코드와 멜로디는 서로를 밀어내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마치 오랜 시간을 지나온 사람이 갑자기 크게 웃기보다, 천천히 입가에 미소를 번지게 하는 것처럼. 흥미로운 것은, 그 균형감이 단순한 절제에 머무르지 않았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