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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릿한 수직의 코드와 혀끝의 허기

수직의 비와 붉은 침묵 사이

by구시안
구시안 코드.png

비릿한 수직의 코드와 혀끝의 허기.

언어는 본래 땅을 밟고 서 있지 않다. 그것은 중력을 흉내 내며 떨어지는 비릿한 수직의 코드, 즉 하늘과 바닥 사이에 그어진 차가운 가로지름이다. 빗줄기처럼 정수리를 관통하는 문장들은 언제나 은빛의 날카로운 선으로 떨어져 내리지만, 피부에 닿는 순간 선명한 비린내를 풍기며 스러진다. 생성과 소멸이 교차하는 그 찰나의 지점에서 감각은 비로소 자신의 생존을 증명한다.


수직의 코드가 찍어 누르는 세계는 냉정하다. 0과 1, 단어와 단어 사이의 막막한 공백, 절제된 표상들이 빽빽하게 얽혀 만든 이 선형(線形)의 지붕 아래서 부단히 유기물로서의 자아를 수혈받고자 한다. 그러나 아무리 정교한 관념을 번역해 낸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논리의 뼈대는 차갑고 메마를 뿐이다. 그때 고통스럽게, 살아있게 만드는 것은 혀끝에 사기처럼 맺히는 허기다.


혀끝의 허기는 결코 단순한 생물학적 욕구가 아니다. 그것은 아직 단어로 고착되지 않은 세계를 삼키려는 존재론적 갈증이자, 체온을 지닌 언어를 향한 가장 근원적인 형이상학적 굶주림이다.


만지고, 맛보고, 들이쉬지 않고서는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코끝을 스치는 젖은 흙냄새, 입안에서 부서지는 과육의 텁텁한 단맛, 손가락 끝을 파고드는 직물의 서늘한 감촉—이 야생의 감각들은 수직으로 낙하하는 미끈한 기호의 질서에 끊임없이 균열을 낸다. 추상화된 관념이 세계를 설명하려 할 때, 혀끝을 적시는 비릿한 혈액의 맛은 설명될 수 없는 삶의 실재(實在)를 들이밀며 질문을 던진다.


“너는 지금 이 순간, 진정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감각은 실로 사유보다 먼저 도착하는 고통이자 환희다. 시인의 언어가 노벨의 금빛 표장을 뛰어넘어 영원에 닿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수직으로 떨어지는 냉정한 코드의 세계에 혀끝의 붉고 둔중한 허기를 밀어 넣을 때일 것이다.


추상의 높이에서 내려오는 비릿한 비의 언어와, 존재의 깊은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혀의 허기가 충돌할 때, 세계는 비로소 하나의 완성된 문장이 된다. 그 문장은 읽히는 것이 아니라, 씹히고, 삼켜지며, 마침내 온몸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생화학적 실재로 부활한다.


오늘도 수직으로 쏟아지는 감각의 코드 아래 혀를 내밀고 서 있다. 세계를 채 다 적시지 못한 언어의 비린내를 핥으며, 영원히 메워지지 않을 혀끝의 허기를 품은 채.


비린 고요가 문장의 경계를 넘어 입술 밖으로 번져 나간다.

코드로 환원되지 않는 핏빛 감각들은 단어의 틈새를 따라 흘러내리며 끝내 서술되기를 거부한다. 괄호 속으로 밀려난 체온, 마침표가 미처 가두지 못한 팽팽한 호흡, 혀뿌리를 파고드는 감각의 잔해들은 언어가 세워 올린 단단한 벽을 끊임없이 침식한다.


모든 시도가 빗나간 지점에서 진짜 세계가 시작된다. 손가락 끝에 찍힌 하나의 핏방울이 어떠한 기호학적 수사보다 무겁게 존재를 증명하듯, 혀끝을 채우는 생경한 허기는 사유의 한계를 넘어선 곳으로 의식을 끌어당긴다. 정밀하게 규정된 명사들은 흩어지고, 형용사들은 제 빛깔을 잃고 스러지지만, 입안 가득 감도는 둔중한 감각만은 마지막까지 살아 숨 쉰다.


결국 도달하게 되는 곳은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백지의 문장, 혹은 아직 울리지 않은 음성 이전의 진동이다.

수직으로 떨어진 코드는 바닥에 닿아 무수한 파편으로 깨어지고, 혀끝의 허기는 그 조각들을 하나씩 주워 담으며 결코 끝나지 않을 존재의 허기를 다독인다. 완성되지 않았기에 비로소 영원에 가까워지는 글쓰기, 그것은 비린 기호의 빗속에서 혀를 내밀어 스스로의 존재를 집요하게 핥아 내는 고독한 노동일 뿐이다.


바람이 불어와 짓짓눌린 단어의 사체들을 쓸어가고 나면, 혀 끝에는 여전히 설명할 수 없는 붉은 감각 하나만이 단단한 씨앗처럼 남아 있다.


마침내 선은 끊어지고, 기호는 침묵한다.

머리 위를 가누던 수직의 지붕이 허물어지며 떨어진 마지막 문장조차 바닥의 비린 흙속으로 스며들어 자취를 감춘다. 0과 1의 정교한 매듭도, 세계를 가두려 했던 모든 명사들의 오만도 결국 한 조각 피부의 서늘함, 혀끝에 감도는 붉은 비린내 앞에서 무용해진다.


완성은 닿을 수 있는 목표가 아니라, 더 이상 쓰지 않음으로써 도착하는 빈터다.

언어가 멈춘 그 자리에 오롯이 남은 것은 단지 숨을 쉬고, 무언가를 갈망하며, 여전히 짓눌린 감각을 핥아 내는 하나의 피투성인 존재뿐. 설명될 수 없기에 비로소 완벽해진 이 허기는 이제 무거운 괄호를 닫고 깊은 소멸의 표면 위로 침전한다.


하늘과 바닥 사이, 비릿한 코드가 지나간 자리엔 오직 혀끝을 채우는 생경하고 단단한 침묵만이 맺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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