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칙 모드 : Human Nature

대칭의 균열에서 마주친 또 다른 실존

by구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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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과 거울이 마주 볼 때 생겨나는 까마득한 굴혈(窟穴)을 들여다본 적이 있다.

단 두 장의 유리가 마주섰을 뿐인데, 그 사이에 피어나는 깊이는 우주 전체의 깊이보다도 아득했다.


실상은 간단했다. 세상에서 절대 속일 수 없는 또 다른 내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

절대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

있는 그대로를 비추는 것.

잠시 시간이 멈춘 것 같다는 것.


사면이 거울로 둘러싸인 엘리베이터의 스위치가 닫히고, 정방향의 축이 위아래로 진동하기 시작할 때였다. 거울 속에는 수많은 내가 줄을 지어 서 있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틀면, 바로 뒤의 나도, 그 뒤의 나도, 영원에 가까운 시차를 두고 완벽하게 같은 앵글로 고개를 틀었다. 광속과 반사의 법칙, 인간의 눈이 인지할 수 없는 미세한 소수점 단위의 오차. 거울 속의 환영들은 나라는 유일한 실체를 중심으로 짜인 철저한 대칭의 군대였다.


모든 것은 정교하게 설계된 질서였다.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거울 속 백 번째의 내가 몇 초 뒤에 시선을 거둘지 알고 있었다. 나라는 존재는 곧 이 무한한 반사의 고리를 관통하는 유일한 원점이자 법칙 그 자체였다.


그 순간이었다.

사방의 무한한 프레임 속에서, 저 멀리 사분의 일 박자쯤 뒤처져 있던 다섯 번째 혹은 여섯 번째의 내가, 나보다 먼저 고개를 돌렸다.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선명하게 내리달렸다. 나는 여전히 가만히 서서 전면의 정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상자 속 거울의 깊은 심연, 수많은 반사의 사슬 중간에 놓인 한 명의 내가 시선의 궤적을 이탈했다. 그는 내가 아직 취하지 않은 각도로 고개를 비틀더니, 거울 밖의 나를, 이 세계의 유일한 실체라고 믿었던 ‘나’를 차갑게 마주 보았다.


그것은 상식이 붕괴하는 소리 없는 충격이었다.

세계라는 거대한 연산 장치에 단 하나의 거친 톱니가 씹힌 것이다. 광학의 법칙이 무너지고, 시간의 선형성이 비틀려버린 유예의 순간. 거울 속의 무수한 분신들은 더 이상 나를 복제하는 무생물의 그림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만의 시차를 획득하고, 자신만의 의지를 가지기 시작한 독립된 파편들이었다.


진짜는 누구인가. 카메라를 들고 이 왜곡된 정적을 찍어내려 손가락을 굳힌 것은 거울 밖의 나인가, 아니면 반사의 굴레를 찢고 나와 나를 가만히 관찰하고 있는 거울 깊은 곳의 또 다른 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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