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을 편 손바닥의 고요
바람이 방향을 바꿀 때, 그것은 결코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그저 나뭇잎의 안쪽, 가장 그늘진 면을 한 번 쓱 쓸어 넘길 뿐이다.
오랫동안 나는 단단함이 미덕이라 믿었다. 굳은 살처럼 딱딱해진 마음은 외부의 상처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는 갑옷인 줄 알았다. 시련이 올 때마다 입술을 깨물었고, 억울함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때면 쓰디쓴 침과 함께 그것을 바닥 깊은 곳으로 삼켜버렸다. "괜찮다"라는 말은 내 언어의 가장 잦은 주어였고, "견딜 만하다"라는 태도는 내 삶의 유일한 포즈였다.
그러나 침묵은 조용한 독(毒)이다.
삼켜진 언어들은 사라지지 않고 장기(臟器)의 어두운 구석마다 차곡차곡 쌓였다. 오만 가지 말들이 썩어가며 내뿜는 가스는 서서히 내 몸의 압력을 높여갔다.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마음이 아니라, 오히려 그 딱딱하다고 믿었던 갑옷의 틈새였다.
사람들은 폭발만이 분노의 표출이라고 생각한다. 번개가 치고 고성이 오가는 광경만을 '한계'라고 부른다.하지만 진정한 한계, 즉 '더는 참을 수 없다는 신호'는 언제나 침묵보다 더 야위어 있다.
그것은 아주 작은 균열의 형태로 찾아온다. 어느 날 아침, 평소처럼 찌개 보글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을 때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순간. 늘 가던 길의 보도블록 모서리가 시리도록 생경하게 다가와 발걸음을 떼지 못할 때. 누군가가 건넨 아주 평범한 안부 인사"요즘 어떻게 지내?"라는 질문에 목구멍이 꽉 막혀 끝내 한마디도 부풀려내지 못하고 멍하니 상대의 눈동자만 바라보게 될 때.
그것은 거대하고 격렬한 파도가 아니라, 밀물이 빠져나간 뒤 드러나는 맨 바닥의 서늘함이다. 더 이상 밀어 넣을 공간이 없다는 소리 없는 비명이며, 내 안의 가장 연약한 아이가 마침내 백기를 들며 고개를 떨어뜨리는 순간이다.
참는다는 것은 나를 지키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조금씩 갉아먹으며 타인의 편안함을 사주는 낭비였다. 타인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 내 영혼의 밑바닥을 긁어내어 바치는 일이었다.
더는 참을 수 없다는 신호는 삶의 실패나 패배의 징후가 아니다. 그것은 내 안의 가장 깊은 생명력이 보내는 마지막 구원의 메세지다.
"이제 그만 나를 놓아달라. 이제는 타인이 아닌 너 자신을 위해 숨을 쉬라."
나는 마침내 오랫동안 쥐고 있던 꽉 쥔 주먹을 푼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붉은 손톱자국이 선명하다. 그 자국 사이로 서늘한 가을 바람이 들어온다. 눈물이 흐르지만, 이상하게도 슬프지 않다. 비워진 자리마다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숨소리가 다시 채워지기 시작한다.
멈추는 법을 배울 때, 다시 편안한 숨을 쉬며 걸어갈 수 있다.
주먹을 펴자 비로소 내가 무엇을 그토록 움켜쥐고 있었는지가 보였다.
그것은 타인의 인정이었고, 손해 보지 않으려는 안절부절못함이었으며, 홀로 도덕적 우위에 서 있다는 오만한 위안이었다. 손바닥에 깊게 파인 손톱자국은 내가 나 자신에게 가한 가장 자인한 훈장이었다. 참아냄으로써 지켜낸 줄 알았던 관계와 성채들은, 정작 내가 무너지자 아무런 힘도 없이 모래성처럼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것은 허무했지만, 이상하게도 나를 짓누르던 무거운 천장이 사라진 듯한 해방감을 주었다.
백기를 든다는 것은 항복이 아니라 선언이다. 타인이 정해놓은 무대 위에서 더 이상 그들의 연출대로 연기하지 않겠다는 선언, 내 삶의 비극과 희극을 결정할 권리를 내 손으로
되찾아오겠다는 선언이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견디는 것을 멈추면 그 뒤엔 무엇이 남느냐고. 무바카라임한 방종이나 끝없는 낙담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냐고.
하지만 한계를 인정하고 나면 뜻밖의 정적이 찾아온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감도는 서늘하고 맑은 고요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내 목소리의 진짜 톤을 듣게 된다. 화를 낼 때는 낮게 떨리고, 기쁠 때는 아이처럼 가벼워지는, 오랫동안 무채색의 침묵 아래 묻혀 있던 내 진짜 감정의 높낮이를.
거절하는 법을 배우면서 내 세상은 조금 작아졌지만, 비할 바 없이 빽빽하고 밀도 있어졌다. 나를 소모시켜야만 유지되던 관계들을 정돈하고 나니, 내 곁에는 내가 아플 때 함께 침묵해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진실된 온기만 남았다.
더는 참을 수 없다는 것은, 마침내 내가 나를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가장 격렬한 고백이다.
이제 나는 나를 부수어가며 타인의 세계를 세워주지 않는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몸을 기울인다. 딱딱한 갑옷을 벗어 던진 피부는 여전히 미세한 가시에도 쉽게 아프지만, 동시에 따스한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의 감촉을 가장 온전히 느껴낸다.
돌아보면 내가 참아냈던 것은 타인의 무례함만이 아니었다. 배고픔을 참았고, 졸음을 참았으며, 외로움을 참았고, 심지어 울고 싶다는 내 몸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리적 욕구마저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어른이라는 핑계로 억눌렀다. 나는 나 자신에게 가장 혹독하고 냉정한 감독관이었다.
진정한 단단함은 부러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굳은살이 아니라, 바람이 불 때마다 같이 흔들릴 줄 아는 유연한 줄기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더 이상 참지 않는다는 것은 나쁜 사람이 되겠다는 뜻이 아니다. 내 안의 우물물이 썩어가는 것을 방치하지 않기 위해, 물길을 터주어 바깥으로 흘려보내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이다. 나를 아끼는 마음에서 시작된 거절은 타인을 향한 배척이 아니라,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기 위한 가장 정직한 경계선이 되어준다.
해거름의 노을이 창가를 붉게 물들인다. 나는 오늘, 참 오랜만에 나에게 아무런 과제도 주지 않은 채 멍하니 저물어가는 빛을 바라본다. 무언가를 해내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내 삶은 이미 꽉 찬 문장이다.
마침내 내 안의 뿌리가 깊은 땅속으로 낮게, 아주 낮게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