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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을 탐험하는 피 묻지 않은 구두

타인의 고통을 관람하는 무감각의 유랑

by구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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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은 불길이 솟구치는 거대한 구덩이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감각하지 못하는 완전한 무감각의 상태인지도 모른다. 그 무감각의 영토를 걸어갈 때 우리는 가장 매끄럽고 윤이 나는 구두를 신는다. 비명이 사방에서 짓눌려 으깨지는 비포장도로 위에서도, 깨끗하게 닦인 가죽은 단 한 방울의 피도 튀기지 않은 채 오만하게 빛난다.


피가 묻지 않았다는 것은 무죄의 증명이 아니다. 그것은 지독한 무관심의 증거다. 우리는 날마다 타인의 지옥을 관람하고, 평가하고, 통과한다. 타인의 절망을 타일 위에 떨어진 붉은 앙금 정도로 여기며, 굽 높은 구두를 단정하게 조여 맨 채 수려하게 그 곁을 스쳐 지나간다. 신발 밑창에 수많은 영혼의 부스러기가 짓밟혀 가루가 되어도, 거울 속에 비친 구두는 여전히 결점 하나 없이 깨끗하다. 타락이란 때로 얼룩지는 것이 아니라, 끝내 더러워지지 않는 정갈함 속에서 완성된다.


구두를 신은 자의 발걸음은 경쾌하다. 그 경쾌함은 고통을 가볍게 여겨서가 아니라, 고통을 발밑에 깔고 서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비겁한 안온함이다. 지옥을 탐험하면서도 가죽 표면에 단 한 번의 비산(飛散)조차 허용하지 않는 저 정교한 매끄러움. 우리는 모두 타인의 핏물 위에 붕 떠 있는 섬이며, 스스로를 결백하다고 믿는 완벽한 방관자들이다.


언젠가 이 깨끗한 구두를 벗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되리라. 상처 입지 않은 단단한 가죽 아래, 단 한 번도 타인의 고통에 젖어보지 못한 나의 발이 얼마나 차갑게 죽어 있는지를. 피 묻지 않은 구두를 신고 지옥을 통과했다는 것은, 내가 끝내 어떤 인간도 사랑하지 못했다는 멸망의 수사(修辭)일 뿐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구원은 이 구두를 더럽히는 데서 시작하는가.


피 묻은 가죽을 두려워하는 동안 우리는 어떤 비극의 중심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지옥의 가장 깊은 골짜기는 타인의 슬픔이 웅덩이처럼 고여 있는 곳이며, 그곳을 지나려면 마땅히 신발을 적시고 옷자락을 더럽혀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얼룩을 두려워한 나머지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떠돌 뿐, 타인의 고통 속으로 단 한 걸음도 깊이 디딛지 못한다. 순결을 가장한 저 매끄러운 가죽은 사실 외부의 비명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하기 위해 둘러친 가장 비겁한 방벽이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흉터는 피부에 남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한 매끈함 그 자체다. 짓밟힌 것들의 비명이 귓가를 맴돌 때조차 우리는 구두 끝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기에 급급하다. 타인의 피를 닦아내는 손길이 아니라, 내 구두의 광택을 보존하려는 저 이기적인 손짓. 그것이 바로 우리가 날마다 가꾸어 나가는 작고 견고한 지옥이다. 피가 묻지 않았다는 사실은 나를 선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내가 아무도 구하지 않았으며, 아무와도 함께 울지 않았다는 서늘한 자백일 뿐이다.


이제 발끝을 내려다본다. 여전히 윤이 나는 가죽 위로 지옥의 붉은 노을이 차갑게 반사된다. 이 구두를 찢고, 그 밑창을 깨뜨려, 마침내 축축하고 뜨거운 이 땅의 흙을 맨발로 밟아야 할 시간이다. 타인의 피와 눈물이 내 피부를 적실 때, 비로소 나는 단단하게 얼어붙은 무감각의 껍질을 깨고 한 명의 인간으로 거듭날 것이다. 지옥을 무사히 통과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진정한 탐험은 스스로 지옥의 일부가 되어, 그 안에서 스러져가는 것들의 손을 잡는 일이다.


아무것도 묻지 않은 구두를 신은 채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발자국은 선명하지만, 그 어떤 발자국도 땅의 깊이를 품고 있지 않다. 스쳐 지나간 그 모든 절망과 비극 속에서도 단 한 번도 주저앉거나 흙을 묻히지 않은 행보. 그것은 걸어온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 위를 미끄러져 피해 온 비겁한 유랑이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구두에 피가 묻는 것이 아니라, 피를 묻히지 않기 위해 발걸음을 돌리는 순간의 무감각이다. 타인의 슬픔에 발을 디디면 신발은 더러워지고, 가죽은 틀어지며, 윤택했던 광택은 영영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훼손의 과정 속에서만 인간은 타인이라는 아득한 지옥을 제대로 건너갈 수 있다. 무구(無垢)함이란 때로 가장 지독한 형벌이며, 오염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 무엇과도 깊이 얽히지 못했다는 외로운 증거에 불과하다.


마침내 매끈한 가죽을 벗어 던지고, 붉게 물든 바닥에 맨발을 내딛는다. 발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흙의 차가움과 뜨거운 핏물의 감각. 그것은 비로소 내가 관람객의 위치에서 내려와 이 땅의 고통과 연결되었음을 알려주는 서늘하고도 뜨거운 감촉이다.


피 묻지 않은 구두는 이제 탐험의 끝에서 버려진다. 지옥을 무사히 빠져나가는 길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타인의 상처에 내 살을 대고, 함께 젖어가며, 그 속에서 서로의 손을 잡는 법을 배우는 것만이 이 긴 탐험의 유일한 목적지였으므로.


빛나던 구두가 지옥의 바닥에 홀로 남겨진다. 단 한 번도 타인의 통증을 머금지 않아 끝내 견고하고 차가웠던, 그러나 이제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는 거푸집일 뿐이다.


돌아보면 지옥이란 타인이 만들어낸 거대한 형벌의 공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으려 스스로를 철저히 고립시킨 채, 매끄러운 가죽 속에 갇혀 걸어온 내 삶의 다른 이름이었다. 결백이라는 허울 뒤에 숨어 타인의 고통을 외면했던 발걸음마다 서늘한 비겁함이 짙게 배어 있었다.


이제 구두를 벗어 던진 발끝으로 땅을 딛는다. 상처 입고 더러워진 맨발에 비로소 타인의 숨결과 뜨거운 눈물이 닿아온다. 윤이 나는 신발을 잃었으나, 나는 비로소 무감각이라는 길고 긴 지옥의 탐험을 끝내고 살아있는 하나의 인간으로 돌아온다.


지옥을 탐험하는 피 묻지 않은 구두는 없다.

사랑하는 한, 우리는 모두 피 흘리는 맨발로 이 지옥을 함께 건너야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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