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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다른 색으로 사라진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견디는 사람들에 대하여

by구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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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색으로 세계를 견딘다. 어떤 사람은 슬픔을 파란색으로 기억하고, 어떤 사람은 사랑이 끝난 자리에 붉은색을 남긴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오후의 빛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생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마지막 장면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같은 비를 맞으며 같은 거리를 걷지만, 그 순간 각자의 눈에 도착한 세계가 정말 같았는지는 누구도 증명할 수 없다. 다만 서로가 같은 것을 보았으리라는 믿음으로 살아갈 뿐이다.


어쩌면 이해한다는 말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약속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한때 사람 사이의 오해가 충분한 설명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다. 마음을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조금 더 오래 듣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 애쓰면 언젠가는 서로의 내부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알게 되었다. 어떤 말은 아무리 정확해도 도착하지 않으며, 어떤 침묵은 아무리 오래 설명해도 다른 사람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는다는 것을. 한 사람에게는 간절한 고백이 다른 사람에게는 지나가는 소음일 수 있고, 누군가가 평생을 바쳐 지켜 낸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면서도 각자의 세계 바깥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다.

색맹이라는 말이 있다. 빛이 사물에 닿아 만들어 낸 차이를 온전히 구별하지 못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그러나 나는 때때로 인간이야말로 가장 정교한 색맹을 지닌 존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눈앞에 있는 색을 보면서도 자신이 보고 싶은 색으로 고쳐 읽는다. 미워하는 사람의 친절에서는 위선을 발견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잔인함에서는 상처 입은 마음을 발견한다. 같은 행동이 누구의 손에서 비롯되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름을 얻는다. 진실은 하나일지 모르지만, 그것을 통과하는 마음은 저마다 다른 빛을 굴절시킨다.


우리가 세상을 잘못 보는 것은 눈이 어두워서가 아니라,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오래된 상처를 통해 세상을 본다. 그래서 다가오는 손길에서도 떠날 준비를 읽고, 다정한 목소리에서도 언젠가 닥칠 침묵을 예감한다. 다른 사람은 한 번도 버림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에게 사랑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집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사랑은 문이 닫히기 전에 모든 말을 끝내야 하는 방이다. 두 사람은 같은 집에 살면서도 서로 다른 계절을 견딘다. 한 사람은 창문을 열어 봄을 들이고, 다른 사람은 차가운 바람이 들어올까 봐 커튼을 친다.


그리고 어느 날, 한 사람은 묻는다.

왜 당신은 내가 열어 놓은 창문을 두려워하느냐고.

다른 사람은 대답하지 못한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바람이 불어오던 어느 날 끝내 돌아오지 않았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명할 수 없는 기억은 몸속에 남아 습관이 된다. 습관은 성격이라는 이름을 얻고, 성격은 그 사람의 본모습으로 오해받는다. 우리는 타인의 가장 오래된 상처를 보지 못한 채 그 상처가 만들어 낸 행동만을 보고 그를 판단한다.


그렇게 이해받지 못한 사람들은 조금씩 자신의 색을 잃는다.

처음에는 선명한 색으로 저항한다. 자신의 마음을 설명하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설명이 거듭 실패하면 사람은 말을 줄인다. 말을 줄인 사람은 표정을 감추고, 표정을 감춘 사람은 마침내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조차 타인에게 보여 주지 않게 된다. 누구에게도 오해받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평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오래된 포기의 다른 이름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안다. 언제나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 누군가 떠날 때 붙잡지 않는 사람, 자신이 받은 상처보다 상대가 느낄 불편을 먼저 걱정하는 사람. 그들은 성숙하다는 칭찬을 듣는다. 너는 참 어른스럽다는 말,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말,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안다는 말을 듣는다. 아무도 그들이 얼마나 많은 말을 삼켰는지 묻지 않는다. 침묵이 타고난 기질인지, 아니면 더 이상 설명할 힘이 남아 있지 않은 사람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생존의 방식인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대개 드러난 색을 사랑하고, 그 색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어둠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는 누군가의 가장 밝은 순간을 그 사람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환하게 웃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다정하게 말하는 사람은 다정한 사람이며, 아무런 불평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삶에 만족하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빛은 사물의 한쪽 면만을 드러낸다. 어떤 얼굴이 환하게 빛나는 동안 그 뒤편에는 누구도 보지 못하는 그림자가 자라고 있을 수 있다. 우리는 빛을 보았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이해했다고 착각한다.


어쩌면 사랑도 그 착각에서 시작되는 것인지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의 색은 처음에는 놀라울 만큼 선명하다. 그가 좋아하는 음식의 온도, 무심코 고개를 돌리는 방향, 잠들기 직전의 작은 습관까지 세계의 일부가 된다. 그 사람이 바라보는 풍경을 따라 바라보다 보면 이전에는 존재조차 몰랐던 색들이 눈에 들어온다. 회색이라고만 생각했던 겨울 하늘에 푸른 기운이 있다는 것, 아무 의미 없이 지나쳤던 골목의 벽에도 오후가 머물다 간다는 것, 오래된 사물에도 누군가의 시간이 쌓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눈을 빌려 세계를 새롭게 보는 일이다.

그러나 그 눈을 빌려 쓰는 동안 우리는 그 사람의 세계가 자신의 세계와 같아졌다고 믿기 시작한다. 내가 이해한 만큼 상대도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내가 견딜 수 있는 만큼 상대도 견딜 수 있으리라 여긴다. 내가 주는 사랑의 형태가 상대에게도 사랑으로 도착하리라고 믿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자신이 내민 것이 상대에게는 상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랑해서 한 말이 모욕이 되고, 지키기 위해 한 행동이 구속이 되며, 잃고 싶지 않아서 붙잡은 손이 상대에게는 도망쳐야 할 이유가 된다.


그 순간 우리는 깨닫는다. 같은 사랑 안에서도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누군가는 곁에 머무는 것으로 사랑하고, 누군가는 떠나지 않는 것으로 사랑한다. 누군가는 모든 것을 말해 주는 것이 정직이라고 믿고, 누군가는 말하지 않는 것이 상대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쪽이 옳은지 판단하기 전에 이미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에 다른 이름을 붙여 놓는다. 한 사람은 자신을 헌신했다고 기억하고, 다른 사람은 자신이 억압받았다고 기억한다. 같은 날을 살았는데도 훗날 두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전혀 다른 계절을 품고 있다.


기억은 언제나 자신이 견딜 수 있는 색으로 과거를 칠한다.

그러므로 이별은 단순히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곁을 떠나는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두 사람이 공유했다고 믿었던 세계가 사실은 처음부터 서로 다른 풍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는 일이다. 함께 걷던 거리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한 사람에게 그곳은 행복이 시작된 장소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불행을 예감했던 장소가 된다. 같은 노래가 누군가에게는 돌아가고 싶은 시간을 불러오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얼굴을 데려온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이별을 잊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잊는다는 것은 대개 기억의 소멸이 아니라 기억의 색이 변하는 일이다. 선명했던 붉은색은 탁한 갈색으로 가라앉고, 견딜 수 없이 눈부셨던 노란색은 오래된 종이처럼 바랜다. 어떤 기억은 색을 잃는 대신 형태를 바꾼다. 한때는 분노였던 것이 연민이 되고, 원망이었던 것이 이해가 되며,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이 그저 외로움을 견디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달라졌을 뿐이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보다 더 슬픈 것은,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존재를 틀린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일이라고. 나와 다른 색을 가진 사람을 잘못된 색이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는 세계가 지닌 가장 본질적인 풍요로움을 잃는다. 푸른색이 붉은색보다 옳을 수 없고, 어둠이 빛보다 열등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저 서로 다른 파장의 빛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계에 도착할 뿐이다.

그런데 인간은 차이를 견디는 일보다 차이에 이름을 붙이는 일을 더 쉽게 배운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에게 이상하다는 이름을 붙이고,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슬퍼하는 사람에게 냉정하다는 이름을 붙인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면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상처를 드러내는 방법이 다르면 상처받지 않았다고 단정한다. 그렇게 우리는 타인의 내부를 알지 못하면서도 그 사람에 대한 판단만큼은 완성한다. 이름이 붙은 순간 질문은 멈춘다. 질문이 멈춘 자리에서 사람은 더 이상 한 인간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어떤 유형으로 남는다.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설명을 완성하는 일이 아니라, 끝내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전부 알 수 없다. 가장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조차 상대가 혼자 있을 때 어떤 기억을 되짚는지, 어떤 말 앞에서 오래 멈추는지, 무엇을 잃을까 두려워 밤잠을 설치는지 완벽하게 알지 못한다. 한 사람의 내부에는 그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은 방들이 있다. 문을 열어 보여 준 방이 있다고 해서 집 전체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누군가의 삶에 초대받을 수는 있어도, 그 삶의 모든 주인이 될 수는 없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사랑은 조금 달라진다.

상대를 자신이 이해한 모습 안에 가두는 대신, 아직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남겨 두는 일. 설명을 요구하기 전에 그 사람이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을 살아왔음을 짐작하는 일.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의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 일. 그것은 거창한 용서도, 위대한 희생도 아니다. 다만 내가 보지 못한 세계가 나의 세계만큼이나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작은 태도다.


어쩌면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능력이 아니라,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함부로 부정하지 않는 마음일 것이다.


우리는 결국 모두 사라진다. 한때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자신이 오래 바라보았던 창문과 자신을 오래 기다려 주었던 의자 곁에서도 조금씩 멀어진다. 살아 있을 때조차 우리는 타인의 기억 속에서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 누군가에게는 친절한 사람이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잔인한 사람이었으며, 어떤 이에게는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었고, 또 다른 이에게는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중 어느 하나만이 진짜 나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내가 기억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는 내가 얼마나 다른지 알지 못한다. 누군가는 내가 무심했다고 기억할 것이고, 누군가는 내가 지나치게 다정했다고 말할 것이다. 내가 진심으로 건넨 말이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상처를 다시 여는 칼날이었을 수도 있고, 별생각 없이 지나친 순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유일한 위로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 나는 내가 남긴 모든 흔적을 확인할 수 없으며, 내가 어떤 색으로 기억될 것인지 결정할 수도 없다.


그것이 살아간다는 일의 불가피한 불완전함이다.

한 사람의 생애는 그가 실제로 살아 낸 시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그가 떠난 뒤 어떤 이야기로 남는지, 끝내 하지 못한 말들이 누구의 마음속에서 어떤 의미로 되살아나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사람은 죽기 전에 이미 여러 번 사라진다. 누군가의 마음에서 잊히면서, 한때 자신을 설명하던 언어를 잃으면서,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에게 더 이상 예전의 얼굴로 기억되지 않으면서 사라진다.

그리고 그 사라짐은 누구에게나 같은 색으로 오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흰색으로 사라진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색이 섞여 있어 더는 하나의 이름으로 부를 수 없는 빛으로.


어떤 사람은 검은색으로 사라진다. 모든 것을 삼킨 것처럼 보이지만, 그 어둠 속에는 끝내 말해지지 못한 수많은 빛의 흔적이 남아 있다.


어떤 사람은 붉은색으로 사라진다. 사랑과 분노를 구분하지 못했던 시간의 온도를 남기고, 어떤 사람은 푸른색으로 사라진다. 아무도 알지 못했던 깊이와 끝내 건너가지 못한 거리만을 남긴 채.


우리는 서로의 마지막 색을 알지 못한다. 한 사람의 생이 끝나는 순간조차 그가 다른 사람들의 내부에서 어떤 색으로 남을지는 정해지지 않는다. 다만 그가 떠난 뒤에도 어떤 빛은 오래도록 벽에 머물고, 어떤 그림자는 아무도 없는 방에서 천천히 움직인다. 사라진다는 것은 완전히 없어지는 일이 아니라, 더 이상 자신의 색을 직접 설명할 수 없게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나는 누군가를 이해했다고 쉽게 말하지 않으려 한다. 그 사람의 슬픔을 안다고, 그 사람의 사랑을 안다고, 그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고 서둘러 결론 내리지 않으려 한다. 내가 본 것은 그 사람의 일부였을 뿐이며, 내가 들은 이야기는 그가 겨우 꺼내 놓을 수 있었던 시간의 일부였을 뿐이다.

사람에게는 언제나 내가 도달하지 못하는 곳이 있다.


그곳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예의일 것이다.

우리는 같은 빛 아래서 태어나 서로 다른 세계를 배운다. 누군가는 상실을 통해 사랑을 배우고, 누군가는 사랑을 통해 상실을 배운다. 누군가는 붙잡는 법을 익히고, 누군가는 놓아주는 법을 익힌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색을 닮아 가기도 하지만 끝내 하나의 색이 되지는 못한다. 아무리 가까워져도 각자의 내부에는 끝내 건널 수 없는 거리가 남는다.


그 거리는 실패의 증거가 아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없다는 사실의 증거다.

나는 이제 우리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함께한 시간이 무의미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같은 색이 되지 못했어도 한때 서로의 빛을 받아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일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세계를 완전히 소유하지 못했어도 그 세계의 존재를 잠시나마 진심으로 믿어 주었다면, 그 짧은 믿음은 사라진 뒤에도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이다.


끝내 이해하지 못한 마음에도 사랑은 머물 수 있다. 끝내 화해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그리움은 남을 수 있다. 함께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이 서로의 생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는 일도 가능하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색으로 태어나 타인의 눈 속에서 다른 색이 된다. 살아 있는 동안에도 수없이 변하고,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달라지며, 누군가를 잃으면서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어둠의 이름을 배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이 어떤 색이었는지 스스로 말할 수 없는 곳으로 떠난다.


그때 누군가가 나를 기억한다면, 부디 나를 하나의 색으로만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다정했던 순간과 잔인했던 순간, 용감했던 순간과 비겁했던 순간, 사랑하면서도 상처를 주었던 순간과 떠나면서도 돌아보고 싶었던 순간을 함께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어느 한쪽의 색으로 나를 완성하지 말고, 서로 어울리지 않는 색들이 한 사람의 생애 안에서 얼마나 오래 공존할 수 있는지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선한 사람으로만 기억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완벽하게 이해받는 사람으로 남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미처 설명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존재했다는 사실만은 부정되지 않기를 바란다. 누군가에게 보였던 나와 다른 누군가에게 보였던 내가 서로 달랐더라도, 그 모든 모습이 내가 살아 낸 하나의 생애였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죽음이란 자신에 관한 마지막 설명마저 타인에게 넘겨주는 일인지 모른다. 내가 떠난 뒤에는 다른 사람들이 나의 색을 결정할 것이다. 그들이 어떤 색을 선택하든 나는 더 이상 그것을 수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때 비로소 나는 나라는 사람에게도 내가 알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타인의 색을 너무 일찍 결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당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색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마음이 틀린 것도 아니다. 당신에게는 어둠으로 보이는 곳에서 누군가는 간신히 자신의 빛을 지키고 있을지 모른다. 당신이 끝이라고 생각한 자리에서 누군가는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시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 다른 색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사라지기 전까지, 아주 잠깐이라도 서로의 색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면.

끝내 같은 색이 되지 못한 두 사람이 서로를 잘못된 색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있다면.

누군가의 마음을 다 알지 못하면서도 그 마음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은 믿어 줄 수 있다면.

그 짧은 순간만큼은 이 세계가 우리를 완전히 오해하게 내버려 두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남길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빛일 것이다.


사라진 뒤에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 것은 우리가 같은 색이었다는 기억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색을 지닌 채 한때 같은 빛 속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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