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윙클 : Periwinkle

경계에 머무는 마음의 색

by구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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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에는 이상한 기억력이 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색에 집착하며 글을 쓰게 된 이유도 기억력 때문일 것이다.

오래전 보았던 사람의 얼굴보다 먼저 떠오르는 색이 있고,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어느 오후를 다시 데려오는 색도 있다. 그래서 나는 색을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색은 눈으로 들어와 마음 한구석에 오래 머문다.

페리윙클을 처음 보았을 때도 그랬다.

파랑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드럽고, 보라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맑았다. 푸른빛과 보랏빛 사이,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색.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그 애매함이 오히려 아름다웠다.

나는 한동안 그 색의 이름을 몰랐다.

그저 늦은 오후의 하늘이라고 생각했다. 비가 그친 뒤 아직 젖어 있는 창문 너머의 빛, 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 잠시 세상이 낮은 목소리를 내는 시간의 색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오래전 누군가의 셔츠에서 본 것 같기도 했고, 아무도 없는 병실의 벽에서 본 것 같기도 했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 색에 이름이 있다는 것을.


Periwinkle.

이름을 알고 나니 이상하게 색이 조금 달라 보였다.

사람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이름을 모를 때는 그저 지나치던 사람이, 이름을 알고 나면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어떤 계절을 지나왔는지 알게 되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표정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에게도 저마다의 색이 있다는 말을 나는 이제 조금 믿는다.

어떤 사람은 붉고, 어떤 사람은 검으며, 어떤 사람은 눈처럼 희다.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색도 있고, 오래 바라보고 싶은 색도 있다. 그리고 페리윙클처럼 쉽게 이름 붙일 수 없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좋다.

한 가지 색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람.

웃고 있지만 슬픔을 가지고 있고, 단단해 보이지만 작은 말 한마디에 오래 마음을 두는 사람. 떠날 것처럼 말하면서도 정작 가장 오래 자리를 지키는 사람.


세상은 사람에게 선명한 색을 요구한다.

좋으면 좋다고 말하고, 싫으면 싫다고 말하라고 한다.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행복한지 불행한지,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끊임없이 대답하게 한다.


회색은 애매하고, 보라색은 모호하며, 파란색은 차갑다고 쉽게 판단한다.

하지만 살아보니 마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사랑하면서 미워할 수도 있고, 떠나고 싶으면서 남고 싶을 수도 있으며, 행복한 날에도 문득 오래된 슬픔 하나가 찾아올 수 있다.


사람은 원래 여러 색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페리윙클을 좋아한다.

파랑과 보라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는 색.

자신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색.

나는 그 색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조용해진다.


아마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선명한 것보다 흐릿한 것에 마음이 가기 때문일 것이다.

젊었을 때는 분명한 것이 좋았다. 확실한 대답을 좋아했고, 명확한 관계를 원했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을 구분하고 싶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렸는지도 빨리 결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결정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시간도 있고, 대답하지 못한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날도 있다는 것을.

그것이 꼭 실패는 아니라는 것도.


꽃이 피지 않는 계절이 있다고 해서 나무가 죽은 것은 아니듯,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시간이 있다고 해서 사람이 멈춰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라고 있다.

페리윙클의 색처럼.


가까이에서는 파랑인지 보라인지 알 수 없지만 조금 떨어져 바라보면 그 사이에서만 만들어지는 고유한 빛이 있다.


사람도 그렇다.

가까이에서 너무 오래 바라보면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왜 저런 선택을 하는지, 왜 아직도 그 일을 잊지 못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

그럴 때는 조금 떨어져 바라볼 필요가 있다.

사람에게도 색이 번지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누군가를 쉽게 정의하고 싶지 않다.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강한 사람인지 약한 사람인지, 행복한 사람인지 불행한 사람인지 너무 빨리 이름 붙이고 싶지 않다.


그 사람에게 아직 내가 보지 못한 색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나에게도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색이 있을 테니까.


창밖을 바라본다.

저녁이 가까워진 하늘에 푸른빛과 보랏빛이 천천히 섞이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둘 사이의 경계가 사라진다. 파랑이라고 부르기도, 보라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시간이 온다.


나는 그 순간을 오래 바라본다.

어쩌면 아름다운 것은 늘 경계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 떠나지 않은 사람과 이미 떠난 사람 사이.

사랑과 미움 사이.

젊음과 늙음 사이.

기억과 망각 사이.

그리고 오늘과 내일 사이.

그 사이에는 이름 붙이기 어려운 빛이 있다.


나는 그 빛을 페리윙클이라고 부른다.


Periwinkle.

완전히 파랗지도, 완전히 보랗지도 않은 색.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자기만의 빛을 잃지 않는 색.

어쩌면 나도 그런 색으로 늙어가고 싶은 것인지 모른다.

선명하지 않아도 좋고, 누군가의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아도 좋다.


그저 오래 바라본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는 색.

말없이 곁에 있다가 문득 생각나는 색.

한 계절이 지나고도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는 색.

사람의 마음에도 그런 색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이름을 붙일 수 없어서 더 오래 간직하게 되는 색.

나는 오늘도 그 색을 바라본다.


해가 지고 난 뒤의 하늘처럼 조용하고,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은 마음처럼 희미한,

페리윙클의 시간 속에서.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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