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엄마가 된 여름》 1
오늘 온라인카지노북에 글을 올리는 과정에서 잠깐 착오가 있었습니다. 《딸이 엄마가 된 여름》의 첫 번째 글로 다시 발행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번 영국행은 여행이 아니었다.
평소 같으면 비행기표를 끊는 순간부터 어디를 가볼지, 무엇을 먹을지 찾아보았을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이면 날씨를 확인하고 옷을 챙기면서 남편과 가볼 만한 곳을 이야기하는 것도 여행의 일부였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는 집을 떠난다는 가벼운 설렘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우리 부부가 영국으로 가는 이유는 하나였다. 둘째 아이를 낳은 큰딸의 산후조리를 해주기 위해서였다.
큰딸의 출산 예정일은 7월 중순이었다. 우리는 그 날짜에 맞춰 회사에 미리 2주 휴가를 신청해두었는데, 둘째 손녀가 예정일보다 조금 일찍 세상에 나왔다. 다행히 사위가 먼저 휴가를 내어 산모인 딸과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고, 우리는 예정대로 영국에 가서 그다음 돌봄을 이어가기로 했다.
딸이 첫아이를 낳았을 때 나는 곁에 있어주지 못했다. 그 무렵 우리 부부는 매주 일요일이면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시아버지와의 대화가 예전 같지 않았다. 방금 했던 말씀을 몇 번이고 반복하셨고,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시는 듯 엉뚱한 대답을 하실 때가 많아 대화를 이어가기 어려웠다. 그러면서 아주 오래전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되풀이해서 들려주셨다. 전화를 끊고 나면 남편과 나는 서로 같은 걱정을 했다. 아버님께 경도인지장애가 시작된 게 아닐까 싶었다.
우리는 시어머니와 두 시동생에게 아버님을 병원에 모시고 가서 검사를 받아보시게 하라고 여러 번 부탁했다. 하지만 워낙 고집이 세셨던 아버님은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하셨고, 가족들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장남인 남편과 내가 직접 한국에 가서 아버님을 모시고 병원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일정이 딸의 첫 출산과 겹쳤다.
한쪽에는 검사를 받아보셔야 할 아버님이 계셨고, 다른 한쪽에는 막 아이를 낳은 딸이 있었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 다른 나라에 있었고 우리는 두 곳에 동시에 갈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한국으로 갔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내가 없다고 딸이 아이를 키우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고 영국에는 사위도 있었다. 그런데도 아이를 낳고 힘들었을 딸에게 따뜻한 밥 한 끼 해주지 못했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둘째를 가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딸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우리가 꼭 갈게. 네 몸조리는 우리가 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첫아이 때 해주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남아 있었기에 이번만큼은 그 말을 꼭 지키고 싶었다.
그런데 딸의 출산을 얼마 앞두고 한국에서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시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정신없이 짐을 꾸리면서도 딸 생각이 났다. 혹시 할아버지 장례 때문에 우리가 영국에 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첫아이 때도 곁에 있어주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될까 봐 딸이 걱정할 것 같았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 나는 딸에게 다시 말했다.
“할아버지 장례 잘 치르고 돌아와서 영국 갈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갈 테니까 너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몸 잘 챙겨.”
장례를 마치고 캐나다로 돌아오자 이번에는 영국 갈 준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시아버지를 떠나보내기 위해 한국행 짐을 꾸렸는데, 돌아오자마자 새로 태어난 손녀를 만나기 위해 다시 캐리어를 꺼내고 있었다. 한 사람을 떠나보낸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아이를 만나러 갈 준비를 해야 했다.
그때는 그 시간을 가만히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한국을 다녀온 피로도 채 풀리지 않았지만 영국으로 가져갈 것들을 준비해야 했다. 슬퍼할 시간과 기뻐할 시간이 따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지나고 있었다.
텃밭에서 수확한 깻잎으로 김치를 담고, 지난해 직접 담근 된장과 고추장, 간장도 챙겼다. 묵은 김장김치도 넉넉히 담았고 한국에서 가져온 국산 참기름과 태양초 고춧가루도 빠뜨리지 않았다. 사위가 좋아하는 불고기와 잡채도 가서 해주고 싶었다. 냉장고와 찬장을 열어볼 때마다 가져가고 싶은 것이 하나씩 더 눈에 들어왔다. 이것도 있으면 좋을 것 같고 저것도 가져가면 해줄 수 있는 음식이 하나 더 생길 것 같았다.
항공사에서 허용하는 무게가 있으니 마음 가는 대로 넣을 수도 없었다. 캐리어를 저울에 올렸다가 다시 열고, 몇 가지를 빼고 또 다른 것을 넣기를 여러 번 반복한 끝에 큰 캐리어 네 개가 꽉 찼다. 짐의 90퍼센트가 먹을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산후조리를 하러 가는 건지, 캐나다에 있는 우리 집 부엌을 영국으로 옮겨가는 건지 나도 웃음이 난다.
그래도 그렇게 챙기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놓였다. 내가 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밥을 해주고 빨래를 하고, 아이들을 봐주면서 딸이 잠시라도 마음 놓고 눈을 붙일 수 있게 해주는 것. 그중에서도 밥은 내가 가장 익숙하게 해줄 수 있는 일이었다.
토론토 공항으로 가던 날은 햇볕이 유난히 뜨겁고 날씨가 화창했다. 곧 딸과 사위, 첫째 손주를 다시 보고 아직 한 번도 안아보지 못한 둘째 손녀를 만난다는 생각에 마음은 들떠 있었지만, 캐리어 네 개를 차에 싣고 공항으로 가는 마음은 평소 여행을 떠날 때와는 달랐다. 설렘만 있는 길은 아니었다.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남편이 느닷없이 내게 한마디를 했다.
“당신, 가서 송이가 짜증 내도 그냥 받아줘.”
나는 무슨 말을 하나 싶어 남편을 쳐다봤다. 남편은 산모들은 몸도 힘들고 잠도 제대로 못 자니 예민해질 수 있다며, 딸이 평소보다 예민해지더라도 화내지 말고 잘 받아주라고 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우리가 부모 노릇 제대로 하고 온다고 생각하자고 했다.
평소 같으면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한마디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날은 그냥 알았다고 했다. 남편이 나에게 당부하는 말을 듣고 있으니 이번 영국행을 신경 쓰고 있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딸에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은 남편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마음은 그렇게 앞서 있었지만 우리 몸은 예전 같지 않았다. 남편은 오랫동안 허리디스크로 고생해왔고 나 역시 큰 지병은 없지만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다. 2주 동안 딸의 집에서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첫째 손주를 챙기고 갓 태어난 아기도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니 우리가 도움을 주러 갔다가 오히려 둘 중 하나라도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은근히 들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다른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 런던에 가서 어디를 구경할지 찾아보지도 않았고, 처음부터 남편과 이번 2주는 딸의 산후조리에만 집중하자고 했다. 딸이 한 시간이라도 더 자고, 따뜻한 밥 한 끼라도 편하게 먹고, 몸을 조금이라도 추스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비행기는 토론토를 떠나 런던으로 향했다. 긴 비행시간 동안 좌석에 앉아 있으니 이상하게 오래전 딸의 모습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처음 내 품에 안았던 날부터 학교에 처음 보내던 날, 캐나다에서 자라던 시간과 집을 떠나 독립하던 날, 그리고 어느 날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며 지금의 사위를 우리에게 소개하던 때까지. 시간이 순서대로 떠오른 것은 아니었다. 오래된 사진첩을 아무 데나 펼쳐보듯 한 장면이 지나가면 또 다른 장면이 뒤따라왔다.
그 아이가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그날 비행기 안에서 생각하니 새삼 낯설었다. 내 손을 잡고 따라다니던 아이에게 이제 자기 집이 있고 남편이 있고,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둘이나 있다는 것이 문득 믿기지 않았다.
예전에는 우리가 딸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데리고 다녔다. 어디를 갈지, 무엇을 먹을지, 언제 집으로 돌아올지 부모인 우리가 정했고 딸은 우리를 따라오면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딸을 만나기 위해 바다를 건너고 있었다. 딸은 우리가 없는 곳에서도 자기 가족과 하루를 만들고,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자식이 어느 날 갑자기 어른이 된 것도 아닌데 부모의 눈에는 그 변화가 한꺼번에 보이는 순간이 있는가 보다.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했다.
내가 그만큼 나이를 먹은 건가.
딸이 두 아이의 엄마가 되기까지 흐른 시간은 그대로 내가 나이를 먹어온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이제 아이의 손을 잡고 학교에 데려다주던 젊은 엄마가 아니라, 허리가 아픈 남편과 서로의 체력을 걱정하면서 손주를 만나러 가는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부모의 마음은 자식의 나이를 잘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딸은 이미 한 남자의 아내이고 두 아이의 엄마인데도 내게는 여전히 밥은 잘 먹는지, 잠은 제대로 자는지 걱정되는 딸이었다. 이제는 내가 없어도 얼마든지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딸이 힘들 때면 여전히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든다.
영국이 가까워질수록 생각은 다시 앞으로 가기 시작했다. 산후조리를 잘해줄 수 있을까, 딸이 충분히 쉴 수 있게 해줄 수 있을까. 갑자기 동생이 생기고 어른들의 관심이 갓난아기에게 쏠렸을 첫째 손주의 마음도 놓치고 싶지 않았고, 사위가 좋아하는 음식도 많이 해주고 싶었다. 우리가 가서 얼마나 잘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첫아이 때 하지 못했던 일을 이번에는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편이 놓였다.
얼마쯤 지났을까. 기내 안내방송에서 곧 런던에 도착한다는 말이 들렸다. 창밖을 내다보니 구름 아래로 영국 땅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제 곧 딸을 만나고, 아직 한 번도 품에 안아보지 못한 둘째 손녀도 만난다.
옆자리의 남편도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 전 우리는 한국에서 아버님을 떠나보내고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은 새로 태어난 손녀를 만나러 가고 있었다. 짧은 시간 사이에 한 사람을 보내고 또 한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 위에 우리 부부가 있었다.
나는 다시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딸의 손을 잡고 다니던 시간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딸을 돌봐주러 가고 있었다.
비행기는 천천히 고도를 낮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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