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올랭피아
[작품 정보]
작가: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1832~1883, 프랑스)
작품명: 올랭피아(Olympia, 1863)
기법: 캔버스에 유채, 크기: 130.5 × 191cm
소장처: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
1865년 파리 살롱에 벌거벗은 여성의 그림 한 점이 걸렸습니다.
누드화 자체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살롱에는 신화 속 비너스와 여신들의 나체가 수없이 등장했습니다.
실제로 불과 2년 전인 1863년 알렉상드르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은 파리 살롱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나폴레옹 3세가 직접 구입했습니다. 관능적인 누드였지만 신화 속 여신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네의 <올랭피아>를 본 관객들은 분노했습니다.
무엇이 달랐을까요.
침대에 누운 여자는 여신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파리에서 실제로 볼 수 있는 고급 매춘 여성인 코르티잔(courtesan)⁽¹⁾의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오르세 미술관은 마네가 전통적인 비너스를 당시의 현실적인 매춘 여성으로 바꾸어 놓았고, 이것이 1865년 살롱에서 거센 반발을 일으킨 핵심 이유였다고 설명합니다.
더구나 그녀는 관람객을 똑바로 바라봅니다.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눈을 피하지도 않습니다.
그 시선 때문에 그림 앞에 선 남성 관람객은 단순히 아름다운 누드를 감상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치 그녀를 찾아온 손님의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도 올랭피아의 직접적인 시선이 관람자를 고객의 위치에 놓는다고 설명합니다.
그때 흑인 하녀가 꽃다발을 들고 들어옵니다.
꽃을 보낸 사람은 그림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올랭피아의 시선과 꽃다발을 연결하면, 누군가가 그녀를 찾아왔다는 상황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침대 끝에는 작은 검은 고양이도 서 있습니다.
이 장면에는 유명한 원본이 있습니다.
티치아노가 1538년에 그린 <우르비노의 비너스>입니다.
마네는 누워 있는 여성의 자세와 침대, 뒤쪽의 하녀까지 티치아노의 구도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티치아노의 그림에서 여성의 발치에 얌전히 누워 있던 개 대신, 마네는 꼬리를 치켜세운 검은 고양이를 놓았습니다. 고양이는 마치 방금 들어온 사람을 발견한 듯 몸을 세우고 있습니다.
즉, 관객들이 익숙하게 보아왔던 ‘비너스’의 형식을 가져와 내용만 현대의 파리로 바꿔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더 불편했습니다.
고대 신화라는 안전한 포장이 사라지자, 같은 누드가 전혀 다른 그림이 되었습니다.
그림 속 올랭피아의 실제 모델은 빅토린 뫼랑(Victorine Meurent)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는 구분해야 합니다.
그림 속 인물은 코르티잔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모델 빅토린 뫼랑이 매춘 여성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뫼랑은 마네의 여러 작품에 등장한 전문 모델이었고, 훗날 자신도 화가로 활동했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파리 살롱에도 출품되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역시 뫼랑을 <올랭피아>와 <풀밭 위의 점심식사>의 모델로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865년 관객들에게 그런 구분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림 속 여성이 너무 현실적이라는 사실에 화를 냈습니다.
오르세 미술관에 따르면 비평가들은 작품을 거칠게 공격했고, 반대로 에밀 졸라를 비롯한 소수의 인물들은 마네의 현대성을 적극적으로 옹호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상황은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마네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올랭피아>는 그의 작업실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자 클로드 모네가 나섰습니다.
모네는 사전트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공개 모금 운동을 벌여 마네의 유족에게서 <올랭피아>를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1890년 이 그림을 프랑스 국가에 기증했습니다.
모네가 원했던 것은 한 가지였습니다.
한때 조롱받았던 마네가 프랑스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국가가 인정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올랭피아>는 1907년 루브르에 들어갔고, 현재는 오르세 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1865년 파리 사람들이 불편해했던 것은 여성이 벗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비너스의 나체에는 익숙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여성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달랐습니다.
이제 그림을 다시 보세요. 올랭피아는 눈을 감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않습니다. 1865년 파리 사람들을 가장 불편하게 만든 것은 그녀의 벗은 몸보다, 자신들을 똑바로 바라보는 두 눈이었습니다.
1) 코르티잔(courtesan): 코르티잔은 단순한 거리의 매춘 여성이 아니라, 부유한 남성들의 후원을 받으며 파리의 화려한 사교계 주변에서 생활하던 고급 매춘 여성을 뜻했습니다.
특히 18~19세기 유럽에서 코르티잔은 부유한 귀족·사업가·정치인 등을 고객이나 후원자로 두고, 사교계와 가까운 곳에서 생활하던 여성을 말합니다.
일반적인 거리의 성매매 여성과 달리 값비싼 옷을 입고 오페라나 극장, 무도회에 등장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특정 부유한 남성의 장기간 후원을 받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코르티잔에게는 외모뿐 아니라 패션, 대화 능력, 음악·예술에 대한 교양, 사교 능력도 중요했습니다. 유명한 코르티잔 가운데는 당시 패션을 유행시키거나 예술가·작가들과 교류하며 슬롯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여성도 있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