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가셰 박사의 초상
[작품 정보]
작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네덜란드)
작품명: 가셰 박사의 초상(Portrait of Dr. Gachet, 1890)
기법: 캔버스에 유채, 크기: 68.2 × 57cm
소장처: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 제2버전
1890년 5월, 반 고흐는 생레미 정신병원을 나와 파리 근교 오베르쉬르우아즈로 향했습니다.
동생 테오는 형을 돌봐줄 의사로 폴 가셰 박사를 소개했습니다.
가셰는 평범한 시골 의사가 아니었습니다. 정신질환에 관심이 많았고 미술을 좋아해 직접 판화와 그림을 만들었습니다. 세잔, 피사로, 르누아르 같은 화가들과도 교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반 고흐는 의사를 처음 만나고 조금 이상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신경 문제를 치료해 줄 사람인데, 오히려 가셰가 자신만큼 심각한 신경 문제를 겪는 것처럼 보인다고 동생에게 썼습니다.
몇 주 뒤에는 더 노골적이었습니다.
가셰가 “나보다 더 아픈 것 같거나 적어도 나만큼 아픈 것 같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습니다.
환자가 의사를 걱정한 셈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곧 가까워졌습니다.
가셰는 반 고흐에게 집을 개방했고 함께 식사하며 그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판화가이기도 했던 그는 반 고흐에게 동판과 도구를 내주었고, 반 고흐는 자신의 생애에서 유일한 에칭 작품으로 가셰 박사의 얼굴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6월, 반 고흐는 가셰의 초상화를 두 점 그렸습니다.
그림 속 의사는 한 손으로 얼굴을 받친 채 힘없이 앉아 있습니다.
표정은 의사라기보다 오히려 환자처럼 우울합니다.
반 고흐는 이 모습에서 자신이 표현하고 싶었던 ‘우리 시대의 슬픈 표정’을 보았습니다. 테이블에는 보라색 디기탈리스 꽃이 놓여 있습니다. 당시 약용식물로 사용되던 꽃으로, 오르세 미술관은 차갑고 우울한 그림 속에서 이 꽃을 치료와 위안을 암시하는 요소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 그림에는 똑같은 인물을 그린 두 개의 진품 버전이 있습니다.
현재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것은 두 번째 버전입니다. 가셰 박사가 직접 가지고 있었고, 그의 자녀들이 1949년 프랑스 국가에 기증했습니다.
첫 번째 버전의 운명은 훨씬 극적입니다.
1911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슈테델 미술관이 이 작품을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1937년 나치는 반 고흐의 그림을 ‘퇴폐미술’로 규정해 미술관에서 압수했습니다.
그림은 해외로 팔려 나갔고, 슈테델 미술관에는 지금도 빈 액자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1990년 5월 15일.
그 그림이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다시 등장했습니다.
낙찰가는 8,250만 달러.
당시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였습니다.
그런데 기록적인 경매 이후 그림은 또다시 대중 앞에서 사라졌습니다.
슈테델 미술관에 따르면 첫 번째 <가셰 박사의 초상>은 1990년 경매 이후 공개 전시에 나타나지 않았으며 현재 개인 소장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때 자신들이 소장했던 걸작을 찾기 위해 슈테델 미술관이 만든 프로젝트의 제목도 아예 <Finding Van Gogh>였습니다.
반 고흐가 가셰를 만난 것은 죽기 불과 두 달 전이었습니다.
오베르에 머문 짧은 기간 동안 그는 70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고, 1890년 7월 29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셰 박사는 그의 마지막을 지켜본 의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환자를 치료해야 했던 의사는 우울한 얼굴로 그림 속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 얼굴을 그린 두 초상화 가운데 하나는 미술관에 남았고, 다른 하나는 나치에게 빼앗겼다가 세계 최고가를 기록한 뒤 다시 사람들의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이제 그림을 다시 보세요. 얼굴을 손에 기대고 지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사람은 반 고흐의 환자가 아니라 그의 의사였습니다. 하지만 반 고흐의 눈에는 이 의사가 자신보다 더 아파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