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날, 친구가 필요한 날

by하르딘

우붓에 머무는 동안 번화가를 매일 저녁마다 돌아다녔다. 그곳에는 엄청나게 많은 식당, 카페, 마사지숍, 기념품 가게들이 있었다.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수많은 가게들의 수많은 직원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매일 똑같은 자리에 서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워낙 많은 식당, 카페가 있는지라 걸어 다니면서 보니, 손님이 하나도 없는 가게들도 꽤 많았다. 그런 가게의 직원들은 멀뚱멀뚱 서서 지나가는 관광객들 보면서 적당히 호객행위 하거나, 아니면 다들 지루한지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관광객들에겐 일상을 떠나온 새로운 환경이지만, 저들에겐 저게 매번 반복되는 일상이니까 지루할 것이다.

사실 무슨 일을 하면서 살든, 그게 일상이 되고 매일 반복되면 지루해진다.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하며 살든 결국 다 똑같은 것 같다. 혼자 있어서 가 아니라, 반복적인 일상 때문에 심심한 게 아닐까 싶다.

​ 갑자기 내가 어렸을 때 자주 들었던 프로그램 송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심심한 날, 친구가 필요한 날~ 나는 나는 친구를 만들죠~"라는 선명한 노래가 들린다. 이 프로그램은 종이접기 같은 걸 하며 인형이나 장난감 등을 만드는 걸 가르쳐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건 심심할 때 내가 나 자신과 친구가 되어줄 수 있게 도와주는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다.

나는 누구나 '혼자 재밌게 시간 보내는 법'을 익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렸을 때는 주변에 사람들이 넘친다. 언제나 곁에 있어주는 부모님이 있고. 학교, 학원, 동네 친구들도 많다. 그러니 '혼자 시간 보내는 법'을 배울 기회도 필요도 없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건 점차 중요한 능력이 된다. 나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뿐이므로. 그리고, 음악, 외국어, 공부 등 대부분의 것들이 어렸을 때부터 배워두는 게 좋은 것처럼, 혼자 시간 보내는 법도 그렇다. 항상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지내던 사람이 갑자기 혼자 시간을 보내려 하면 엄청난 혼란이 온다. 특히 수십 년을 해온 관성이 있어 안 해본 거 새롭게 시작하기 점점 더 어려워지니까.

혼자 잘 논다고 자부하는 나도 사실 가기 전엔 좀 걱정하긴 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번 여행 기간 내내, 심심하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다. 할 거 없으면 그냥 가만히 앉아 풍경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았으니까. 하늘의 구름을 보고, 가게들 구경하고, 별구경도 하고 나무와 꽃구경도 하고 현지인들이 삶의 풍경 보고 있는 것만으로 좋았다. 사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많이 여유로워지고 성숙해졌다는 걸 느꼈다. 아무리 예쁘고 멋진 풍경을 봐도 내 마음이 힘들 때는 감흥이 전혀 없을 수가 있으니까.

친구가 필요하다고 느낀 적도 별로 없다. 단지 매번 혼자 여행에서 느꼈듯, 식당 가서 다양한 음식 시켜서 같이 나누어먹고 싶을 때, 사진 찍어줄 때 에만 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 이번에는 그냥 식당 가서 나 혼자 다 못 먹더라도 여러 음식 시켜놓고 먹었다. 밥 먹을 때 사진 찍을 때 잠시 말고, 대부분은 차라리 혼자 있는 게 편하다. 내 몸의 리듬대로 내 기분대로 움직일 수 있으니까.

그리고 처음에는 대부분 친구들, 연인들, 가족들끼리 온 사람들을 많이 봤었는데, 여행 후반부 갈수록 나처럼 혼자 여행 온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꽤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대세는 가족, 연인, 친구들과 함께 인지라, 나를 보는 현지인들은 나에게 '너 혼자 왔어???' 하고 좀 신기하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한 택시 기사는 혼자 여행 온 날 보고, '혼자 먹는 밥은 맛이 없잖아. 혼자 있으면 심심하잖아.' 하며 내 걱정(?)을 했다. 한국에서도 많이 듣는 지겨운 소리였다. 혼자 먹어도 맛있는 건 맛있다. 누군가와 같이 있어도 심심할 때도 있고, 혼자 있어도 재밌을 때가 있다. 하지만 "혼자=외로움, 심심함"과 동격이라는 굳은 공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한텐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심심하고 외롭다고 무조건 사람을 찾아서 그 감정을 해소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필요할 땐 억지로 친구 찾으려 하지 말고 내가 내 친구 해주면 된다. 이제는 어렸을 때처럼 툭하면 친구 찾아서 연락하고 고민 털어놓고 할 시기는 지났다. 서른아홉 즈음은 모두가 각자만의 삶의 짐이 버거운 시기라, 다른 사람의 짐을 들어줄 여유가 없는 때다. 물론 친구에게 털어 논다면 기꺼이 들어줄 친구들은 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할 수 없기에, 본인의 삶으로도 버거운 친구들에게 내 고민을 안겨주고 싶지 않기에, 이제 스스로 나의 감정을 다스리고 있다.

물론, 아무리 혼자서 잘 지내는 사람이라고 해도 모든 시간을 전부 다 혼자 보낼 수는 없다. 사람은 당연히 다른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중요한 건 언제 내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언제 다른 사람들과의 시간이 필요한지를 스스로 구별하고 그에 맞게 행동할 줄 아는 것이다.

월,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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