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여행 가기 3달 전쯤 큰 맘먹고 내 생애 가장 비싼 폰인 갤럭시 S26 울트라를 질렀다. 그전 폰은 갤럭시 S22로 대략 4년 정도 썼으니 이미 맛이 갈 데로 가있었다. 나는 폰으로 게임도 안 하고, SNS도 안 해서 사실 그렇게 비싼 폰이 필요 없다. 그래서 그동안은 늘 가성비 폰들만 써서 최신폰을 산 것은 이번이 난생처음이다. 오로지 발리 여행 사진을 위해 좋은 폰을 구매하고 싶었다. 그리고 점점 해가 갈수록 자주 해외여행 가기도 힘들어지고 있으니, 여행 사진을 많이 남겨 놓고 싶기도 했고, 여행지에선 구글맵을 오래 볼 터이니 배터리도 오래가야 했다. 이렇게 합리화하며 샀는데, 역시 최신폰이(돈이) 좋긴 좋았다.
한때 '여행에서 너무 인생샷 찍는데 집중하느라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 적이 있었다. 이런 생각과 맛 물려 이제는 사진 속 내가 20대 때처럼 예뻐 보이지도 않고, 어디 누구 보여줄 것도 아니고 SNS에 올릴 것도 아닌데 열심히 사진 찍어 뭐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점점 사진을 잘 안 찍게 됐다. 어차피 멋진 풍경도 사진으로 찍는 것보다 눈으로 보는 게 훨씬 예쁘기도 하니까. 뭐 이래저래 사진이 귀찮기도 하고. 이런 내 생각을 보여주듯, 작년 스페인 여행에서도 음식, 풍경 사진이 대부분이고 내 사진은 거의 없다.
이런 생각으로 30대 중반을 보내며 현재 서른아홉 되어 보니, 내 30대 중반~중후반의 대략 4~5년간의 내 사진이 거의 없다. 이때 나이의 사진도 10년, 20년 후 보면 엄청 젊고 예뻐 보일 텐데 왜 사진을 찍어놓지 않았을까 조금 후회가 되었다. 누굴 보여주기 위해서 찍는 거라면, 미래의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 찍자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이제 너무 나이 들어 보이고 예전처럼 예뻐 보이지 않더라도, 매년 내 모습을 찍어주자고 다짐했다. 미래의 나를 위해. 요즘엔 진짜 여행에서 남는 건 정말 사진뿐인 것 같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사진을 뭐 하루에 몇 시간씩 찍는 게 아니라면, 사진도 충분히 찍으면서 여행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나 홀로 여행객. 혼자 찍는 셀카엔 한계가 있고, 내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없다. 셀카는 구도가 비슷해서 배경만 바뀌고 거의 다 똑같아 보인다. 전신샷을 찍고 싶을 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찍어달라고 말해야 하는데, 내항인인 나는 그것도 좀 어렵다. 그래도 용기 내 한 3번 정도 말해보긴 했는데, 결국 3번 다 사진이 마음에 안 들었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서, 최신 폰뿐 아니라 나름 큰맘 먹고 비싼 삼각대까지 사 갔다. 누군가에게 찍어달라는 말할 필요 없이 내 마음에 들 때까지 전신사진을 찍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하지만 역시 현실은 만만치 않다. 삼각대는 비싸고 튼튼한 만큼 무게가 꽤 있어 밖에 들고나가긴 좀 불편했다. 그리고 덥고 뜨거운 날씨와 사람 많은 곳에서 삼각대를 펼쳐놓고 혼자 사진 쇼를 한다는 것은 차마 못 할 짓이었다. 결국 삼각대는 우붓의 프라이빗 빌라에서만 딱 한 번 썼다.
그래도 내 사진첩을 쭉 보니 최대한 이것저것 많이 찍으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이번 여행은 오래오래 기억하고 간직하고 싶어서 분위기를 더 잘 느낄 수 있는 동영상도 많이 찍었다. 제일 맘에 드는 동영상은 나 혼자 풀빌라 빌려놓고 수영장 옆에 앉아있는데 조용한 논밭에 나무가 흔들리며 새소리 들리는 풍경, 아무도 없는 고요한 분위기가 담긴 별거 없는 풍경 동영상이다. 그냥 가만히 보고 있어도 마음이 힐링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원래는 여행 가서 기념품 일절 안 사는 스타일인데, 이번엔 기념품으로 발리 글씨 자석도 몇 개 샀다. 미니멀리스트라 꼭 필요한 물건 아니면 사지 않겠다는 주의지만, 이번엔 왠지 그러고 싶었다. 집에 와서 냉장고에 붙여놓고, 핸드폰 사진첩 사진들 쭉 보고 있노라니, 여행지에선 길게 느껴졌던 하루하루들이 순식간에 지나간 꿈처럼 느껴진다. 아직은 다녀온 지 얼마 안 되어 사진보다 내 머릿속에서 더 생생히 기억이 되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힐 테니. 지금 이 사진들은 정말 소중하다. 시간이 좀 더 오래 지난 후 다시 이 사진들을 보면 또 지금과는 뭔가 다른 게 느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