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하고 싶은 말 잘하고 싶어

by하르딘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것도 어렵지만, 나에겐 하고 싶은 말 하면서 사는 것도 어려웠다. 나는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감정을 많이 살피기 때문이다. 일부러 그러려고 그러는 게 아니고 그냥 내 성향이 그렇다. 그래서 내가 어떤 말을 했을 때 상대가 기분 나쁠 것 같다는 판단이 들면 그 말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성향이 과할 때는 나에게 부당한 일을 당당하게 따지지 못한다 점, 상대방이 나의 생각을 오해할 여지가 있다는 점 등 단점이 꽤 있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언니와 식당에 갔던 적이 있다. 언니가 기대하면서 찾은 맛집이었다. 그런데 언니의 기대가 커서 그런지 생각보다 음식과 서비스가 별로였나 보다. 그때 웨이터가 와서 언니에게 음식이 어떠냐 물었다. 언니는 "이건 이래서 저래서 별로고, 저건 저렇고 이렇고 별로다"라며 조목조목 마음에 안 드는 점들을 얘기했다. 나는 그걸 보고 정말 놀랐다. 왜냐면 나였다면 "맛있어요. 괜찮네요." 하고 말았을 거니까. 그리고 내가 아무거나 잘 먹는 편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나에겐 음식 맛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었다. 한 배에서 나온 언니와 나는 외모도 완전 180도 다른데, 성격도 이렇게 180도 다르다.

언니는 엄마를 닮았나 보다. 내가 대학원생 때, 엄마가 엄마 지인의 딸을 내 과외 학생으로 구해준 적이 있다. 고3 수험생이었고 수능 영어 과외를 해주기로 했다. 그 지인이 엄마에게 과외비 비싸다고 조금만 깎아달라고 했다고 한다. 아마 나였다면, 지인이니까 조금 깎아주자 하면서, 몇만 원 깎아준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깎아달라고 하지 말고, 00이 영어 공부 더 잘 봐 달라 해야지!!"와, 난 그 말 듣고 무릎 탁! 쳤다. 결국 한 푼도 깎아주는 것 없이 과외를 진행했다.

언니도 엄마도, 상대방을 완전 기분 나쁘게 하지 않으면서도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적당히 전달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에게도 가끔씩 이런 태도가 필요하다는 걸 요즘 들어 더 자주 느끼고 있다. 가끔씩은 나도 엄마랑 언니처럼 당당하게 하고 싶은 말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렸을 땐 잘 몰랐는데, 점점 나이 들어갈수록 당당하게 하고 싶은 말 삼키지 말고 하는 게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번 발리 여행에서 스페인 사람들을 꽤 자주 봤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다 똑같이 생긴 서양인이겠거니 하겠지만.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나는 길 가다가 어딘가에서 스페인어가 들려오면, 저절로 한번 뒤돌아보게 된다. 생김새와 말투로 들어보면 스페인 사람이다. 물론 다른 여러 가지 유럽어들도 들려온다. 아마 독일어나 프랑스어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다른 언어는 잘 모르기 때문에 구별은 잘 못한다.

내가 처음엔 스페인 스페인어를 위주로 공부했었고, 스페인 영화 드라마를 많이 봐서 스페인 스페인어에 많이 쓰이는 단어들과 억양에 익숙하다. 남미에서 온 사람들도 몇 번 보긴 했다. 멕시코, 페루,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등 어느 나라인지는 모르겠지만, 스페인어를 쓰고 있었고 억양과 외모상 스페인 사람들은 아니었기에 남미 사람이겠거니 생각했다. 어쨌든 처음엔, 내가 사랑하는 스페인어가 들리는 게 너무 반가워서 막 그들에게 스페인어로 말을 걸고 싶다는 욕구가 계속 올라왔다. 이럴 때 써먹으려고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스페인어를 공부했던 거 아닌가?!

하지만 막상 말 걸기는 매우 어려웠는데 그 이유는, 첫째는 나는 혼자 온 여행객이었고, 그들은 전부다 친구들, 가족들과 온 그룹 여행객이었다. 그들은 최소 4명 이상씩 그룹 지어 있었다. (4:1은 좀 빡센데...) 둘째는 내가 스페인어로 말을 걸었을 때. 그들이 내가 스페인어 잘하는 줄 알고, 빠르게 말할까 봐 걱정되었다. 빨리 말하면 내가 못 알아듣기 때문이다. 사실 길거리에서 그들끼리 대화하는 스페인어를 몰래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는데, 대화가 너무 빨라서 대략 절반 정도만 알아들었다. 그렇게 내가 못 알아들어서 다음으로 대화가 진행되지 않을까 봐 무서웠다. (내가 못 알아듣는다고 답답해하거나 짜증 내면 오또케...)

또 혹시나 모를 이런저런 뻘쭘한 상황들이 상상이 되며, 결국 단 한 번도 말을 걸어보지 못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이제 돌이켜 생각해 보니, 진짜 딱 한 번만 "Hola!" 라도 해볼걸... 그거 해본다고 뭐 큰일 나는 것도 아닌데 조금 후회된다. 내 말에 별 반응 없으면 그냥 나도 개의치 않고 내 갈 길 가면 되는 건데. 굳이 엄청 환대하는 반응만 기대 안 하면 되는데. 뭘 그리 무서워했을까. 이번 경험 발판 삼아 다음에는 진짜 용기 한번 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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