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다 적응하게 되어있지

by하르딘

발리 여행 동안 단수와 정전이 두어 번 있었다. 한 번은 샤워하고 있는 도중에 물줄기가 점차 약해지더니 결국 물이 완전히 끊겼다. 다행히 샤워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어서, 생수로 대충 마무리를 했지만 좀 찝찝했다. 호텔 측에서 죄송하다고 복구작업 중인데 몇 시간 걸린다고 연락이 왔다. 이건 뭐 항의한다고 해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조금 짜증이 났지만 피곤해서 그냥 바로 곯아떨어졌다.


또 한 번은 밖에서 거의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이제 숙소 가서 샤워하고 자야지' 생각하며 숙소 도착했는데, 건물 자체가 완전 깜깜했다. 전체 정전된 거였다. 내 방에 들어가니 일부러 켜놓고 갔던 에어컨도 꺼져서 후덥지근했다. 가방을 내려놓고, 일단 샤워나 해야겠다 하고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수돗물이 안 나왔다. 정전뿐 아니라 단수까지 된 것이다. 갑자기 한숨과 짜증이 확 몰려왔다. 그날은 정말 땀을 한 바가지로 흘린 날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가지고 있던 생수로 양치를 했다. 그다음 생수로 세수할까 하다가, 가지고 있는 생수로는 화장 지우기까지 양이 부족해 보였다. 생수 사러 다시 밖에 나갈 수도 없었다. 너무 힘들고 피곤했다. 그렇게 그냥 양치만 하고 땀 절인 옷만 벗어던지고 그냥 침대에 누워서 곯아떨어졌다.


원래 아무리 피곤해도 무조건 화장 지우고 샤워하고 자는 사람인데, 단수와 정전사태 앞에서는 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쨌든 피곤해서 잠은 잘 잤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물이 잘 나와서 아침 샤워했다. 화장 안 지우고 자도 생각보다 피부도 멀쩡했다. 에어컨 없이 잤는데도 밤에는 좀 선선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괜찮았다.


평소 한국 일상에서는 반찬가게에서 사 온 반찬들로 집에서 밥만 해서 먹는다. 주말에만 가끔 찌개, 미역국, 볶음밥 같은 걸 요리해 먹는다. 매일 비슷하게 먹다 보니 가끔씩 피자나 인도 음식, 온라인카지노 같은 게 당길 때가 있는데, 가격도 비싸고 혼자 먹기에는 양도 좀 부담스러워서 못 먹은 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이것저것 원 없이 먹으려 했다. 특히 스크램블 에그와 베이컨을 곁들인 아메리칸 온라인카지노는 매일 먹겠노라 다짐했다. 이탈리안 음식점 가서 혼자 파스타에 피자 시켜 먹고, 아메리칸 온라인카지노는 거의 매일 먹고, 호텔 뷔페 조식에서 4~5 접시씩 먹고, 인도 음식점 가서 혼자 밥에 난에 커리와 사이드까지 시켜 먹었다. 거기에 카페 가서 케이크, 타르트와 커피, 그리고 아이스크림까지 후식으로 먹었다. 여행 중에 먹은 음식들을 전부 다 사진 찍어놨는데, 보고 있으면 내가 내 뱃속에 이것들을 다 집어넣었다는 게 놀라울 정도다.


처음에는 너무 맛있고 좋았다. 관광객들 상대로 장사하는 식당과 카페들이라 플로팅도 어쩜 그리 예쁘게 잘해서 나오던지. 평소에 잘 먹지 못하는 음식들을 한국보다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으니 행복했다. 그런데, 한 5~6일 차쯤 되니까 드디어 좀 물렸다. 뭘 먹어도 그냥 다 비슷비슷한 맛인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참 사람 적응력이란 대단한 것 같다. 이거만 하면 행복할 것 같아도, 그 행복에 적응돼서 금방 시큰둥 해진다. 이거 없으면 큰일 날 것 같아도, 없어도 큰일 안 난다. 결국은 그 바뀐 환경에 맞춰서 방법을 찾고, 적응하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잠깐 있는 여행과, 실제 그곳에서 사는 것과 차이가 큰 것이겠지.


이번 여행이 좋아서 또 오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발리에서 살아보는 건 어때?' 하면 그건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월, 목, 일 연재
이전 03화발리에서 스쿠터 운전하기 난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