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대부분이 그렇듯 이곳 발리의 주요 교통수단은 스쿠터다. 굳이 직접 운전하지 않아도 Grab 오토바이 불러서 다녀도 충분하긴 하다. 하지만, 발리 여행의 묘미를 느끼기 위해서 스쿠터를 직접 운전하는 재미가 있다.
발리에서 스쿠터 운전하고 다니면서 보니, 현지인 여자들도 서양인 여자들도 다 혼자 스쿠터를 잘 타고 다닌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 동양인 여자가 혼자 스쿠터 타고 다니는 경우는 단 한 번도 못 봤다. 동양인 커플들이 남자가 운전하는 스쿠터 뒤에 여자가 탄 경우 제외하고는. 한국인들 인식에 오토바이는 위험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너무 깊게 박혀있어서 그런 것 같다. 어쨌든 혼자 스쿠터 타는 동양인 여자가 매우 드문 탓에, 내가 스쿠터 렌트할 때마다 항상 나에게 정말 운전할 수 있냐고, 확실하냐고, 이거 보험 안된다고, 하는 걱정 한 보따리를 받아야만 했다.
내 오토바이 운전경력에 대해 말하자면, 필리핀 보홀 여행 때 현지에서 4일 동안 스쿠터 타고 돌아다녔고, 제주도 여행에서도 3일간 자동차 대신 스쿠터로 여행 다녔다. 몇 년 전에 2종 소형면허도 땄고, 잘은 못하지만 기어변속해야 하는 매뉴얼 바이크 운전도 가능은 하다. 사실 바이크 연습하려고 올해 초에 중고 바이크를 샀는데, 막상 잘 안 타게 돼서 주차장에 보관 중이긴 하지만. 어쨌든, 매뉴얼바이크 운전가능자에게 스쿠터는 너무 쉽다. 내가 오토바이를 운전할 수 있게 된 건 사실 전 남자친구 덕분이다. 같이 동남아여행 다닐 때, 나에게 스쿠터 타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그 후 같이 2종 소형운전면허도 땄다. 막판에 헤어질 때 온갖 스트레스를 줬던 사람이지만, 덕분에 바이크를 운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소소한 감사를 전하고 싶다.
발리 오기 전엔 스쿠터 렌트에 대해서 걱정했던 것 딱 한 가지는 운전방향이 한국과 반대라는 점이었다. 나는 좌측 통행인 나라에서는 운전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후기들을 살펴보니 운전방향 반대인 건 생각보다 금방 적응한다고들 했다. 정말 그랬다. 왼쪽으로 가는 건 생각보다 굉장히 금방 적응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큰 복병이 있었다.
바로 도로포장이 거의 안되어있다는 것..! 안 그래도 바이크 운전은 차 운전에 비해 피로도가 2배는 큰데, 안 좋은 도로 때문에 피로도는 거의 4~5배로 오르는 듯했다. 거기에 덥고 습한 날씨는 덤. 그리고 차와 오토바이들 사이에서 눈치싸움하며 운전하기 등. 운전을 할 수 있긴 하지만, 아주 능수능란한 상태는 아닌 데다 여긴 외국이니 조심해서 타려고 했더니 어깨도 아파왔다. 특히나 낮에 타는 건 거의 지옥이었다. 현지인들도 낮에는 팔, 다리, 얼굴, 손 다 가리고 스쿠터 탄다. 처음에는 오전 새벽 일찍도 타고 다니다가 점점 조금 선선한 밤에만 스쿠터를 타게 됐다.
나는 이번에 짱구, 누사 렘봉안 섬, 우붓 이렇게 세 군데에 머물렀다. 짱구는 요즘 핫해서 교통체증이 가장 심한 곳이라길래, 이곳에서는 그랩오토바이를 불러서 다녔다. 누사 렘봉안은 작은 섬이라 그랩이 없어서 스쿠터를 빌려서 타고 다녔다. 우붓도 교통체증이 심하긴 하지만, 시내와 좀 떨어진 곳에 숙소를 잡았기 때문에 스쿠터를 빌렸다. 여기서는 대체로 헬멧을 잘 안 쓰고 다닌다. 오토바이 운전할 때 헬멧은 정말 기본 중에 기본이지만, 사실 나도 가까운 곳 다닐 때는 헬멧을 안 쓰고 다녔다.
여행자들은 사고 나면 보험이 안되기 때문인지, 대부분 정말 조심히 운전한다. 현지인들도 대부분 방어운전한다. 대부분 평균 30~40KM로 달리는 것 같다. 정말 빨리 달려봤자 50~60KM이다. 나는 시속 50 넘게 달린 적이 없다. 도로가 포장이 안되어 있고 좁아서 빨리 달릴 수도 없고, 도로가 포장되어있는 곳은 롤러코스터 타는 수준급으로 오르락내리락 경사가 어마어마해서 빨리 달릴 수가 없다. 그리고 현지인들은 거의 대체로 99%는 다 여행객 운전자를 먼저 배려해준다. 내가 유턴하거나 하는데 좀 걸려도 대체로 기다려주고, 양방향에서 마주쳤을 때 늘 먼저 가라고 해줬다. 그런 부분들이 꽤 감동적이었다.
우붓에서 렌트한 스쿠터가 기름이 금방 떨어져서 주유소를 찾아 열심히 돌아다녔다. 구글맵에서 주유소를 검색했는데, 놀라운 건 주유소 자체도 별로 없는 데다 힘들게 찾아가도 문이 닫혀있거나, 기름이 다 떨어졌다고 했다. 아니 도로에 저렇게나 많은 스쿠터들이 있는데, 그럼 쟤네는 어디서 주유를 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쿠터 기름칸이 딱 한 칸 남아있었다. 잠깐 멈춰 서서 구글맵 검색하고 있었는데, 그때 어떤 현지인 아저씨가 오더니 어디 가냐 해서 나 주유소 찾고 있다. 왜 주유소들이 다 닫아있냐 했더니. 본인 따라오라 한다. 그래서 그 아저씨 따라가 보니까 동네 슈퍼에서 휘발유를 팔고 있었다. 나중에 보니 이렇게 슈퍼에서 휘발유를 파는 경우가 많았다.
조심운전, 방어운전, 안전운전만 한다면 발리에서 스쿠터 운전은 정말 재밌고 편하다. 특히 밤에 좀 선선할 때 밤바람 맞으면서 운전하는 건 힐링도 됐다. 여행객 운전자들에 대한 배려심들도 넘쳐서 걱정할 것 없을 것 같다. 다만, 완전 왕초보 운전자는 좀 무리일 것 같긴 하다. 비포장도로와 심한 경사, 그리고 눈치싸움해야 하는 운전 때문에. 나는 다음에 또 발리에 온다면 또 스쿠터 빌려서 타고 다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