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번져도 괜찮아, 계절이 올 거야.
[프롤로그]
좀 번져도 괜찮아, 곧 계절이 올 거야(식물 편)
고르게 다듬어진 길보다 메마른 바위틈이나 가파는 언덕 위에
수줍게 번져 핀 이끼와 이름 모르는 작은 풀꽃에 눈길이 더 오래 머물 때가 있습니다.
번짐이라는 것은 줄을 맞춰 바르게 그려진 도식과는 다릅니다.
삶은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번져 나가고,
의도치 않은 농도로 물듭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번짐이 제자리를 잡아,
세상에 단 하나뿐인 색깔과 모양이 작품처럼 만들어집니다.
돌아보면 우리의 삶도 그러했습니다.
처음 계획했던 번듯한 계획에서 벗어나 빗나가기도 하고,
뜻하지 않은 시련으로 뜨겁게 젖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 조바심이 솟아나고,
제 빛깔을 잃어버릴까 두려움이 엄습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계절의 순환을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겨울의 엄혹한 추위를 온몸으로 견뎌낸 매화가 첫 향기를 건네고,
돌담 틈새의 척박함 속에서도 민들레는 끝내 노란 희망을 틔워냅니다.
제 몸을 태워 붉게 익어가는 가을날의 홍시처럼,
우리의 번진 얼룩들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저마다의 계절을 맞이하기 위해 단단하게 물듦의 하나의 과정이었습니다.
이 번에 담긴 열다섯 편의 글은
길가의 작은 꽃과 나무, 그리고 절기마다 순응하며 살아가는 자연이
우리에게 건네는 따뜻한 안부이자 묵직한 응원입니다.
치열한 오늘을 견뎌내며 살아가는 그대에게,
그리고 가슴속에 아련한 계절 하나씩을 품고 살아가는
모든 마음들에게 이 글을 올립니다.
조금 서툴면 어떻습니까.
조금 흔들리면 어때요.
비바람이 불고 눈이 내린 자리에
마침내 깊은 향기가 고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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