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뇌가 멈추자, 그의 왼쪽 세상이 사라졌다
전화기가 울린다. 응급실이다.
호출은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한 지 십 분 만에 왔다. 뇌졸중 의심, 팔십 세 남자. 나는 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뛰었다. 응급실까지는 오 분이 걸렸다.
뛰는 동안 머릿속으로 숫자를 셌다. 네 시간 삼십 분. 증상이 시작된 순간부터 흐르기 시작하는 시계다. 그 안에 들어온 환자에게 혈전용해제를 쓸 수 있다.
막힌 혈관이 뚫리지 않는 동안 뇌는 일 분에 신경세포를 백만 개 넘게 잃는다고 한다. 신경과 의사들은 이것을 짧게 줄여 말한다. Time is brain.
그는 집 앞에 쓰러져 있다가 지나가던 이웃에게 발견되었다. 집을 나선 지 삼십 분이 채 되지 않았다고, 그가 말했다. 증상이 시작된 지 두 시간. 남은 시간은 두 시간 반이었다.
침대 곁에 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그의 시선이었다. 나는 그의 왼쪽에 서 있었는데, 그는 오른쪽을 보고 있었다. 이름을 부르면 고개가 잠깐 돌아오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미끄러졌다. 마치 세상의 왼쪽 절반이 사라진 사람처럼.
왼팔을 들어보시라고 했다. 팔은 올라갔다가, 버티지 못하고 툭 떨어졌다. 다리도 그랬다. 왼쪽 팔자주름이 사라져 있었고 입꼬리는 오른쪽으로 끌려가 있었다. 왼발바닥을 긁자 엄지발가락이 천천히 위로 들렸다. 바빈스키 징후였다.
나는 그의 왼팔을 들어 그의 눈앞에 가져갔다.
"할아버지, 이거 누구 팔이예요?"
그는 잠시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의사 선생님 팔 아니에요?"
신경학에서 이것을 신체실인증(asomatognosia)이라고 부른다. 오른쪽 두정엽이 무너지면 몸의 왼쪽은 마비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뇌가 오랫동안 품어온 몸의 지도에서 왼쪽 절반이 지워졌다. 그의 눈은 분명 그 팔을 보고 있었다. 다만 뇌가 그 팔을 자기 것으로 알아보지 못했다. 그에게 왼팔은 움직이지 않는 팔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남의 팔이었다.
CT 결과가 나왔다. 나는 모니터 앞에 섰다. 회색의 뇌는 조용했다. 출혈은 없었다.
그러나 CT가 말해주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막 시작된 뇌경색은 CT에 거의 보이지 않는다. 화면은 '뇌출혈이 아니다'라고만 말할 뿐, '뇌경색이다'라고 말해주지는 않는다. 오른쪽으로 쏠린 눈, 떨어지는 왼팔, 지워진 팔자 주름, 남의 것이 된 팔. 흩어져 있던 증상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증상들은 한 혈관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른쪽 중대뇌동맥(middle cerebral artery).
확신은 들었다. 그러나 혈전용해제는 막힌 혈관을 녹이는 약인 동시에 부작용으로 뇌에 피를 흘리게 할 수도 있는 약이다. 나는 그 무게를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야 했다. 문제는 법적 보호자가 없었다. 이웃 주민이 옆을 지켰다.
보호자는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휴대폰에는 가족의 번호가 여럿 있었다. 최근 통화 목록을 거슬러 올라갔다. 작은 누나는 계속 통화 중이었다. 큰 누나는 신호만 갔다. 신호음이 한 번 울릴 때마다 그의 뇌 어딘가가 조금씩 꺼져가고 있었다.
전화를 끊을 때마다 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더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의사 두 명의 동의하에 약을 먼저 쓰기로 했다. 그 판단의 무게를 함께 들어줄 보호자는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남은 시간 2시간째, 혈전용해제가 들어갔다.
약이 들어가는 동안에도 나는 전화를 걸었다. 이제는 허락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고 내가 무엇을 했는지,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한참 만에 손자의 번호를 찾았다. 손자는 바빠서 갈 수 없고 연을 끊은 지 오래되었으니 자기 누나에게 연락해 보라고 했다. 손녀는 십 년째 왕래가 없다고 했다. 자신은 보호자가 아니고, 병원비는 낼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돈 이야기를 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할아버지의 상태가 어떠한지, 그래서 어떤 약을 썼고 그 약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말해주려던 것이었다. 그녀는 그 설명조차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한참 뒤에야 작은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내 설명을 끝까지 들었다. 그날 처음으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 가족이었다.
치료 효과는 곧바로 보이지 않았다. 투약을 마치고 한참을 지켜보았지만, 달라진 것은 입꼬리가 조금 제자리를 찾은 것 정도였다.
다음 날 아침, 병실 문을 열었다. 그는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대화는 막힘이 없었다. 왼팔을 들어보시라고 하자 팔은 올라가서, 그대로 머물렀다. 팔자 주름도 돌아와 있었다.
나는 어제처럼 그의 왼팔을 들어 보였다.
"이건 누구 팔이예요?"
그는 이상한 걸 묻는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내 팔이지, 누구 팔이야."
뒷이야기는 나중에 들었다. 하나뿐인 아들은 오래전 소식이 끊겼다고 했다. 어디에 있는지, 살아 있기는 한지조차 모른다고 했다. 자식을 잃어버린 사람의 세상이 어떤지 나는 짐작만 할 뿐이다. 어쩌면 그는 그때 이미 세상의 전부를 잃었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날 아침, 그렇게 남겨진 세상의 절반마저 사라질 뻔했다.
손주들이 필요할 때마다 그에게서 돈을 받아 갔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에게 더 줄 것이 남지 않았을 때 그들이 돌아섰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간의 사정을 나는 다 알지 못한다. 내가 들은 것은 작은누나의 몇 마디뿐이다.
다만 가끔 그날을 생각한다. 그가 자기 팔을 알아보지 못하던 그 몇 시간 동안, 그를 자기 사람이라고 말해줄 이도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사라졌던 세상의 절반은 하룻밤 만에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곁에 비어 있던 자리는, 아직 그대로다.
[참고 문헌]
Saver JL. Time is brain—quantified. Stroke. 2006;37(1):263-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