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뒤에 빛이 보여요."

기억을 잃고 빛이 보이기 시작한 환자

by루카

이른 아침, 바카라상 위에 놓인 협진 의뢰서에는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오늘 새벽부터 기억 장애 보여 평가 부탁드립니다.'

내과에 입원해 있던 삼십 대 여성이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열로 입원했고, 끝내 원인은 찾지 못했지만 항생제를 쓰는 동안 열은 내렸다. 퇴원은 내일이었다. 그런데 그날 새벽, 곁에서 자던 남편에게 그녀가 물었다.

"여보, 출근 안 해?"

조금 뒤에는 이렇게 물었다.

"내가 왜 병원에 있지?"


병실에서 만난 그녀는 차분했다. 이름을 물으면 제대로 대답했고, 남편을 가리키면 남편이라고 했다. 다만 방금 들은 이야기를 몇 분 뒤에 처음 듣는 것처럼 다시 물었다. 머릿속에서 익숙한 진단명 하나를 떠올렸다. 일과성 전기억상실(transient global amnesia). 대개 하루 안에 저절로 풀리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 신경과 의사에게는 비교적 마음 편한 병이다. 증상이 시작된 지 아직 반나절도 되지 않았다. 다른 구조적 병변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MRI를 찍었다. 뇌는 깨끗했다. 나는 가족에게 하루만 지켜보자고 말했다.


하루가 지났다. 그녀는 여전히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일과성이라는 이름이 맞으려면 이쯤에서 좋아졌어야 했다. 무엇인가 이상했다.


그날 점심, 그녀는 불안해하며 몸부림을 쳤다. 소량의 안정제를 주사했다. 그런데 그 뒤로 숨이 얕아지더니 이산화탄소가 쌓이기 시작했다. 호흡이 무너질 정도의 용량은 아니었다. 중환자실로 내려가 기관삽관을 했다. 이상하다는 느낌은 확신에 가까워졌다.


중환자실에서 열이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뇌척수액 검사를 했다. 백혈구와 단백질이 조금 올라 있어 뇌에 염증이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지만,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 호흡은 하루 만에 좋아져 관을 뺐다. 의식도 돌아와 일반 병실로 올라갔다. 나는 잠시 한숨을 돌렸다.


평소 그녀는 말수가 적고 차분한 사람이라고 했다. 병실로 올라온 그녀는 달랐다. 쉬지 않고 말을 했고, 손짓이 커졌고, 말끝이 올라갔다. 눈빛도 말투도 초등학교 2~3학년 아이 같았다.


그 무렵부터 그녀는 빛을 보기 시작했다.

"선생님 뒤에 환한 빛이 보여요."

오전 아홉 시, 회진을 돌던 내 등 뒤를 가리키며 그녀가 말했다. 옆에 선 간호사를 보더니, 저분 뒤에도 작은 빛이 있다고 했다. 나는 침대 옆의 남편을 가리키며 물었다.

"남편분 뒤에는 뭐가 보이세요?"

그녀는 남편을 한참 바라보았다.

"저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녀는 남편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했다. 그러나 둘 사이에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기억하지 못했다. 자신이 약사라는 것은 알았지만, 약국에서 매일 무슨 일을 했는지는 말하지 못했다. 이름표는 남아 있는데 그 안의 내용물이 비어 있는 것 같았다. 기억은 한 덩어리로 사라지지 않았다. 무엇이 남고 무엇이 지워지는지, 그 기준은 우리가 들여다볼 수 없는 곳에 있었다.



그날 오후 다섯 시, 그녀는 극심한 불안에 휩싸였다. 숨을 몰아쉬었고, 이번에는 이산화탄소가 너무 빠져나갔다. 며칠 전에는 숨이 모자라 중환자실을 갔던 사람이, 이제는 숨이 넘쳐서 위태로웠다. 우리는 그녀를 재우고 다시 중환자실로 내렸다. 주말 동안 지켜보기로 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우선 자가면역뇌염을 의심했고, 항체 검사를 외부 기관에 보냈다. 그러나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자가면역뇌염은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망가져서 항체가 자기 뇌를 적으로 오인해 공격하는 병이다. 치료는 과한 면역을 누르는 것이다. 원인 항체가 나오면 명확하지만, 끝내 나오지 않는 환자도 있다. 확진을 기다리는 동안 뇌는 그만큼 더 손상된다. 하지만 확신 없이 치료했다가 틀리면, 면역을 억제한 대가를 치른다.


그날 밤, MRI를 다시 찍었다. 며칠 전 깨끗했던 뇌에, 이번에는 하얗게 빛나는 자리가 있었다. 양쪽 해마(hippocampus), 그리고 양쪽 섬엽(insula). 염증이 있는 곳은 MRI에서 하얗게 드러난다. 해마는 새로운 기억을 만드는 곳이다. 그녀가 방금 들은 말을 다시 묻던 이유가 거기 있었다.



손에 쥔 것은 MRI 영상과 그녀가 그동안 보여준 증상들뿐이었다. 지속적인 기억장애, 빛을 보는 환시, 극심한 불안. 우리는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치료를 위해 면역글로불린과 고용량 스테로이드를 시작했다. 면역글로불린은 닷새 동안 들어갔다. 약은 그 뒤로도 한 달 가까이 몸 안에 머물며 일을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열흘쯤 지났을 때, 회복은 조용히 찾아왔다. 아침 회진에서 그녀가 나를 보고 물었다.

"제가 왜 병원에 있죠?"

그녀를 처음 만난 날 들었던 질문이었다. 그러나 같은 질문이 아니었다. 그때의 질문은 무너지는 기억 속에서 새어 나온 것이었고, 이번 질문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차린 사람이 던지는 것이었다. 눈빛이 달랐다. 초점이 또렷했고,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에 뭘 드셨냐고 묻자 그녀는 잠깐 생각하더니 죽이었다고 말했다. 맞는 대답이었다. 나는 이번 주 안에 일반 병실로 올라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기억이 돌아오면서 평소 수준으로 말수가 줄었다. 아이 같던 손짓도 보이지 않았다. 치료를 시작한 지 3주 만에 그녀는 남편이 말하던 그 차분한 사람이 돌아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아직 한 가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음식 맛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염증이 있었던 섬엽은 맛을 느끼는 데 관여하는 영역이다. 병이 지나간 자리에 흔적이 남은 것이다. 나는 적어도 여섯 달은 지나야 얼마나 돌아올지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럼 일단 회부터 먹으러 가야겠어요."

맛이 온전히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는 혀로, 그녀는 가장 먹고 싶은 것부터 떠올렸다.


그녀를 떠올리면 나는 그 주말을 생각한다. 손에 쥔 명확한 검사 결과 없이, 제한된 증거와 증상만 보고 추론하여 치료를 결정해야 했던 시간을. 뇌는 오래 기다려주지 않는다. 의심이 들면 빨리 알아채야 하고, 확증이 없어도 치료로 들어가야 할 때가 있다.


그녀가 보던 빛은 아마 염증이 지나가던 뇌가 만들어냈을 것이다. 나는 끝내 그녀에게 묻지 못했다. 지금도 내 등 뒤에 빛이 보이는지.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