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끝부터 무너진 몸이 다시 일어서기까지
병동 복도 끝에서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보행 보조기를 두 손으로 붙들고 한 걸음씩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곁에서 한 여자가 그의 허리에 손을 대고 보폭을 맞추었다. 키가 큰 사람이었다. 보조기에 기대 구부정한데도 나보다 한참 컸다. 나는 길을 비켜주기 위해 멈췄다.
"선생님."
쉰 목소리였다. 바람이 새는 듯한 작은 목소리.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건 응급실 이후로 처음이었다. 키가 이렇게 큰 사람이라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아는 그는 늘 누워 있었다.
그를 처음 만난 곳은 응급실이었다.
50대 초반이었고, 작은 가구 공방을 한다고 했다. 그날 저녁 그는 친구들과 당구를 치고 밥을 먹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제대로 걸을 수 없어 응급실로 왔다.
"제 몸이 왜 이러는 거죠?"
침대에 누운 채 그가 물었다. 처음 겪는 일이었을 것이다. 의료진에게도 흔한 상황은 아니다. 이 병을 모르면 놓치기 쉬운 증상이다.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시작은 사흘 전이었다. 발가락 끝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다음에는 발목이, 오늘은 무릎이 그랬다. 진찰해 보니 손끝에도 힘이 빠져 있었다. 듣는 동안 무언가가 아래에서 위로 차오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발끝에서 발목으로, 무릎으로.
반사망치로 무릎 아래를 두드렸다. 이 정도 체격의 남자라면 다리가 시원하게 튀어 올라야 했지만 그의 다리는 움찔하는 정도로만 반응했다. 무릎반사가 없다고 하기엔 애매했고, 정상이라 하기엔 약했다. 힘을 재 보니 몸통에 가까운 쪽보다 손끝, 발끝이 더 약했다.
"최근에 설사를 하시거나 감기에 걸리신 적 있으세요?"
이 병이 의심될 때 늘 묻는 질문이다. 그는 잠깐 생각하더니, 일주일쯤 전에 며칠 설사를 했다고 답했다.
그 대답에서 가느다란 선 하나가 이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흩어져 있던 증상들이 하나의 이름 쪽으로 모였다. 길랭-바레 증후군(Guillain-Barré syndrome)이었다.
나는 입원을 권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설명해야 했다.
이 병은 다리에서 멈추지 않을 수 있다. 팔로, 몸통으로 올라가 숨 쉬는 근육까지 약해질 수 있다. 그러면 스스로 숨을 쉬지 못한다. 그때는 입으로 관을 넣고 기계의 도움을 받아 숨을 쉬어야 한다. 그래서 일반 병실이 아니라 중환자실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와 아내의 얼굴이 하얘졌다. 무릎에 힘이 빠져서 온 사람에게 중환자실 이야기를 한 것이다. 이 병으로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다. 이렇게 심각한 일인 줄 모르고 온다.
입원하자마자 신경전도검사를 했다. 신경에 약한 전기 자극을 주고, 신호가 얼마나 빠르고 크게 전달되는지 재는 검사다. 발병 초기라 변화는 크지 않았다. 그래도 운동신경을 따라가는 신호가 분명히 느려져 있었고, 크기도 조금 작아져 있었다. 망치 끝에서 느꼈던 애매함이 숫자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치료는 그날 바로 시작했다. 여러 사람의 혈액에서 모은 항체, 면역글로불린을 정맥으로 넣어 날뛰는 면역을 달래는 치료다. 한 번 들어가면 몇 주에 걸쳐 몸 안에서 일한다. 이제 약이 제 몫을 해 주기를 기다려야 했다.
다음 날 새벽, 중환자실에서 전화가 왔다. 호흡수가 분당 50회라고 했다. 성인은 보통 1분에 12~20번 숨을 쉰다. 달려가 보니 그는 짧고 얕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동맥혈 검사에서는 이산화탄소가 쌓이고 있었다. 숨 쉬는 근육이 약해지면 숨이 얕아지고, 몸 안의 이산화탄소를 다 내보내지 못한다. 그는 아직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는 침대 곁에 서서 말했다.
"응급실에서 말씀드렸던 그 순간이 온 것 같습니다. 숨을 편하게 쉬시려면 관을 넣고 기계의 도움을 받으셔야 해요. 일단 좀 재워 드릴게요. 한숨 푹 주무세요."
그렇게 새벽을 버텼다. 날이 밝고 다시 두드려 본 그의 무릎은 이제 조금도 반응하지 않았다.
신경과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개 뇌를 떠올린다. 뇌졸중, 치매, 파킨슨병. 하지만 신경은 머릿속에만 있지 않다. 뇌와 척수에서 뻗어 나온 신경은 팔다리 끝까지 온몸 구석구석으로 이어진다. 이 사람의 병은 뇌가 아니라 그 바깥, 말초신경에 있었다. 신경과는 몸 안의 신경이 닿는 모든 곳을 본다.
말초신경은 전선과 비슷하다. 가운데에는 신호가 지나는 심지가 있고, 바깥은 피복이 감싸고 있다. 이 피복을 수초(myelin)라고 한다. 수초가 있어야 신호가 빠르고 정확하게 달린다. 길랭-바레 증후군은 면역이 이 신경을 공격하는 병이다. 그의 경우에는 주로 피복이 벗겨졌다. 신호가 새고 느려지니, 뇌가 아무리 움직이라고 해도 근육까지 명령이 제대로 닿지 않는다. 검사에서 신호가 느려져 있던 것도 그래서다. 발끝부터 무너진 것은 발끝으로 가는 신경이 가장 길기 때문이다. 길이가 긴 만큼 공격받을 자리도 많다.
반사가 약해지다 사라진 것도 같은 이유다. 망치로 무릎을 두드리면 그 자극이 신경을 타고 척수까지 갔다가 돌아와 다리를 튀어 오르게 한다. 그 길이 끊기면 다리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면역은 왜 제 신경을 공격했을까? 이 병을 설명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은 ‘착각’이다. 몸에 세균이 들어오면 면역은 그 세균의 생김새를 기억하고 공격한다. 그런데 어떤 세균의 표면은 우리 신경의 표면과 닮았다. 세균을 쫓던 면역이 닮은 얼굴을 한 제 신경까지 적으로 오인한다. 설사가 지나가고 일주일 뒤에 마비가 시작된 것도 그래서다. 면역이 세균에 맞설 항체를 만들어 내는 데 그만큼 걸린다. 항체가 신경까지 겨눈 것이다.
며칠 뒤 검사 결과가 나왔다. 캄필로박터 항체 양성. 캄필로박터는 덜 익은 닭고기로 흔히 옮는 세균이고, 이 병에 앞서 가장 자주 발견되는 균이다.
나는 보호자 아내에게 최근에 닭을 드신 적이 있는지 물었다. 말복이라 집에서 삼계탕을 끓였다고 했다. 생닭은 남편이 직접 손질했다고. 몸보신을 하려고 끓인 한 그릇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에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그 닭이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확실하지 않은 인과관계로, 이미 충분히 놀란 사람에게 짐을 더 얹을 수는 없었다.
인공호흡기의 도움이 오래 필요할 것 같았다. 입으로 넣은 관은 보통 한 주 넘게 두기 어렵다. 목 앞쪽에 작은 구멍을 내고 그리로 관을 옮기는 기관절개술을 했다. 숨은 편해졌지만, 공기가 성대를 지나지 않으니 그는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되었다.
그 뒤로 그는 글자판으로 말했다. 자음과 모음이 적힌 판에서 글자를 하나씩 짚어 말을 만들었다. 그의 말은 대부분 가렵다는 것이었다. 여기 좀 긁어 달라고. 숨이 끊어질 뻔한 고비를 넘긴 사람이 가장 자주 한 부탁은 가려운 곳을 긁어 달라는 것이었다. 나무를 깎고 가구를 짜던 큰 손이, 가려운 곳 하나에 닿지 못했다. 병은 사람에게서 큰 것만 빼앗지 않는다. 너무 당연해서 한 번도 의식해 본 적 없는 일, 제 몸을 제 손으로 만지는 일부터 가져간다.
급성기가 지나 그는 일반 병실로 옮겼고, 지속적인 재활 치료를 위해 재활의학과로 넘어갔다. 우리는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했다. 할 일을 했다고. 그 뒤로 그를 볼 일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 복도였다.
보조기를 붙든 손이 떨렸다. 한 발을 떼는 데 온몸이 필요해 보였다. 걷는다기보다 걸음을 다시 배우는 중이었다. 곁의 아내가 그 속도에 맞춰 걸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아닙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더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그 말이 전부였다. 고생은 그가 했다. 숨이 가쁘던 새벽을 견딘 것도, 글자를 하나씩 짚어 가며 밤을 보낸 것도, 지금 그 한 발을 떼는 것도 그였다.
돌아서며 뿌듯했다. 이렇게 극적으로 좋아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유난히 힘든 하루였는데, 그 짧은 마주침 덕분에 나는 그날을 버틸 수 있었다.
나는 그를 누운 모습으로만 알았다. 반사가 사라져 가는 무릎, 이산화탄소 수치, 가장 위급했던 몇 시간. 의사가 한 사람을 만나는 시간은 대개 그 사람의 가장 약한 순간이다. 그가 얼마나 큰 사람인지, 어떤 목소리로 말하는지 모른 채 떠나보낼 때가 많다.
그날 복도에서 나는 처음으로 서 있는 그를 보았다.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큰 사람이었다.
[참고 문헌]
1. van den Berg B, et al. Guillain-Barré syndrome: pathogenesis, diagnosis, treatment and prognosis. Nat Rev Neurol. 2014;10(8):469-482.
2. Leonhard SE, et al. Diagnosis and management of Guillain-Barré syndrome in ten steps. Nat Rev Neurol. 2019;15(11):671-6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