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왜 그렇게 많이 울었을까
내가 기억하는 삶의 첫 장면은 네 살 무렵이다.
우리 가족이 이사를 오면서 넘어왔던 고개가 있었다. 버스종점이 있던 그 고개에서 어린 나는 울고 있었다.
왜 울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누가 옆에 있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고개와 버스종점, 그리고 울고 있던 어린 나의 모습은 기억에 남아 있다.
어릴 적 내 별명은 ‘울보’, ‘수도꼭지’였다.
그만큼 많이 울었다.
서러워도 울고, 무서워도 울고, 억울해도 울었다. 한번 눈물이 나기 시작하면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잘 그치지 않았던 모양이다.
두 번째로 기억나는 장면은 여섯 살 무렵이다.
방에서 낮잠을 자다가 깼다. 내가 잠결에 “나 집에 갈래”라고 했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한 말이다. 나는 이미 집에 있었으니까.
방 밖에는 언니와 동네 친구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내 잠꼬대를 듣고 “그래, 집에 가라”며 웃고 놀렸다.
그런데 정말 엄마는 없었다.
집에 아무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언니도 있었고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데 어린 나에게는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보다 엄마가 없다는 사실이 더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때도 나는 많이 울었다.
엄마가 어디를 가려고 하면 따라가고 싶어 울었던 기억도 있다. 왜 그렇게까지 엄마를 따라가고 싶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어릴 때의 나는 자주 울었고, 자주 서러웠다.
엄마는 내가 갓난아기였을 때는 안아 달라고 심하게 보채는 아이는 아니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엄마가 울면 꼭 따라 우는 아이였다고 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엄마가 많이 우셨는데, 어린 나도 옆에서 계속 따라 울어 엄마가 많이 울지 못했다고 하셨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지만 엄마는 오래 기억하고 계셨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에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죽음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나이는 아니었을 텐데 그때도 나는 많이 울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딸 다섯, 아들 하나, 여섯 남매가 있었다
엄마는 화가 나도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빠와 싸우고 나면 해야 할 일은 묵묵히 하면서도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속으로 화를 삭이는 사람이었다. 그러고 나면 소화가 되지 않는다며 우리에게 명치를 밟아달라고 하곤 했다.
나는 그것을 보며 자랐다.
속상해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하고, 화가 나도 참아야 하고, 마음이 아파도 말하지 않는 것.
어쩌면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런 방식을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억울한 것을 참 힘들어했다.
내가 하지 않은 일로 혼이 날 때, 내 뜻과는 다르게 오해를 받을 때, 나는 어떻게든 설명하고 싶었다.
“내가 그런 게 아니야.”
“내 말도 좀 들어봐.”
그런 말을 하고 싶었지만, 말을 하려고 하면 “여자아이가 말대꾸한다”는 꾸중이 먼저 돌아왔다.
그러면 나는 또 울었다.
억울해서 울고, 말을 못 해서 울고,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 울었다.
어쩌면 그래서 내 별명이 ‘수도꼭지’였는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나는 그냥 내가 눈물이 많은 아이였다고 생각했다.
조금 예민하고, 잘 울고, 별것 아닌 일에도 서러워하는 아이.
나 자신도 왜 그렇게 많이 울었는지 잘 몰랐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을 공부하면서 가끔 그때의 내가 생각났다.
왜 그렇게 울었을까.
꼭 하나의 이유를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래된 기억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고, 지금의 내가 어린 나의 마음을 모두 이해할 수도 없다.
다만 이제는 그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게 그렇게 울 일이었니?”
“왜 그렇게 별것 아닌 일에 울었니?”
대신 조금 다르게 말해주고 싶다.
무서웠겠구나.
서러웠겠구나.
억울했겠구나.
하고 싶은 말은 많았는데 아무도 네 말을 끝까지 들어주지 않는 것 같아서 더 속상했겠구나.
그때의 나는 내 마음을 설명할 말을 아직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말보다 눈물이 먼저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울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싫으면 싫다고 해도 되고, 억울하면 내 이야기를 해도 되고, 모든 사람에게 착한 아이가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가끔 그 아이를 다시 만난다.
그리고 그때 아무도 해주지 않았다고 느꼈던 말을 지금의 내가 해준다.
네 이야기, 내가 끝까지 들어줄게.
생각해 보면 내가 오랫동안 찾고 싶었던 ‘집’은 어떤 장소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내 마음을 함부로 밀어내지 않는 곳.
이제는 그런 자리를 내 안에도 조금씩 만들어가고 싶다.
이유 없이 서러웠다고 생각했던 그 아이에게도
이제는 편히 돌아갈 곳 하나쯤 만들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