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는 금세 오한이 되었다. 이가 딱딱 부딪혔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려도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무릎을 배 쪽으로 끌어당기고 두 발을 포갰다. 발끝이 시렸다.
이마가 뜨거웠다. 몸은 불덩이인데 속은 얼음장 같았다. 여자는 감기라는 걸 모르고 살았다. 평생 앓을 것을 그 밤에 한꺼번에 앓는 것 같았다.
남편은 여자가 조금만 아픈 기색을 보여도 이마부터 짚어 주곤 했다. 따뜻한 물을 가져다주고, 곁을 따라다니며 얼굴을 살폈다. 아침이면 여자의 이마를 쓸어 주며 잘 잤냐고 물었다.
물을 마시러 일어나야 했다. 이불 밖으로 팔을 내밀었다가 도로 넣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몸 여기저기가 쑤셨다.
여자는 전화기를 집어 들어 손위동서의 이름을 찾았다. 손가락이 그 위에 머물렀다. 이 시간에 전화를 하면 잠을 깨울 것이었다.
전화기를 엎어 놓았다가 다시 들었다. 이번에는 ‘친정엄마’를 찾았다. 이름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저만큼 밀어 놓았다.
밤새 앓으며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했다. 눈을 뜨면 천장이 낯설었다. 여자는 이불을 여미고 다시 눈을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겨울비 소리에 눈을 뜨니 창이 밝아 있었다.
"어, 비 오네. 애들 아빠 오겠네. 뭘 해 줄까?"
말이 먼저 나왔다. 여자는 이불을 젖히고 일어나려다 그대로 굳었다.
비가 오면 일을 쉬고 집으로 돌아오던 남편이었다. 아파트에 살 때는 비만 오면 뒷베란다 창에 붙어 서 있었다. 남편의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오면 가슴이 뛰었다. 비요일 부부였다. 여자는 눈 오는 날도, 비 오는 날도 좋아했다.
여자는 한참 동안 밖을 내다보았다. 빗물이 유리창을 타고 흘렀다.
문을 열 시간이 되자 여자는 몸을 일으켰다. 양말을 신으려고 허리를 굽히니 머리가 쏟아질 듯 아프고 속이 뒤집혔다. 발끝에 걸린 양말을 조금씩 끌어올렸다.
그날도 일터 문은 정시에 열렸다.
문을 여는 데까지였다. 여자는 직원에게 일을 맡기고 구석방에 들어가 다시 누웠다. 밖에서 손님을 맞는 소리가 들려 눈을 떴다가 도로 감았다.
보다 못한 직원이 병원에 가자고 했다.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직원은 하는 수 없이 약을 사다 주었다.
소식을 들은 간호사 지인이 주사를 들고 왔다. 여자는 몸을 일으키다가 쓰러지듯 누워 팔을 내밀었다. 누운 채로 약을 삼켰다. 그래도 열은 내리지 않았다.
끙, 끙.
앓는 소리가 절로 새어 나왔다. 입을 다물고 있어도 숨 끝에 소리가 묻어 나왔다. 아프면 이런 소리가 난다는 걸 여자는 그때 처음 알았다. 소리가 밖으로 새지 않게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 겨울부터 여자는 터널 앞에서 차를 돌렸다. 입구가 가까워지면 운전대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고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뒤에서 차가 따라오면 길 가장자리로 비켜섰다. 차들을 먼저 보내고 돌아갈 길을 찾았다. 물 위로 난 다리는 걸어서도 건너지 못했다.
해가 지면 어두운 곳에는 발을 들이지 못했다. 문밖에 두고 온 물건이 생각나도 아침까지 기다렸다.
좁은 방에 혼자 있으면 숨이 막혔다. 문을 열어놓고 누웠다가도 결국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여자는 매일 밤 창이 밝아 오기만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