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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AltusSolum


길가에 무심히 버려진 화분을 엄마는 지나치지 못하셨다. 솔직히 앙상하게 마른 줄기와 뿌리에 비해 몸통은 비대한데, 그와중에 꽃 몽오리가 듬성듬성, 아예 버리기엔 아깝지만 그렇다고 이 몽오리의 아이들이 다 피워낼때까지 기다리기엔 한없이 시간이 필요할것만 같이 보였다. 이미 효용이 다했다고 여겨져 아스팔트 한쪽에 내던져진 생명을, 누군가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음식물 쓰레기’ 같은 그 방치된 화분을 엄마가 지나치지 못한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입장에서 세상의 규격에서 벗어난 존재가 견뎌야 하는 폭력의 무게를 과연 어디까지 짐작할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앤 카슨의 <빨강의 자서전(Autobiography of Red),1998> 속 게리온이 떠올랐다.


솔직히 나는 앤 카슨(Anne Carson, 1950-)의 <남편의 아름다움(The Beauty of the Husband), 2001>이 참 재밌었다.

'지적인 불성실함(intellectual dishonesty)'이라는 개념을 다뤘다는 것 자체가 매우 흥미로웠다.

카슨은 단순히 머리가 나쁘거나 무지함을 말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지적 능력이 뛰어나고 언어적 세련됨을 갖춘 사람이 자신의 지혜와 논리를 타인을 기만하고 조작하는 데 교묘하게 악용하는 태도를 조명했다.

쉽게 말하면 요즘 많이 쓰는 단어로는 ‘가스라이팅’을 들 수 있겠다.

그들은 보통 사실을 비틀고, 진실을 왜곡해서 논리적인 희망고문을 한다.

보통 단순히 무지한 사람들은 말이 통하지 않거나 거짓말의 논리가 빈약해 금방 드러나지만,

'지적으로 불성실한' 사람은 고차원적인 논리를 흐리기 때문에 더 깊은 정신적 혼란과 상처를 준다.


이 바카라의 핵심 주제 중 하나는 '아름다움(외모나 매력)과 진실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편은 치명적인 매력과 지적인 탁월함을 지녔지만, 그 내면은 완전히 기만으로 채워져 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지적 매력을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숨기고 상대를 통제하는 도구로 소모하는데, 이것이 바로 카슨이 지적하는 '지적 불성실함'이다. 어쩌면 몰라서 실수 한 것이 아니라, 진실이 무엇인지 명백하게 ‘알면서도 저지르는 기만’이 더 나쁠 수 있다. 가장 똑똑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타인의 영혼을 난도질하는 지성인의 위선과 폭력을 예리하게 고발하는 개념이 즉 ‘지적 불성실함’의 본질인 것이다. 당연히 이것은 ‘남편’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러한 ‘아내’들도 많을테니까..그러나 카슨이 여성이니 남편하게 당하는 그 심리를 더 촘촘하게 그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에 끌리는 인간의 본능을 쉽게 제쳐들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늘 선이 어딘지 유의해야 한다.


아무튼 오늘의 주제로 돌아오면,

신화 속에서 헤라클레스에게 날개를 짓밟히고 세상으로부터 유배당했던 그 아웃사이더인 게리온의 삶은 너무 안쓰럽기만 하다. 그래서 방치된 채 시들어 가던 제라늄 화분의 모습과 묘하게 겹쳐진다.


우선 게리온은 엄마의 사랑이 아니라, 기피와 구박을 먹고 자랐다.

그 엄마는 게리온의 남다른 감수성 과 내면을 이해해주기보다, 마치 '어딘가 결함이 있는 부담스러운 존재'로 대한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부터 "너는 왜 보통의 아이들과 다르냐"는 식의 무언의 억압과 정서적 방임이 작동하면서게리온은 세상에 나가기 전부터 이미 스스로를 '구박받아 마땅한 괴물'로 내면화한다.


그리고 나쁜사람을 만났다.

신화 속에서 헤라클레스는 괴물 게리온을 처단하는 영웅이지만,

카슨의 작품 속 헤라클레스는 매력적이고 카리스마 넘치지만 타인의 감정을 잔인하게 소비하고 파괴하는 위에서 다뤘던 지적 불성실함을 지닌 ‘남편’같이 묘사된다.

게리온은 첫사랑인 헤라클레스에게 깊이 매몰되지만,

헤라클레스에게 게리온의 '붉은 날개(독창성과 취약성)'는 경외의 대상이 아니라, 마음대로 꺾고 지배할 수 있는 수단일 뿐이다. 진실하고 여린 감정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고, 가볍게 무시하고 상처를 준다.


마지막으로 남은 세상 모두가 2차 가해를 했다.

게리온은 세상을 남들과는 전혀 다른 감각(색채로 감정을 느끼고, 사진으로 세계를 응시하는 방식 등)으로 경험한다. 한마디로 보다 높은 해상도를 가지고 세상을 본다. 그러니 더 잘 보이고, 더 많이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슬롯는 '평균'의 규격에 맞지 않는 존재를 견디지 못한다. 게리온의 예민함과 내면의 깊이는 타인들에게 종종 기이함이나 조롱의 대상이 되고, 세상은 그를 억지로 틀에 맞추거나 주변부로 밀어내며 끊임없이 상처를 입힌다. 결국 게리온이 구박당하는 이유는 그가 약하거나 악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순수하고 고유한 '자기 자신'을 온전히 품고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차라리 무관심한것이 훨씬 나을때도 있다. 사람을 서럽게 하면 결국 다 자신에게 돌아온다. 세상이 요구하는 보통의 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처 입고, 자신의 고유한 붉은 날개를 숨긴 채 살아내야 했던 존재들…그러나 삶은 무심한 방치 속에서도 기꺼이 자신만의 영토를 복원해 낸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손수 흙을 갈아엎고 새로운 자리를 내어준 돌봄의 시간. 3일이면 충분했다. 그 속에서 사력을 다해 끌어올린 생명력은 마침내 한 송이 꽃으로 터져 나왔다.


화분에서 피어난 제라늄은 평범한 붉은색이 아니었다.

그것은 눈이 멀 정도로 선명하고 강렬한 진홍빛이었다.

‘Einmal ist keinmal’.

지상에 단 한 번 허락된 유한한 생의 조건 속에서, 스쳐 지나갈 뻔한 인연을 붙들어 생명을 틔워낸 이 찰나의 기억은 그래서 결코 가볍지 않다. 어쩌면 성별도, 출신도, 조건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생명의 온도, 그리고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는 진실한 눈이다.

타오르는 태양처럼 붉은 제라늄을 바라보며 꽃말을 찾아보았는데, 이럴수가 ‘위로’였다.

화려한 외모와는 다르게 속정깊은 아이였다. 반전매력이란 이런것이 아닐까?



**참고로 앤 카슨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다.

이 작가의 의의가 상으로 상향되는것은 아니라서

본문에 적지 않았는데

그래도 너무 의도적으로 최근 축하할만한

소식을 축소시킨다는 의견이 있어서 첨언한다. **


https://www.nobelprize.org/prizes/literature/2026/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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