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a Reader, Tommorow a Leader
Martin Heidegger(1889-1976)
20세기 서양 지성사를 논할 때 마틴 하이데거(1889~1976)를 우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자크 데리다의 해체주의, 현대 건축학과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그의 사유가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는 2,500년 서양 철학의 오류를 바로잡은 천재였지만, 동시에 나치(Nationalsozialismus)에 동조하고 평생 자신의 과오를 궤변으로 일관했던 모순적 인간이기도 했다.
그를 단순한 '악당'으로 매도하는 것은 역사적 맥락을 평면화하는 것이다. 그의 진짜 비극은 악함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존재를 바카라임지는 '본래성(Eigentlichkeit)'을 그토록 주창했음에도 정작 현실의 선택 앞에서는 늘 가장 안전한 곳으로 회피했던 지독한 '우유부단함'과 '비겁함'에 있었다. 자신의 삶에서는 익명적 대중과 권력 뒤에 숨는 가장 전형적인 '비본래성(Uneigentlichkeit)'의 표본으로 남은 이 기형적인 학자의 생애와 철학을 분석해볼까 한다. 철학자의 삶이 타락했다고 해서, 그가 벼려낸 사유의 도구마저 폐기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존재와 시간 (Sein und Zeit, 1927)>
"Das Wesen des Daseins liegt in seiner Existenz."
다자인의 '본질'은 그것의 실존에 있다.
**하이데거 철학을 설명할때 쓰이는 번역어들(현존재(Dasein), 존재자(Seinendes), 피투성(Geworfenheit), 기투성(Entwurf)은 한자어의 장막에 가려져 있어 오히려 이해를 방해한다. 원어의 날것 그대로 그를 마주할때 사유의 뼈대는 훨씬 선명해진다.
자인(Sein, 존재)의 복원: 이전까지의 철학은 눈앞에 있는 컵, 바카라상과 같은 '존재하는 것들(자이엔데스, Seiendes)'을 분류하는 데 그쳤다. 하이데거는 질문의 차원을 바꿔 그것들이 이 세상에 고유하게 '있다'는 사실 자체를 물으며 '존재(Sein)'의 문제를 철학의 중심에 복원했다.
다자인(Dasein)의 탄생: 그는 고정된 사물과 달리,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묻고 유한성(죽음) 앞에서 불안해하는 인간 주체를 '다자인(Dasein, 거기-있음)'이라 명명했다.
학문적 성취와 인간적 한계: 이 바카라은 다자인이 세상의 잣대(세인, Das Man)에 휩쓸리지 않고, 수동적으로 던져진 조건(Geworfenheit)을 딛고 자신의 궤적을 스스로 기획(Entwurf)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구수한 슈바벤 사투리를 쓰는 시골(Messkirch) 출신의 신학도가 서양 철학의 뿌리를 뒤흔들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바카라은 하이데거가 제자였던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와의 만남(1924)과 깊이 교감하던 시기(1924-1926)에 집필되었다. 이는 두 사람의 사후 아렌트가 보관하던 편지들로 세상에 알려졌다.
Liebe Hannah! ... Daß Du in mein Leben kamst, das soll nie mehr verloren gehen."
네가 내 삶에 들어왔다는 사실, 그것은 결코 다시는 잃어버려지지 않을 것이다. (1925)
"Deine Liebe ist mir die innere Kraft der Arbeit geworden."
너의 사랑은 내 작업의 내적인 힘이 되었다. (1926)
<아렌트와 하이데거 1925-1975 서한집(Hannah Arendt / Martin Heidegger: Briefe 1925 bis 1975)>
바카라 속에서는 세상의 잣대(Das Man)를 넘어 스스로를 던지는 엔트부르프(Entwurf)를 감행하라고 썼던 하이데거는, 현실에서는 아렌트와의 관계를 바카라임질 용기가 없었다. 아렌트는 결국 하이데거의 우유부단함을 견디지 못하고 마르부르크 대학을 떠난다. 그녀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또 다른 실존주의 거장 카를 야스퍼스(Karl Jaspers) 밑으로 적을 옮겨(1926) 타인을 위한 철학적 뮤즈가 아닌 독립적인 사상가로서의 자신의 궤적을 쟁취해 낸다.
아렌트의 행동하는 존재(Vita Activia)
1929년, 아렌트는 야스퍼스 지도 아래 박사학위(Der Lebesbegriff der Augustin(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 개념)을 완성한다. 이 논문의 핵심 주제는 '인간은 타인과 어떻게 관계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가'였다.
그녀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을 빌려 사랑을 세 가지 차원으로 분석한다.
갈망과 소유로서의 사랑 (Appetitus)
인간은 결핍된 존재이기에 끊임없이 무언가를 원하고 갈망(Appetitus)한다. 그러나 세속적인 대상을 향한 사랑은 본질적으로 '상실에 대한 두려'을 동반한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언제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인간은 상대를 통제하고 소유하려 든다.
창조주를 향한 기억과 회귀 (Memoria)
세속적 소유욕의 덧없음을 깨달은 인간은 영원한 것(창조주, 절대자)을 향해 내면으로 침잠한다. 세상의 잣대를 끊어내고 오직 절대적인 진리 안에서 평온을 찾으려 한다.
이웃 사랑: 세상을 구축하는 사랑 (Caritas / Dilectio proximi)
이 논문의 가장 위대한 철학적 성취이자 아렌트 사상의 출발점이 되는 부분이다. 아렌트는 사랑이 단지 개인의 내면적 평온이나 밀실의 쾌락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진정한 사랑은 절대자(진리)를 매개로 하여 '나의 이웃(타자)'을 향해 밖으로 뻗어나가는 슬롯적 연대(Caritas)로 승화되어야 한다.
하이데거의 사유는 철저히 고독한 개인(다자인)이 세상(Das Man)과 단절된 채 자신의 죽음을 직시하는 '세계-상실(Weltlosigkeit)'의 철학이자 관조적인 삶(Vita Contemplativa)이라면 아렌트는 이 논문을 통해 하이데거의 세계관을 완벽하게 부수고 나온다. 인간은 세계를 피해 밀실로 숨는 존재가 아니라, 타인(이웃)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함께 살아가는 '세계(World)'를 구축해야 하는 행동하는 존재(Vita Activa)라는 것이다. 사랑을 '소유의 공포'가 아닌 '타인과 공존하는 정치적 연대의 출발점'으로 재해석해 냈다.
인간 하이데거
하이데거는 바덴 지방의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성당지기의 아들로 태어난 가톨릭 청년이었다. 반면 엘프리데(Elfride Petri)는 프로이센 고위 장교 출신 아버지와 부유한 상인 가문 어머니를 둔 최고위 신교도(Protestant) 엘리트 가문의 상속녀였다. 1917년 두 사람의 결혼은 하이데거를 단숨에 '부르주아 엘리트 계급'으로 끌어올린 엄청난 신분 상승이었다.
하이데거 철학의 성지이자, 그가 세상과 단절된 채 위대한 사유를 펼쳤다는 Schwarzwald 지역, 토트나우베르크(Todtnauberg) 산장(Hütte) 역시 엘프리데가 자신의 막대한 유산으로 땅을 매입해 남편에게 지어준 '선물'이었다. 또한 엘프리데는 돈만 많은 것이 아니라 남편의 원고를 정리하고 출판 계약을 맺으며 슬롯적 지위를 완벽하게 관리한 최고 권력자였다. 게다가 그녀는 아주 초기부터 히틀러를 지지한 맹렬한 나치 당원이자 반유대주의자였다. 하이데거가 1933년 그토록 쉽게 나치에 동조하고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직을 수락했던 배경에는, 그의 철학적 오만뿐만 아니라 이처럼 견고한 엘프리데의 계급적·정치적 영향력이 자리하고 있었다. 부르주아적 안락함과 학계의 지위를 상실함을 의미하는 선택은 아무리 용감한 인간에게라도 어려웠을텐데, 하물며 우유부단한 철학자에겐 어땠을까? 언제나 숨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다.
인생은 연장전
1933년 하이데거가 총장이 되고 나치에 부역할 때, 아렌트는 홀로코스트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것은 전쟁이 끝난 1950년 2월이었다. 미국 학계의 거물로 성장한 아렌트는 유럽 순방 중 프라이부르크의 호텔(Hotel Walfisch)에 머물며 은사에게 짧은 메모를 남겼고, 달려온 하이데거와 25년 만에 눈물의 재회를 한다. 그러나 이 극적인 만남 직후, 하이데거는 서양 기괴하고 무바카라임한 촌극을 벌이는데 집으로 돌아가 엘프리데에게 25년 전의 불륜을 돌연 고백하고, 다음 날 두 여자를 한자리에 불러모아 기어이 3자 대면을 성사시킨 것이다. 엘프리데의 견고한 자본망을 벗어날 용기는 없으면서, 옛 제자의 지적 영감은 계속 교류하며 취하고 싶었던 그의 욕심이었다. 더 끔찍한 것은 갈등의 수습을 두 여자에게 떠넘긴 지독한 바카라임 전가였다. 남편의 뒤늦은 고백에 모멸감을 느낀 엘프리데는 아렌트의 면전에서 혐오가 섞인 질투를 쏟아냈고, 정작 하이데거는 두 여자 사이에서 쩔쩔매며 비겁하게 숨어버렸다. 이 막장 드라마 같은 서사는 호사가들의 가십이 아니다. 훗날 출간된 두 권의 서한집(<아렌트-하이데거 서한집>, <아렌트-블뤼허 서한집>)에 의해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팩트로 백일하에 드러났다.
아렌트는 분노하는 대신 서늘한 연민으로 사태를 수습한다. 그녀는 엘프리데에게 편지를 보내 "나는 마틴을 훔칠 생각이 전혀 없으며, 내게는 이미 훌륭한 남편이 있습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이 문장은 쟁취한 자의 얄팍한 우월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밀실에 숨어 바카라임을 회피하는 하이데거가 아니라, 자신과 함께 세상을 향해 걷는 참된 동지 하인리히 블뤼허(Heinrich Blücher, 1899-1970)를 가졌다는 긍지였다. 동시에 비겁한 남편에게 평생을 저당 잡히고도 과녁을 잃은 채 자신에게 화살을 쏘아대는 가엾은 엘프리데를 향한, 진정한 주권자의 우아한 퇴장 선언이었다. 이후에도 아렌트는 미국 학계에 하이데거의 바카라을 번역 출간하며 그의 명예 회복을 도왔다. 이는 인간 하이데거의 비겁함은 경멸하되, 그가 이룩한 철학적 웅장함만큼은 인정했던 아렌트의 압도적인 관용이자 지적 승리였다.
죽음과 불안을 직시하라고 웅장하게 떠들었던 철학자는 현실의 문제 하나 스스로 감당하지 못해 두 여자 뒤에 숨어버린 구제 불능의 '비본래적(Uneigentlich)' 소시민이었다. 반면, 스승의 편지 한 통에 갇혀있던 18세 소녀는 홀로코스트를 뚫고 나와, 흔들림 없는 자신만의 영토(Altus Solum)를 지배하는 주권자가 되어 있었다.
생각한 대로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보여준 사람
지성(Intellect)이 실존적 용기(Courage)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르틴 하이데거만큼 적나라하게 증명한 인물은 없다. 세상의 허위의식을 타파하라고 외쳤으나, 정작 본인은 파시즘의 권력과 엘프리데가 제공하는 안락한 일상 뒤에 평생을 숨어 살았다. 하이데거의 웅장한 관념의 성채는, 결국 그 자신이 남긴 비겁한 편지들에 의해 완벽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우리는 도덕결벽증에 빠져 그가 남긴 압도적인 사유의 도구마저 내다 버리는 지적 나태함을 범해서는 안 된다. 흠결 있고 비겁한 대장장이가 벼려낸 칼이라도 그 절삭력이 압도적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그 칼을 쥐고 우리를 옭아매는 현실의 부조리를 베어내야 한다.
하이데거의 생애는 우리에게 두 가지를 남겼다. 시대를 꿰뚫는 가장 예리한 '철학적 렌즈'이며, 사유(Vita Contemplativa)와 행동(Vita Activa)이 일치하지 않는 지식인이 얼마나 초라한 괴물로 전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반면교사'다. 그의 철학을 딛고 서되, 그의 비겁한 궤적을 보면서 교훈을 삼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