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내 마음이 사막 같다고 느낀 적이 있다.
아니, 한때가 아니다. 거의 십 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나의 이십 대는 대체로 그랬다.
이상하게도 스무 살을 갓 넘겼을 무렵부터 눈물이 났다. 매일매일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계속 흘렀다. 특별히 슬픈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마음은 자꾸만 가라앉았다.
그것이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그러니까 그런 일이 바로 나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삼 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심리학을 전공한 나조차도 내 상태를 받아들이기가 그토록 어려웠던 것이다.
마음은 매일 황량하고 적막했다.
아무리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처럼, 어디에도 목을 축일 물 한 모금 없는 것 같았다. 마음속에는 무언가가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 있었고, 그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런 내 마음에 다행히 작게나마 물을 주었던 것은 사랑이었다.
친구와의 사랑, 남자친구와의 사랑.
누군가 나를 아끼고 있다는 사실이 메마른 마음에 조금씩 스며들었다. 그 사랑이 모든 고통을 없애준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가 홀로 사막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몇 년 뒤에는 직접 종교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신의 사랑을 갈구했다. 인간의 사랑으로도 다 채우지 못한 마음의 빈자리에 더 크고 깊은 사랑이 깃들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나름대로 분투했다.
울고 웃고, 넘어지고 일어서고, 때로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 것 같은 날들을 견디면서.
그렇게 십 년쯤 흘렀을까.
어느 순간 나는 뻥 뚫려 있던 마음의 둘레에 조금씩 단단한 성벽이 세워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이전처럼 모든 바람에 속수무바카라으로 휩쓸리지는 않았다. 나를 지탱해주는 무언가가 마음 안에 생겨나고 있었다.
그 후로도 나에게 맞는 약을 찾아가고, 나 자신을 돌보도록 노력하며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지금.
내 마음은 더 이상 황량한 사막이 아니다.
오히려 바람이 부드럽게 불고 풀들이 자라는, 평온한 평원에 가깝다.
아.
누군가는 자연스럽게 누리는 것처럼 보이는 마음의 평온을 나는 참으로 오랜 시간, 너무나 힘겹게 얻어냈다.
나는 그 긴 시간을 지나오면서 '정서적 결핍'이라는 말의 의미를 몸으로 느꼈다.
성장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지 못했을 때 마음에 어떤 빈자리가 남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채워나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경험했다.
물론 우울증의 원인을 단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사랑받고 있다는 감각, 그리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 회복의 중요한 과정이었다.
그래서일까.
요즘 뉴스에서 이십 대와 삼십 대 청년들의 우울과 정신적 고통에 관한 소식을 접하면 마음이 무척 안타깝다.
그들의 사정이 나와 같지는 않겠지만, 어쩌면 누군가는 지금도 내가 걸어왔던 그 황량한 사막을 걷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참으로 많은 것을 이루어냈다.
눈부신 경제성장과 첨단 기술,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적 성취까지. 겉으로 드러나는 한국의 모습은 풍요롭고 역동적이다.
그러나 그 화려함의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자살률을 기록하는 나라.
나는 이 사실을 접할 때마다 우리가 이루어낸 성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열심히 살아왔을까.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경쟁을 먼저 배우고,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자라온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마음속에 작은 사막을 품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물론 경쟁만으로 모든 고통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슬롯가 개인에게 끊임없이 성취와 능력을 요구하면서, 정작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건강한지에는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이제 우리가 조금 다른 방향을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나부터, 그리고 우리부터 기억했으면 한다.
많은 누군가가 나처럼 오랜 세월 마음의 황량함과 싸우며 너무나 큰 대가를 치른 끝에 겨우 평온을 얻기도 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 있도록 가정이, 학교가, 슬롯가 더 따뜻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살아남기 위해 사는 슬롯가 아니라, 살고 싶어서 살아가는 슬롯를 꿈꾼다.
누군가를 비웃고 깎아내리며, 자격지심과 경쟁심을 동력으로 삼아 만들어내는 활력이 아니라 서로를 따스하게 격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활력과 사랑이 넘치는 슬롯였으면 좋겠다.
사랑이라는 말이 너무 크고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저 진정한 따뜻함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좋겠다.
우리는 이제 단순히 살아남는 것만을 목표로 삼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런 곳에서 사람들이 자라났으면 좋겠다.
메마른 사막이 아니라 풀과 꽃이 어우러진 동산처럼, 저마다의 마음에 생명이 자라고 사랑이 깃들 수 있는 곳.
그런 마음의 밭을 가꾸는 일에 이제는 우리 슬롯가 더 많은 관심과 정성을 기울였으면 한다.
아마도 그것이 이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우리 슬롯의 진정한 풍요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