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금 늦게 문을 연다

by아리김


외국은 솔직히 내게 어렵고 어색하다.
일단 눈에 들어오는 글자부터 낯설다. 거리의 간판도, 사람들의 말소리도, 그곳에서 통용되는 생활 방식도 내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세상과는 다르다.

무엇보다 그냥 여행지에 가면 그곳이 그저 여행지일 뿐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유명한 음식을 먹고, 관광스폿을 돌아다니는 경험을 하고 돌아왔다고 해서 그 나라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고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한 나라를, 그리고 그 나라의 문화를 알려면 내 경우 조금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그곳 사람들이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는지,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슬퍼하는지.
그런 것들을 알아야 비로소 그 나라를 조금 이해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사실 외국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길어야 일주일 남짓 머무르는 동안 그곳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짧은 여행에서 얻는 인상은 아무래도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차라리 그 나라를 다룬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편이 좋다.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사람들의 생활을 알아가면서 조금씩 관심을 쌓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 나라가 궁금해지고, 자꾸 마음이 끌리면 그때야 여행을 생각한다.
비로소 그곳에 직접 가서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음악을 대할 때도 비슷하다.
어떤 가수를 적당히 좋아하는 정도로는 십만 원이 넘는 돈을 주고 콘서트에 갈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 가수의 음악을 계속 들으며 좋아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무대에서는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몸짓으로 자신의 음악을 표현할까까지 궁금해진다.
그렇게 음악을 넘어 그 사람의 세계까지 알고 싶어질 때, 나는 비로소 콘서트장으로 향한다.

사람을 좋아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조금씩 알아가다가, 그 사람에게 호감이 생기고, 시간이 흐르면서 더 깊이 알고 싶어지면,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 알고 싶어진다.
단순히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넘어 그 사람의 내면에 들어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돌아보면 이 모든 것에는 공통점이 있다.
나는 단순히 피상적으로 많은 것을 경험하기보다 내가 끌린것을 제대로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좀 알게 된 뒤에는 더 깊이 알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야 비로소 더욱 다가간다는 것.

세상에는 낯선 것을 만나자마자 기꺼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풍경과 사람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레는 사람들.
반면 나는 문 앞에서 조금 오래 서성이는 편이다.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하고, 조심스럽게 들여다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마음이 움직인다.
이제는 저 문을 열고 싶다고.
그때 나는 비로소 문고리를 잡는다.

문을 연다는 것은 내게 꽤 큰 사건이다.
단순히 낯선 세계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를 내 안으로 받아들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나라의 문화가 내 생각의 일부가 되고, 음악이 내 감정의 일부가 되고, 한 사람이 내 삶의 일부가 되는 일.

그렇게 나는 나의 세계를 조금씩 넓혀간다.
나와 다른 세계를 깊이 이해하고, 때로는 그 세계에 나 자신을 내어주면서.

내가 원하는 것은 이렇​듯 단순히 수많은 경험이 아니라, 몇 번의 깊은 만남인지 모르겠다.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래 머무르는 것.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
그저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만나는 것.


내가 문을 연다는 것은 그렇게 하나의 세계와 온전한 내 존재가 깊이 어우러지고 스며드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