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대위에서(수술 당일)

나를 온전히 타인에게 맡기는 시간

by김지축


D-day
수술 전날 조무사가 내 머리를 양갈래로 따줬다. 수술모자에 딱 들어가게끔 머리카락이 수술에 방해되선 안되니까. 나는 수술받는 환자에 대한 특급 보살핌처럼 느껴져서 좋았다.


수술날이 밝았다. 아침부터 의료진은 부산하게 움직였다. 내가 1번 9시30분 수술환자였기 때문이다. 수술실로 가기전 유방초음파를 보며 수술 부위에 형광물질을 주입했다. 수술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절차라고 했다. 이어 핵의학과로 이동해 림프절 전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방사성 물질을 가슴에 주사했다. 이 주사가 가장 아팠다. 어쩌면 수술보다 더.

수술실로 향하는 복도에는 알코올성 소독약 특유의 냄새가 있었다. 그 냄새를 맡는 순간 정신이 또렷해졌다. 이제 수술이구나. 수술실 전실에 들어서자 서늘한 공기가 온몸을 긴장시켰다. 의료진은 저마다 내게 마지막 확인 질문을 던졌다. 정확성을 위해 같은 질문이 반복되었다.

고혈압이나 당뇨로 복용하는 약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최근 수술받은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암에 걸렸다는 사실만 빼면 나는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한 사람인 것을.

낯선 공간에서 나는 한없이 연약해진다. 의료진 앞에서는 어린아이가 된다. 그들이 묻는 말에 얌전히 대답하고, 시키는 대로 몸을 움직인다. 평소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하던 어른은 사라지고, 누군가에게 온전히 자신을 맡겨야 하는 어린아이만 남는다.

수술대 위에 누웠을 때 주치의가 마지막으로 등장했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엄마를 만난 어린아이처럼 서러움이 북받쳤다. 눈물이 차올랐다. 두려워서였을까. 안도해서였을까. 그 둘을 구별할 겨를도 없었다. 다만 그 순간 나는 몹시 어렸고, 몹시 약했다.

수술대 위에서 양팔을 대자로 벌렸다. 수술용 모자를 쓴 머리 위로 낯선 얼굴들이 오갔다. 이내 마스크가 씌워졌다.

"숨 크게 쉬세요."

마취과 의사의 말에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시야가 흐려졌다. 내가 나를 돌볼 수 없는 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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