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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 게이트가 강이준의 임시 출입증을 두 번 뱉어냈다.
세 번째에야 초록 불이 켜졌다. 카드에는 이름 대신 코드가 찍혀 있었다. INTERN-07. 태원홀딩스 27층, 그룹 전략실. 유리문 안쪽의 공기는 로비와 달랐다. 조용했고, 그 조용함이 소리보다 크게 사람을 눌렀다.
"체험형 인턴 두 분, 이쪽으로요."
인사팀 박소영 과장은 걸음이 빨랐다. 이준과 최민규는 반보 뒤에서 따라 걸었다. 민규가 속삭였다.
"야, 여기가 그 전략실이래. 회장님 보고서 만드는 데."
"목소리."
"어. 미안."
경영기획팀 구역 끝, 창문 없는 자리 두 개가 인턴들의 몫이었다. 박 과장은 좌석 배치도에 두 사람의 이름을 볼펜으로 적어 넣었다. 인쇄된 배치도에서 이름이 볼펜 글씨인 사람은 둘뿐이었다.
"평가는 팀 배정 과제하고 근태, 그리고 부서 의견으로 이뤄져요. 전환 여부는 그 셋이 정해요. 잘해봅시다."
전환. 그 두 글자에 민규의 어깨가 미세하게 굳는 것을 이준은 곁눈으로 보았다. 오태석 부장은 악수 대신 고개를 까딱했고, 김성재 대리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손만 들었다. 서른셋, 대리 4년 차. 이준의 사수라고 했다.
첫날 점심, 구내식당에서 이준은 밥보다 자리를 먼저 봤다.
창가 쪽 4인석은 부장들 자리였다. 아무 표지판도 없는데 아무도 앉지 않았다. 배식구에서 가까운 긴 테이블에는 대리와 사원 들이 시계 방향으로 채워 앉았고, 임원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임원 식당이 따로 있다고 민규가 어디서 주워듣고 왔다.
"야, 우리는 어디 앉냐."
민규가 식판을 든 채 물었다. 이준은 삼 초쯤 식당 전체를 훑고, 기둥 뒤의 이인석을 골랐다. 어느 흐름에도 걸리지 않는 자리였다.
"넌 그런 걸 어떻게 바로 아냐."
"보이잖아."
"안 보여, 보통은."
말의 내용보다 말이 오가는 방향을 보는 버릇은 어릴 때 생긴 것이었다. 아버지 없는 집의 아이는 어른들의 세계가 어디서 접히는지 일찍 배운다.
"강이준 씨? 이준 씨가 엑셀 좀 한다고 들었는데."
김성재가 처음으로 이준의 이름을 부른 건 출근 사흘째, 저녁 여섯 시 반이었다.
"목요일에 전무님 주재 계열사 실적 점검 회의가 있어. 각 사에서 온 자료 취합해서 보고용 패키지 만들어야 되거든. 내 폴더 공유해줄 테니까 오늘 중으로 정리해줘."
공유 폴더에는 파일이 마흔일곱 개 있었다. 계열사별 실적 자료, 버전이 다른 보고서 초안이 다섯 개, 회의록, 출장 정산서, 그리고 이준의 눈을 멈추게 한 파일 하나.
인턴평가_초안_대외비.xlsx
열어보지는 않았다. 열어보면 안 되는 파일이라는 건 파일명이 말해주고 있었다. 대신 메신저를 보냈다.
— 대리님, 폴더에 인사 관련 파일이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취합 대상에서 빼둘까요?
답은 오지 않았다. 김성재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여덟 시, 이준은 민규와 함께 편의점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웠다. 창밖으로 태원 사옥의 불 켜진 층들이 세로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난 여기 무조건 붙어야 돼."
민규가 나무젓가락을 반으로 가르며 말했다.
"동생 등록금이 내년에 두 번 나가. 아버지 가게는 작년에 접었고. 넌?"
"나도 붙어야지."
"넌 이유가 뭔데."
이준은 국물을 한 모금 넘기고 나서야 대답했다.
"어머니가 반찬가게 하셔. 김해에서. 그거면 이유가 되지 않냐."
"스터디 때 생각난다."
민규가 김이 서린 안경을 벗으며 말했다.
"너 그때 그랬잖아. 우리 같이 붙거나 같이 떨어지자고. 그래서 내가 물었지, 하나만 붙으면 어떡하냐고. 너 뭐랬는지 기억나냐?"
"기억 안 나는데."
"밥 사준댔어, 붙은 놈이. 평생."
"내가 그런 무서운 약속을 했다고?"
"했어. 컵라면 먹으면서. 지금이랑 똑같이."
두 사람은 웃었다. 웃고 나서 민규는 창밖의 불 켜진 층들을 좀 오래 올려다보았다.
아버지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준이 열 살 때 공장 사고로 죽었다. 산재라고 했고, 회사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하청업체였고, 어머니는 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방문을 닫았다. 이준이 아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아홉 시가 넘어 돌아온 김성재에게서는 옅은 술 냄새가 났다.
"뭐? 어, 그래. 알아서 해. 아 그리고 취합본, 파일 하나하나 열어보고 그러지 마. 시간 없어. 최종본은 v7이니까 그거 넣고, 폴더째 압축해서 배포 리스트에 올려놔. 발송은 내일 아침에 내가 해."
"버전이 여러 개라서요. 한 번만 확인해주시면……."
"이준 씨."
김성재가 의자를 반쯤 돌렸다. 웃고 있었는데 눈은 웃지 않았다.
"인턴이 확인을 왜 해. 확인은 내가 해. 이준 씨는 시키는 걸 하면 되는 거야. 그게 일이야."
이준은 알겠다고 했다. 밤 열한 시, 그는 v7이라는 이름이 붙은 파일을 패키지 맨 앞에 넣고, 인사 파일은 별도 폴더로 옮겨놓은 뒤, 그 사실을 메신저에 두 줄로 남겼다. 인사 파일 별도 분리했습니다. 최종본 v7 맨 앞에 배치했습니다. 읽음 표시는 끝내 뜨지 않았다. 그는 목에 건 임시 출입증 줄을 무심코 만지작거리다가, 그 습관이 언제 생겼는지 잠깐 생각했고, 답을 찾지 못한 채 막차를 탔다.
문제는 다음 날 아침에 터졌다.
"이거 누가 올렸어?"
오태석 부장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크지 않아서 사무실 전체가 들었다. 배포 리스트에 올라간 압축 파일 안에, 별도 폴더로 빼두었다는 인턴 평가 초안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보고서는 v7이 아니라, 숫자만 다른 v5가 맨 앞에 앉아 있었다.
이준은 자신의 어젯밤을 초 단위로 되감았다. 분명히 옮겼다. 분명히 v7이었다. 그러나 압축을 최종으로 걸어 리스트에 올린 시각은 오늘 아침 일곱 시 오십일 분이었고, 그 시각에 파일을 만진 계정이 누구인지 이준에게는 조회할 권한조차 없었다.
"김 대리. 이거 자네 라인에서 나간 거지."
김성재는 반 박자도 쉬지 않았다.
"아, 그게…… 어제 인턴이 취합을 했습니다. 제가 밤에 최종 확인을 했어야 했는데, 요즘 인수인계가 많아서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는 김성재가 했는데 문장의 주어는 인턴이었다. 사무실의 시선이 일제히 창문 없는 자리로 쏠렸다. 민규가 바카라상 밑에서 이준의 발을 툭 쳤다. 참으라는 뜻이었다.
이준은 일어서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메신저 창을 열어 어젯밤 열한 시 사십이 분의 문장을 다시 읽었다. 읽지 않은 메시지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없을까. 그는 화가 나기보다 그것이 궁금했고, 궁금해하는 자신이 조금 낯설었다. 말은 공중에서 사라지지만 기록은 자리에 남는다. 그 자리가 어디인지가 문제였다.
"강이준 씨."
박소영 과장이 어느새 파티션 옆에 서 있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잠깐 볼까요? 아, 그 배포 건은 회수 처리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사내 배포라 다행이지."
다행이라는 말이 끝나기 전에 오태석의 자리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부장은 수화기를 들었고, 네, 네, 두 번 대답하는 동안 얼굴에서 색이 빠져나갔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오태석이 사무실을 향해 말했다.
"회수 안 됐답니다. 목요일 회의 참석 임원들한테는…… 이미 나갔어."
에어컨 소리만 남은 사무실에서, 이준은 목에 건 임시 출입증을 내려다보았다. INTERN-07. 이름이 없는 사람은 바카라임의 이름을 붙이기에 가장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는 입사 나흘 만에 배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