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014. “우리 애가 공부를 안 해요"

진짜 상담가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by듀르크하임

안녕하세요! 교육학하는 컨설턴트 듀르크하임입니다.

며칠 전, '우리 애가 공부를 안 해요'라는 제목의 교육 만화를 보았습니다.

7살 아이가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부모에게 상담사가 "정상입니다"라고 답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어리둥절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대로 둬도 괜찮나 라는 걱정이 들었고, 그 겉으로만 재밌는 글에 많은 분들이 존중하는 댓글을 달아주시는 것이 한 편 속상했습니다. 교육상담을 진지하게 하고 계신 분들은 그렇게 함부로 일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불편했던 것은 '7살 아이가 공부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메시지가 아니었습니다.

어린아이에게 맞지 않는 학습량을 요구하고, 다른 아이와 비교하고, 바카라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는 시간을 성실함으로 착각하고, 부모의 불안을 아이에게 밀어 넣는 일은 분명히 조심해야 합니다.

7살 아이가 문제집을 싫어한다고 해서 곧바로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바카라상 앞에 오래 앉지 못한다고 해서 아이가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한글이나 연산에 아직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를 몰아붙일 이유도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를 진정시키는 말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제가 문제라고 느낀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전문 상담가의 역할이 마치 '정상입니다'라는 한마디를 해주는 것처럼 그려졌다는 점이었습니다.

상담은 그렇게 납작한 일이 아닙니다.

상담을 전문성 있게 하는 사람들은 부모의 말을 그렇게 대충 처리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우리 애가 공부를 안 해요"라고 말하면, 그 말에 곧장 답을 붙이지 않습니다. 먼저 그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듣습니다. 부모가 무엇과 비교하고 있는지, 어떤 기준으로 아이를 보고 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살핍니다. 그다음에야 답이 나옵니다. '정상입니다'라는 말이 필요한 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상담이 되려면, 그 전에 부모의 불안이 충분히 이해되어야 합니다.

"우리 애가 공부를 안 해요"라는 말에 진짜 상담사는 어떻게 대응할까요?

"정상입니다"라는 한마디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불안을 공감하고 기준을 확인한 뒤 선택할 수 있게 돕는 일입니다.



Q. 왜 전문 상담가는 '공부를 안 해요'라는 말에 바로 답하지 않을까요?

실제 상담 장면에서는 부모님들이 그렇게 단순하게 질문하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가 공부를 안 해요. 혼내야 하나요?"

이렇게만 말하지 않습니다.

대개는 조금 더 복잡하게 말합니다.

"주변 아이들은 벌써 한글도 읽는데 저희 아이는 관심이 없어요."

"바카라상에 앉히면 금방 도망가요."

"학습지를 시켜야 할까요?"

"지금 아무것도 안 시키면 늦는 건 아닐까요?"

"다른 아이들은 영어도 하고 연산도 한다는데, 저희 아이만 너무 놀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너무 예민한 걸까요?"

......


이 말들은 아이를 혼내달라는 요청이라기보다, 부모가 자기 불안을 꺼내놓는 방식입니다.

부모는 아이를 미워해서 상담실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대개는 불안해서 옵니다.

내 아이가 뒤처질까 봐, 내가 뭘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봐, 다른 부모들은 다 하고 있는데 나만 너무 느슨한 건 아닐까 봐.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중에 아이가 힘들어질까봐.

아이를 너무 밀어붙이고 싶지는 않지만, 그냥 두자니 불안해서 옵니다.

그러니 상담사가 들어야 할 것은 '아이가 공부를 안 한다'는 표면적인 문장이 아닙니다.

그 말 뒤에 있는 불안입니다.

비교의 불안. 늦을까 봐 두려운 마음.

초등학교 입학 전 어느 정도 준비해야 하는지 모르는 막막함.

놀이와 학습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모르는 혼란.

아이를 기다려야 하는지, 지금부터 습관을 만들어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태.

주변 정보에 흔들리면서도 자기 기준을 세우지 못한 마음.

부모의 말 안에는 이런 것들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여기에 곧바로 "정상입니다"라고 답하면 부모가 안심할 수 있을까요?

곧장 '아 여기도 또 내가 너무 과민반응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구나'라고 상담적 관계가, 라포가 곧장 깨져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부모가 실제로 들고 온 질문 속 불안은 그대로 남습니다.


지금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걸까.

어느 정도의 학습 경험은 필요한 걸까.

바카라상 앞에 앉는 경험은 만들어줘야 할까.

한글과 수 감각은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놀이와 학습의 균형은 어떻게 잡아야 할까.

아이의 거부는 어디까지 존중하고, 어디부터는 구조를 만들어줘야 할까.

부모는 이런 질문을 들고 상담실에 옵니다.


"정상입니다"라는 말은 때로 안심이 됩니다.

그러나 상담이 되려면, 그 말에 이르기 전 부모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함께 살펴야 합니다.

상담은 불안을 눌러 끄는 일이 아닙니다. 불안을 읽어내는 일입니다. 부모의 불안은 반박할 대상도, 그대로 키울 대상도 아닙니다. 상담 장면에서는 그 불안이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왜 이 부모는 지금 이 아이를 걱정하고 있을까. 무엇과 비교하고 있을까.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을까. 그 기준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 기준은 아이의 발달과 생활에 맞는 것일까. 상담은 여기서 시작해야 합니다.


전문 상담가는 부모를 혼내기 위해 앉아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부모의 불안을 웃어넘기기 위해 앉아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교육상담가를, 컨설턴트를 그딴식으로 묘사하는 것은 모욕적입니다. 부모의 말을 정확히 듣고, 그 말의 뿌리를 함께 찾아가고, 부모가 다음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우리 애가 공부를 안 해요"라고 말할 때, 상담사는 먼저 이렇게 들어야 합니다.

"주변 아이들에 비해 우리 아이가 학습에 관심이 적다고 느껴져서 불안하신 거군요."

이 말은 부모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부모의 걱정을 사실로 확정하지도 않습니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하지도 않고, 그런 걱정을 하지 말라고 밀어내지도 않습니다.

부모가 느끼는 불안을 정확히 돌려줍니다.

이것이 공감입니다.

공감은 "괜찮아요"라는 말과 다릅니다.

공감은 부모가 무엇 때문에 불안한지 정확히 볼 수 있게 해주는 말입니다.


Q. 진짜 상담은 부모의 불안을 어떤 과정으로 다룰까요?

많은 상담이론에서, 부모 상담의 중요한 흐름이 있다고 봅니다.

공감. 기준. 선택.

이 세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먼저 공감해야 합니다.

부모가 "우리 애가 공부를 안 해요"라고 말할 때, 상담사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 아이를 문제로 몰아가지 않습니다. 동시에 너무 빨리 부모를 안심시키는 데서 멈추지도 않습니다.

먼저 부모의 불안을 정확히 확인합니다.

"주변 아이들에 비해 우리 아이가 학습에 관심이 적다고 느껴져서 불안하신 거군요."

"초등학교 입학 전에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지 몰라서 걱정되시는 거군요."

"아이를 억지로 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그냥 두었다가 늦을까 봐 불안하신 거군요."

이렇게 말할 때 부모의 마음은 조금 정리됩니다.

상담자가 내 편을 들어줘서가 아닙니다.

내 불안을 정확히 알아들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신의 불안을 정확히 들었을 때 비로소 한 걸음 떨어져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아이를 미워해서 이러는 게 아니구나."

"내가 불안해서 아이를 자꾸 비교하고 있었구나."

"나는 아이가 공부를 안 한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초등학교 입학 전 기준을 몰라서 흔들리고 있었구나."

여기까지 와야 상담이 시작됩니다.

그다음에는 기준을 물어야 합니다.

공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불안한 이유는 대개 자기 기준이 흐릿하기 때문입니다. 기준이 흐릿하면 비교가 기준이 됩니다.

옆집 아이, 유치원 친구, 맘카페 글, 학습지 광고, 사교육 설명회, 친척의 한마디....

이것들이 부모의 기준을 대신합니다.

그래서 상담사는 물어야 합니다.

"네 어머님 걱정되실 수 있겠습니다. 그럼 어머님은 초등학교 입학 전 아이가 어느 정도까지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질문이 중요합니다.

부모가 자기 기준을 말해야 합니다. 한글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연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바카라상에 30분은 앉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학습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매일 정해진 공부 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다른 아이들보다 늦으면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공부에 관심이 적으면 학습 문제가 있다고 보는지, 이 기준이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기준이 말로 나오면, 부모는 자기 불안을 조금 떨어져서 볼 수 있습니다.

부모가 막연히 '공부를 안 한다'라고만 언급할 때, 실제로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본인도 모를 때가 많습니다.

어떤 부모는 아이가 한글을 못 읽는 것을 걱정합니다. 바카라상에 앉지 못하는 것을 걱정합니다. 공부 습관이 없는 것을 걱정합니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뒤처질까 봐 걱정합니다. 어떤 부모는 아이가 싫다고 할 때 어디까지 기다리고 어디부터 도와야 하는지 몰라서 걱정합니다. 이 걱정들은 모두 서로 다릅니다. 그러니 하나의 말로 덮을 수 없습니다. 상담은 부모의 불안을 없애주는 일이기보다, 부모가 자기 불안을 다룰 수 있게 돕는 일입니다. 그러려면 기준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상담사가 "정상입니다. 그냥 두세요."라고 끝내면 부모는 실제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금부터 공부시켜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부모의 불안을 다른 방향으로 밀어붙이는 일이 됩니다. 좋은 상담은 부모 대신 정답을 골라주는 과정이 아닙니다. 부모가 자기 기준을 조정한 뒤 선택할 수 있게 돕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이렇게 선택지를 정리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학습량을 늘리기보다 바카라과 말놀이 중심으로 갈 것인지

하루 10분 정도 짧은 앉아 있기 루틴만 만들 것인지

한글과 수 감각을 문제집이 아니라 놀이 안에서 다룰 것인지

학습지는 잠시 미루고 독서, 대화, 생활 습관을 먼저 볼 것인지

아이가 강하게 거부하는 영역과 잘 받아들이는 영역을 구분할 것인지

부모가 비교 정보를 줄이고 아이의 반응을 관찰할 것인지

이런 선택이 가능해야 합니다.


상식적으로 우리 모두 7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고강도의 공부가 아니라는 것은 다 압니다. 그렇다고 아무 기준도 없는 방치가 곧 답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아이에게는 발달에 맞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말을 주고받는 경험, 바카라을 접하는 경험, 수와 양을 생활 속에서 만나는 경험,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경험, 짧게라도 앉아보는 경험, 실패해도 다시 해보는 경험.... 이것들도 모두 '공부'입니다. 이것이 훗날 아이의 학습 정서의 밑바탕을 이루는, 부모로부터 배워야 하는 아비투스(Habitus)들입니다.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정상'이라는 판정 하나가 아닙니다.

내 아이에게 지금 필요한 경험이 무엇인지 판단할 기준입니다.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여유입니다.

제가 그 교육 만화의 장면을 보며 불편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이를 공부로 몰아붙이는 부모를 비판하는 일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전문 상담가의 일을 '정상입니다'라는 한마디로 그려내는 방식은 학부모들을 위로하고, 힘을 주고, 함께 교육의 여러 어려운 순간들을 결정해 나가는 교육실천가들이 힘 빠지게 만들어 버리는 장면입니다. 상담은 그렇게 대충 하는 일이 아닙니다.


전문성을 가지고 상담에 임하는 사람들은 부모의 말을 그렇게 가볍게 처리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말 한 문장 안에 담긴 불안, 비교, 기준, 기대, 두려움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아이에게 어떤 방식으로 전달되고 있는지 봅니다.

부모의 기준이 아이의 발달과 생활에 맞는지 함께 검토합니다.

부모가 당장 집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 정리합니다.

그 과정이 있어야 상담입니다.


진짜 상담자는 겉으로 표현된 말 앞에 멈추지 않습니다.

그 말 뒤에 있는 부모의 불안, 비교, 기준의 혼란, 선택의 어려움을 듣습니다.

그래야 비로소 진짜 상담이 시작됩니다.




본 글은 교육학하는 컨설턴트 듀르크하임, 컨설턴트 박태찬의 교육상담 기록과 해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글의 저작권은 컨설턴트 박태찬에게 있으며, 무단 전재, 복제, 재배포, 2차 가공 및 상업적 활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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