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내가 원하는 걸까, 아니면 남이 가졌으니 갖고 싶은 걸까?”
누군가의 좋은 소식 앞에서, 나는 종종 내 삶을 해명하고 싶어진다.
아무도 내게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지 않았는데, 혼자 대답을 준비한다. 나도 나름대로 애쓰고 있다고. 아직 결과가 없을 뿐이라고. 축하할 소식을 듣고도 왜 내 사정부터 설명하고 싶어지는지 모르겠다.
배우를 꿈꾸며 다른 배우들의 소식을 접할 때도 그렇다. 작품에 출연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보면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궁금하다. 그 기회를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준비와 기다림이 있었을지도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의 소식보다 내 상황을 더 오래 들여다보고 있다. 나는 요즘 무엇을 하고 있는지, 준비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소식을 알기 전까지는 오늘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는데, 알고 난 뒤에는 그 일이 충분한지부터 의심하게 된다.
그 사람의 성취는 그 사람의 것인데, 나는 왜 그 앞에서 내 삶을 설명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처음에는 단순한 부러움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 그런 감정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누군가의 삶을 보고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는 일은 때로 사람을 움직이게 하니까.
하지만 부러움은 쉽게 다른 감정으로 바뀐다.저 사람은 벌써 저만큼 왔는데. 나는 아직 여기인데.
그때부터 비교는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일을 넘어, 그 사람을 통해 나 자신을 평가하는 일이 된다. 조금 전까지 나름대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일이 갑자기 부족해 보이고, 스스로 선택한 길마저 의심하게 된다.
그 사람의 삶에서 무언가가 더해졌을 뿐인데, 내 삶에서는 무언가가 빠져나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생각해 보면 나는 한 사람만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누군가의 안정적인 온라인 게임, 다른 누군가의 자유로운 생활, 또 다른 누군가의 성공을 부러워한다. 그리고 그 좋은 것들을 한데 모아 내가 살아야 할 삶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렇게 만든 기준에는 한 사람이 실제로 살아가는 하루가 없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얻은 결과만 있다. 그런데도 나는 그 모두를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내 삶을 부족하다고 여긴다.
물론 비교가 필요할 때도 있다. 나보다 앞서가는 사람에게 배울 수 있고, 내 준비가 부족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도 있다. 다른 배우의 연기를 보며 내가 놓쳤던 표현을 발견하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다만 더 잘하고 싶어지는 것과 지금의 내가 싫어지는 것은 다르다.
나는 그 둘을 자주 혼동한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것을 의욕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무엇을 더 연습할지는 떠오르지 않고, 이 나이까지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만 반복될 때도 있다. 그럴 때의 나는 앞으로 할 일을 찾기보다 지나온 시간을 탓하는 데 더 많은 힘을 쓰고 있다.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 노력을 이끌기도 한다. 그러나 누군가를 따라잡는 것이 목표라면, 그 사람을 따라잡은 뒤에도 또 다른 누군가가 나타날 것이다. 바라던 기회를 얻고 나서도 더 큰 기회를 얻은 사람을 보며 같은 마음을 느낄지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 내가 이룬 것을 기뻐할 수 있을까.
같은 길을 걷는 누군가가 기회를 얻었다는 소식은 여전히 내게 희망이다. 나에게도 그런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믿고 싶어진다. 동시에 그 기회가 아직 내게 오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가라앉기도 한다.
나는 어느 한쪽을 없는 마음인 척하고 싶지 않다. 진심으로 축하하면서도 부러울 수 있다. 그 사람의 노력을 인정하면서도 내게는 언제 기회가 올지 궁금할 수 있다.
다만 그 마음 때문에 다른 사람의 성취를 깎아내리거나, 나의 하루를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고 싶지는 않다. 그 사람이 얻은 결과만으로 내가 해온 연습과 선택의 가치를 정할 수는 없으니까.
우리는 특히 같은 나이의 사람에게 쉽게 흔들린다.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것을 이루어야 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누군가는 일찍 자신의 길을 찾았고, 누군가는 여러 번 방향을 바꾸었다. 선택할 기회가 많았던 사람도, 당장의 현실을 감당해야 했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차이를 모두 알지 못하면서, 우리는 나이 하나로 서로를 나란히 세운다. 정작 같은 곳을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안정적인 온라인 게임을 가진 사람이 부럽다고 해서 내가 그 일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부럽다고 해서 그 사람이 감당하는 생활까지 원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 사람이 얻은 것은 갖고 싶어 하면서, 그가 포기한 것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는 자주 묻지 않았다. 그 질문을 하고 나면 부러움 속에 섞여 있던 다른 마음이 보인다.
나는 정말 그 사람처럼 살고 싶은 걸까.
아니면 그 사람처럼 잘 살고 있다는 확신을 얻고 싶은 걸까.
나는 두 번째 질문에 더 많은 시간을 써왔다.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싶었고, 내가 선택한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어떤 하루를 보내고 싶은지보다 내 하루를 남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더 오래 고민했다.
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과, 배우로 인정받아 나를 증명하고 싶은 마음도 내 안에 함께 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자체를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것만 남는다면,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싶었는지는 점점 희미해질 것 같다.
나는 사람이기에 앞으로도 누군가의 좋은 소식에 부러워하고 조급해질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의 본능이라면 응당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한 가지는 구분하고 싶다.
그 사람이 이룬 것을 나도 원하는지, 아니면 그 사람이 이루었다는 이유로 나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저마다 다른 삶을 산다는 말이 아무것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선택에는 시기가 있고, 어떤 기회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늦게 시작한 만큼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다만 서둘러야 한다면 무엇을 위해 서두르는지는 알고 싶을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늦었다는 이유만으로 달리기 시작하면, 어디에 도착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오래 달리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