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고리

관계는 직선이 아니라 원이다.

※ 상처와 치유, 이별과 만남, 두려움과 신뢰가 서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둥근 순환을 이루며 우리를 성장시킨다는 관점을 담았습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는 날이 있다.

마음을 다 내어준 만큼 깊이 베이고, 믿었던 만큼 오래 아프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씩 마음의 문을 닫는다. 상처는 다시는 같은 아픔을 반복하지 말라는 생존의 지혜이기도 하다. 그렇게 사람은 관계를 줄이고, 거리를 배우며, 혼자 있는 법을 익혀 간다.

하지만 삶은 참 아이러니하다.

사람을 피해 걷던 길 끝에서 또 다른 사람을 만나게 한다.

처음에는 조심스럽다. 다시는 다치고 싶지 않아 마음을 반쯤만 내어놓는다. 상대도 그렇다. 서로의 상처를 숨긴 채 괜찮은 사람인 척 웃는다. 그러다 어느 날,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한 사람이 자신의 슬픔을 먼저 내려놓는다.


"사실은 많이 힘들었어요."


그 한마디는 놀랍게도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조용히 연다.

인간은 완벽해서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하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한다. 흉터는 부끄러운 흔적이 아니라, 같은 아픔을 알아보는 언어가 된다. 그래서 상처 입은 사람끼리는 서로를 쉽게 알아본다. 설명하지 않아도 침묵을 읽고, 눈빛만으로도 마음을 이해한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인간은 타인의 얼굴 앞에서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발견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이렇게 이해하고 싶다.

사람은 혼자서는 끝내 자기 마음을 치유하지 못한다는 것.

누군가의 따뜻한 시선이 나를 다시 사람답게 만들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줄 때 비로소 삶은 제자리를 찾는다는 것.

생각해 보면 관계는 직선이 아니었다.

만나고, 상처받고, 멀어지고, 다시 만나고,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둥근 원이었다. 끝났다고 생각한 자리에서 또 다른 시작이 피어나고, 잃어버렸다고 믿었던 신뢰는 전혀 다른 사람을 통해 다시 찾아온다.

그래서 인연은 경쟁하지 않는다.


먼저 온 인연도, 늦게 온 인연도 모두 삶이 필요한 때에 건네는 선물이다.

상처를 준 사람 또한 나를 성장하게 했고, 치유해 준 사람은 그 성장을 따뜻하게 완성해 주었다. 그러니 어느 누구도 내 삶에서 불필요한 사람은 아니었다.

돌아보면 삶은 직선보다 원에 가까웠다.

계절이 돌고, 꽃이 다시 피고, 해가 저물어도 아침이 찾아오듯 사람의 마음도 그렇게 원을 그리며 제자리로 돌아온다. 사랑도, 용서도, 위로도 모두 둥글게 흐른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사람에게 상처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을.

내가 살아온 시간은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

한 사람 때문에 무너졌던 마음은 결국 또 다른 한 사람 덕분에 다시 일어섰고, 누군가의 다정한 한마디는 오래된 상처의 결을 조금씩 부드럽게 만들었다.

결국 삶은 사람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완성된다.

우리가 서로의 삶을 스쳐 지나가는 이유는 상처를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젠가 그 상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사람을 믿기로 한다.

혹여 다시 아프더라도 마음을 닫기보다는 조금 더 천천히 열어 보기로 한다.

세상은 생각보다 차갑지만, 그 차가움을 녹이는 일 역시 언제나 사람의 몫이었다.

상처도 사람에게서 왔지만, 치유 또한 사람에게서 왔다.


그것이 삶이 오래도록 이어 온 가장 아름답고도 둥근 관계의 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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