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결국 사람에게 닿는다


"나... 너무 많이 힘들었어. 누구한테도 말하지 못했어. 엄마는 아프시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막막했어."…


아이가 엄마에게 투정부리듯 그런 그녀의 모습을 난 가만히 눈빛으로 다가가 끌어 안았다. 그녀는 수줍게 웃다가 끝내 울음을 삼켰다.

언제나 단단한 나무껍질처럼 보이던 사람이었다. 빈틈이라곤 없어 보였고, 웬만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날, 그녀의 눈동자에는 오래 참아온 계절이 고여 있었다. 사람은 울 때 가장 어린 얼굴을 한다는 말을 그제야 알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위로는 종종 말보다 늦게 도착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말 대신 눈빛을 건네고, 눈빛 대신 침묵을 나누었다. 이상하게도 그 침묵은 어떤 위로의 문장보다 따뜻했다. 서로의 슬픔을 해결해 줄 수는 없어도, 잠시 함께 들어줄 수는 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날 배웠다.


부모의 병환은 자식도 함께 늙게 만든다.

병든 것은 몸 하나인데, 아픈 마음은 온 가족에게 번져 간다. 부모를 돌보는 사람은 어느 순간 자식이기를 멈추고 부모가 된다. 그 시간을 견뎌낸 사람만이 가진 고요한 피로가 그녀의 어깨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내 친정어머니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조금은 까칠하게만 느껴졌던 말투도, 고집도, 결국은 살아온 세월이 남긴 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아계실 때 더 다정해야 한다는 사실은 늘 알고 있었지만, 사람은 누군가의 눈물을 보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사랑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종종 한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안부를 묻고, 건강을 걱정하고,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미 했던 이야기가 또 나오고, 며칠 전 했던 말이 다시 이어지기도 했다. 마치 소가 여물을 오래도록 되새김질하듯 그녀는 삶을 다시 꺼내 들었다.

신기하게도 나는 한 번도 지루하지 않았다.

사람은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마음을 확인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기억은 흐려져도 마음은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반백 년을 살아오면서 나는 관계를 정리하는 법부터 배웠다.

상처를 덜 받기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누구에게나 친절할 수는 있어도 누구에게나 마음을 내어줄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녀에게만은 이상하게 거리를 좁히고 싶었다.

더 오래 듣고 싶었고, 더 많이 알고 싶었다. 그녀의 기쁨에 함께 웃고, 분노에 함께 화를 내고, 말없이 흘러가는 시간조차 아깝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다른 집에서 자랐지만, 같은 계절을 품은 사람들이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의 온도도 닮았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방향도 비슷했다. 옷을 고르는 취향도, 작은 것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감각도 그랬다. 사람은 생각보다 닮은 취향으로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닮은 온도로 오래 머문다.

나보다 열 살쯤 많은 그녀는 어느새 잃어버렸던 쌍둥이 언니처럼 내 삶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서 지혜를 배우고 싶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녀 또한 나를 통해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고 있었다.

"당신을 만나고 다시 용기를 냈어요."

그녀가 울먹이며 건넨 그 한마디는 오래도록 내 마음에 머물렀다.


나 역시 그 만남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살아오며 약점이라 여겼던 나의 예민함과 깊은 감정은, 그녀를 만나면서 누군가를 이해하는 힘이 되었다. 상처라고 믿었던 것이 누군가를 품는 능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철학자들은 인간을 관계의 존재라고 말한다.

혼자서는 끝내 자신을 다 알 수 없고, 누군가를 만나야만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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