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씨를 품고
바람이 불어온다. 얼굴을 돌리고 멈춰 돌아선다.
가시 날개를 뽑아 세울 듯이. 등을 넓게 펼치고 바람을 튕겨낸다.
알 수 없는 곳에서 시작되었을 바람은 이제야 여기를 갈라지고 버성기게 한다.
힘겨운 해맑음으로 만들어낸 따뜻한 일렁임도.
그들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각자의 껍데기 속으로 흩어졌다.
내가 그 바람이다. 내가 모두를 움츠려 들게 만들었다.
재수생이 된 내가 하루동안 집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현저히 적었다. 하지만 수능날에 내가 만들어 던져 놓은 큰 불씨는 집안의 공기를 점점 더 메마르게 했다. 거칠고 각박한 기운을 풀어내려는 노력은 소용없었다.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에 나를 배려하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미술을 전공하겠다는 내 주장을 아빠는 몹시 불편해했다. 그와 달리,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미술학원에 데려다 넣었다. 더 좋은, 더 높은 대학에 들어가라는 말과 함께. 내가 미술 학원에 다니는 사실마저 아빠는 최선을 다해 모르는 척해주었다. 때론 나를 모르는 사람처럼 대해 주었다. 부모님에게서 퍼져 나오는 공기의 흐름이 많이 달라졌다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잔뜩 갈라져버린 부모님의 마음은 되돌릴 수 없었다. 부모님의 마음을 똑바로 쳐다볼 용기도 없었다. 부모로서 자식에 대한 실망감이 컸던 걸까. 인간으로서 인간에 대한 용서가 힘들었던 걸까.
부모의 허락 없이 내 멋대로 재수와 미술전공을 선택했다는 사실, 그것이 나의 가장 큰 잘못임은 먼 훗날 알게 된다. 그 후로도 계속된 내 멋대로의 선택들, 나의 눈치 없는 잘못들은 되풀이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행동했다. 그러다 보니 정말 아무렇지 않아 졌다. 빈틈없이 나를 뒤쫓아오던 시선도, 졸라매던 올무도 느껴지지 않는다. 끝이 보이지 않는 넓고 낯선 벌판 한가운데에 뚝 떨어진듯한 묘한 시원함과 쾌적함을 느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내 안에 꽉 덮이고 구석진 곳 샅샅이 환기되었다. 묵혀있던 먼지들이 다 털려나갔다. 엉겨 붙어 지저분한 것들도 말끔히 쓸려나갔다. 눅눅하게 눌어붙어있던 나는 평야의 바람을 맞고, 작은 불씨가 싸그리 번지고 나서야 정리되었다. 오히려 가볍고 깔끔해졌다. 다시 시작한다.
집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싶다던 상상이 이루어졌다. 투명 인간이 된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며 내 멋대로 재수생이 되었다는 죄바카라감도 무뎌졌다. 오히려 자유로워졌다. 아빠의 표현대로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오만하고 뻔뻔해졌다. 내가 만들어 낸 실패라서일까? 갑자기 변한 상황과 새로운 환경이었지만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 적응했다. 물론 내년의 합격이나 만족할 수능 점수가 보장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화실을 오갈 수 있다는 것 자체는 행복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은 날 들뜨게 만들었다. 날아다니는 투명 인간처럼 원하는 곳 어디든 오갈 수 있는 시간을 만끽했다. 엄청난 초능력을 가진 것 같았다.
난생처음 쇼트커트를 했다. 원하던 스타일도 아니었고, 계획한 것도 아니었다. 긴 머리가 무겁고 답답했을 뿐이다. 이발이 완성될 때쯤, 무슨 운동하냐는 질문의 의미를 뒤늦게 알아챘다. 안경을 똑바로 쓰고 미용실 거울로 바라본 내 모습에 사실 좀 많이 놀랐다. 하지만 이미 잘려버린 머리카락, 시간이 지나면 또 자라날 머리털. 머리 길이가 이렇든 저렇든 외모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말도 안 되게 짧은 머리를 하고 나타난 나를 보고 엄마는 아빠에게 혼날 각오를 단단히 해두라고 일렀다. 예상은 했다.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해야 했던 짧은 단발머리도 아빠는 싫어하셨다. 중학교 시절을 제외한 모든 시절에 내 머리길이는 어깨보다 길게 유지해야 했다. 심지어 사십이 넘은 지금까지도 머리를 좀 짧게 잘라내면 아빠에게 잔소리를 듣는다. 여성성의 상징이자, 부모가 주신 신체의 일부라며 너무 많이 잘라내지 말라는 지침 같은 것이다. 그런 중요한 머리칼을 스무 살의 나는 아무런 예고 없이 몽땅 잘라 버린 거다.
어째서인지 엄마의 경고에도 두렵지 않았다. 낯선 머리를 한 나를 보고 나도 한동안 놀라긴 했다. 이미 저질러진 일이다. 오히려 길게 엉켜버린 머리카락 때문에 힘쓰지 못하고 갑갑하게 갇혀있다가 헤어 나온 기분이었다. 어느 때보다 개운해졌다. 모든 것이 명쾌하고 간단해졌다. 편리해졌다. 무엇보다도 내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더 신났다.
짧게 잘라버린 머리가 아빠에겐 큰 충격이었을까? 뉴스에서 볼 수 있는 삭발 투혼과 비슷 해보인 걸까. 객기처럼 보였을까. 아빠는 오랜만에 나를 꿇어 앉혔다. 여자에게 좋은 대학은 무조건 여자 대학이라는 말과 함께 미대준비를 허락한다는 공고를 내렸다.
“엄마, 미술 학원 선생님이 나 그림 엄청 잘 그린대. 왜 진작 미술학원 안 왔냐고 묻던데?”
“또 순진한 소리 한다. 그럼 이제 배우는 애한테 잘한다 그러지, 못한다고 하겠니? 배운 지 얼마나 됐다고… 그냥 열심히 하라고 그런 말해주는 거지.”
“... 나 정말로 좀 잘 그리는 거 같은데...”
미술 학원 선생님들은 단번에 이해하고 제법 잘 그려내는 나를 신기해하셨다. 대학에 쉽게 가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재수생이라는 누명은 벗겨졌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어 가르치기에 빠듯했던 재수생은 단시간에 기존의 입시생들과 비슷한 수준에 도달했다. 미술학원 선생님들에게 ‘혹시 친인척 중에 그림 그리는 사람이 있느냐’는 영광스러운 질문까지 듣게 되었다. 아니라고 대답하는 나 자신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내 그림을 보고 놀라워하는 다른 이들의 반응은 나를 더 들떠오르게 했다. 같은 화실원생들 사이에서는 원래 미대를 준비하려다 포기했던 애라는 추측까지 나왔다. 그림을 그리기 위한 눈썰미가 좋은 편이다. 색감과 구도 감각이 타고났다는 반복된 칭찬을 어느새인가 수줍게 받아들였다. 처음 느껴보는 화실 사람들의 눈빛과 관심이 싫지만은 않았다.
입시 미술을 배우고 4개월여 만에 어떠한 대학교에서 주최한 실기 대회에서 혼자 입상하는 놀라운 결과까지 얻어냈다. 적게는 5시간, 많게는 12시간씩 매일 그림을 그리고 완성할 때마다 온전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림에 대해 생각하고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지며 고3 때처럼 멍하게, 우울하게 흘려보내지 않았다. 동시에 아무렇지 않은 보통의 시간들이 많아졌다. 즐겁고 신나는 순간들은 훨씬 빈번해졌다.
창문크기만 한 그림을 코 앞에 두고 그리다 보면 전체적인 균형을 놓칠 수 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다가 적절한 때가 되면 일어서서 살짝 뒤로 나와 살핀다. 지난 시간만에 다른 친구들의 그림 진행 속도를 확인하고, 내 그림과 피사체를 좀 더 명확한 눈으로 본다. 내가 만들어낸 틀 안에 매몰되지 않게 한 발 뒤로 물러나와 객관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나에게도 그림을 보고 판단하는 관점은 생겼고 자연스레 목표가 생겼다.
오늘 선생님에게 지적받은 부분은 잘 기억해 놓고 내일은 보완하며 더 잘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스스로 보기에도 정말 그럴듯한 미대 지망생이 되었다. 나 자신이 마음에 든다. 그림에 소질 있다고 말씀해 주시는 선생님의 말을 온전히 믿기 시작했다. 내 그림을 실제로 본 적 없는 엄마의 말을 너무 마음에 담지 않아도 된다.
이유 없이, 목표 없이 공부해야 할 때와는 전혀 다른 내가 되었다. 공부의 과정은 점수나 등수 같은 숫자로만 확인받을 수 있다. 매번 바뀌지 않던 공부의 결과와는 달리, 그림은 집중하는 시간을 들이고 신경 쓰는 만큼 성장한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했다. 이전 그림과 비교하며 늘어가는 그림 실력을 똑똑히 보았다. 내 능력을, 나 자신을 믿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 또한 정답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나를 되돌아보더라도 나를 의심하지 않았다.
드디어 내가 어색하지 않게 서있을 수 있는 곳을 찾아냈다. 제법 잘 해내고 있다는 생각과 앞으로 더 잘 해낼 수 있다는 생각들로 채워졌다. 게다가 오늘 같은 하루를 내일 또 보낼 수 있음은 이미 행복이었다. 내일이 바로 기다려졌다. 내 안의 공간이 넉넉해졌고, 임의롭게 움직이는 나를 발견했다.
흐릿하게 사라지고만 싶던 나는 점점 진해졌다. 또렷해졌다.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던 시절, 나는 정말 나를 처음으로 보았다. 고도 근시와 심한 난시로 초등학교 3학년부터 안경을 끼고 살아왔기에 안경없는 내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궁금하지도 않았고, 볼 수도 없었다. 디지털카메라나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내 타고난 모습을 가족들의 눈과 평가로 알 수밖에 없었다.
사물을 굴절 없이 정확하게 보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원장 선생님의 추천으로 렌즈를 쓴 첫날, 스무 살의 따뜻한 어느 날, 나의 가장 큰 흠이었던 안경이 없어졌다. 거울 속에 나와 처음 마주쳤다. 아주 많이 달랐다. 새로워진 나를 마주하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정지된 얼굴이 아닌 살짝살짝 움직이는 얼굴, 그 위에 흐르는 실제 시간을 보았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표정들을 보았다. 엄마가 말해주던 아쉬운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늘 듣기만 하고 상상해 오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다지 부족해 보이지 않았다. 제법 괜찮아 보였다. 마음에 들었다.
세상이 나를 위해 돌아가고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노랫말의 뜻을 드디어 알았다. 축축함을 말리기 위해 위험한 불씨를 만들어도 된다. 기분 좋은 뽀송함을 위해서 내가 바람이 될 수도 있다. 축하하고 응원해야 한다면 어여쁜 꽃잎들 사이로 내가 뛰어들어 함께 날아다니면 된다. 다른 누군가의 허락과 생각에만 의지할 필요가 없다. 어른들의 말을 너무 듣고 명심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나를 판단하고 원하는 대로 만들어 가면 된다. 내가 만족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