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데이트는 끝났지만, 우리의 희소성은 지금부터다
‘빈티지’라는 말은
원래 포도 수확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특정한 해에 만들어진
와인을 뜻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 오래된 물건과
그것이 가진 고유한 멋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런데 빈티지가 과연
단순히 ‘오래된 것’만을 뜻하는 것일까?
그저 오래됐다고
가치가 생기는 건 아니지 않은가.
시간을 견디며 자기만의 색과 흔적을 갖게 된 것,
다시 똑같이 만들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빈티지다.
새것은 오늘의 새로움을 담고
빈티지는 세월의 이야기를 담는다.
새것에는 사용설명서가 붙어 있지만,
빈티지에는 사용 흔적이 붙어 있다.
조금 닳고, 조금 바래고,
조금은 흠집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눈이 가고, 자꾸 손이 가고,
보면 볼수록 마음이 간다.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젊을 때는 최신 버전이 되려고 애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쉼 없이 달린다.
그러다 어느 날,
업데이트(를)가 멈춘다.
“이제 현역에서 떠날 시간입니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럽다.
이건 마치 단종 통보와 비슷하지 않은가.
아니, A/S까지 끝난 건가?
하지만 시선을 조금 바꿔보자.
우리는 단종된 것이 아니다.
빈티지가 된 것이다.
오랜 시간 현장에서 충분히 사용되었고,
수많은 시행착오와 오류를 거쳤으며,
쉽게 복제할 수 없는 경험과
이야기를 갖게 된 사람들이다.
최신 버전은 더 빠르고
새로운 기능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빈티지에는
매뉴얼에 없는 사용법과,
짬밥 좀 먹어야 쌓이는 노하우가 있다.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무엇이 중한지,
그리고 때로는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지도 안다.
이것들은 매뉴얼에 없다.
오직 살아봐야 배우는 것들이다.
그러니 은퇴는 단순히
현역에서 내려오는 일이 아니다.
이제까지 쌓아온 것을
다른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는 생산량보다 희소성이 중요하고,
속도보다 깊이가 중요하다.
얼마나 많이 일했느냐보다
무엇을 남겼느냐가 중요해진다.
그러니 은퇴자여,
현실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자.
현역 생산은 끝났을지 몰라도
폐기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제부터
소장 가치가 생기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오래될수록 가치가 생기는 것들이 있다.
와인도 그렇고,
가죽도 그렇고,
좋은 사람도 그렇다.
그리고
세월을 함께 견딘 사랑도 그렇다.
그러니 오늘 우리는
은퇴하는 것이 아니다.
잠시 생산을 멈추고,
새로운 용도를 찾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은퇴한 세대가 아니라,
이제 막 빈티지의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한 '신(辛)세대'다.
신(辛): 매울 신.
신(辛)세대란,
세월의 매운맛을 제대로 맛본 세대다.
웬만한 인생의 고춧가루에는
눈물도 나지 않는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이
굳은살처럼 배어 있고,
이제는 매운맛 뒤에 무엇이 오는지도 안다.
맵게 살아왔지만, 그만큼 깊어진 세대.
그것이 바로 신(辛)세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