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왜 아름다워지는가

by슈펭 Super Peng

시간은 참 짓궂고도 다정하다.
한창 아플 때는 숨이 막히도록 더디게 흘러서 사람을 바짝 말려놓더니, 막상 지나고 나면 가장 날카로운 통증만 슬쩍 걷어낸 채 말간 추억의 형태로 손에 쥐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밤새 울며 버텼던 날들을 이상하게 그리워하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이를 악물던 그 막막한 시절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미소 짓곤 한다.
기억은 결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관하지 않는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긍정적 재평가(positive reappraisal)'라고 부른다.

우리의 뇌는 과거의 경험을 고정된 파일처럼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꺼낼 때마다 현재의 감정과 맥락에 맞게 조금씩 다시 쓴다. 마치 오래된 사진을 볼 때마다 미세하게 다른 장면이 눈에 들어오듯,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요란했던 감정의 소란을 조용히 걸러내고 우리가 간직하고 싶은 것들만 천천히 가라앉혀 둔다.
그러니 어쩌면 지나온 날들이 이토록 아름다워 보이는 건, 그 시절의 풍경이 유독 찬란해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 길고 시린 시간을 기어이 버텨내고 여기까지 살아남았기 때문에, 뒤돌아본 풍경이 비로소 그렇게 빛나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철학자 폴 리쾨르는 기억을 '과거를 현재로 불러오는 행위'라고 했다. 기억은 단순한 재생이 아니라 해석이다. 우리는 과거를 있었던 그대로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형태로 재구성하여 데려온다. 그것이 때로는 자기 보호이고, 때로는 성장의 증거이며, 때로는 살아가기 위한 조용한 위로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어떤 기억이 유독 아름답게 느껴질 때, 그것은 그 시절이 특별히 좋았다는 뜻이 아닐 수도 있다고. 오히려 그 시절을 지나온 지금의 내가, 그만큼 단단해졌다는 뜻일지도 모른다고. 기억의 아름다움은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현재의 나 안에 있다.


잔상으로 남은 사람
사람이 떠나고 나면 그 존재는 시야에서 사라지지만, 그가 남긴 잔상은 좀처럼 흐려지지 않는다.
문득 길을 걷다 스쳐 지나가는 낯선 향기에서, 익숙한 말투를 닮은 누군가의 목소리에서, 혹은 계절마다 흘러나오는 노래 한 구절에서 불쑥 그 잔상이 고개를 든다. 그 사람은 이미 오래전에 내 삶의 궤도 밖으로 멀어졌는데, 마음은 여전히 아주 작은 흔적도 기어이 알아채고 만다.
신경과학자들은 이것을 '연합 기억(associative memory)'으로 설명한다. 우리의 뇌는 어떤 사람과 함께했던 감각들

냄새, 소리, 온도, 빛의 결을 그 사람에 대한 기억과 단단히 묶어두기 때문에, 그 감각이 다시 나타날 때마다 기억도 함께 소환된다. 떠난 사람이 여전히 일상의 틈틈이 스며드는 것은 미련의 문제가 아니라, 뇌가 한번 새겨둔 연결을 쉽게 지우지 못하는 탓이다.
어쩌면 우리는 사람이라는 형태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맞닿았던 순간의 온도를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는 형체는 사라져도 그 온기는 마음 어딘가에 눌어붙어 좀처럼 지워지지 않으니까.
애착이론을 정립한 존 볼비는 한 번 깊이 연결된 존재는 내면의 표상으로 남아 관계가 끝난 후에도 우리의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사랑했던 사람은 떠난 뒤에도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안에 조용히 남는다. 그가 자주 쓰던 말투, 그가 좋아하던 것들, 그와 함께 웃었던 기억이 나도 모르게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내 곁에 없어도 내 공간에 가장 오래 머문다. 해가 지평선 너머로 저문 뒤에도 한동안 하늘 가장자리를 붉게 물들이는 노을처럼, 눈앞에 없어도 그 빛은 한동안 남는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떠난 사람을 오래 기억한다는 것은 어쩌면 약함이 아니다. 그만큼 깊이 연결되었다는 것이고, 그 연결이 나를 지금의 내가 되게 했다는 것이다. 잔상이 오래 남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당신의 삶에 진짜로 머물다 갔다는 가장 솔직한 증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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