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지 말았어야 했다.

by글라라

미영은 그날따라 유난히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켜켜이 쌓인 피로 때문인지 이불속에서 한참을 망설인 뒤에야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매일 나가는 새벽 우유 배달인데도 이상하게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아직 햇빛이 들지 않은 단칸방에는 눅눅한 새벽 공기가 내려앉아 있었다. 여덟 살 해나와 더 어린 별이는 얇은 이불을 나눠 덮은 채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해나는 잠결에도 동생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미영은 비어 있는 남편의 자리를 돌아보았다.

한길은 해외 건설 현장에서 일하기 위해 한 달 전 출국했다. 결혼한 뒤에도 일정한 온라인 게임 없이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을 마시는 날이 많았던 사람이었다. 그런 한길이 어느 날부터 달라졌다. 자신이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며 일자리를 찾아다녔고, 마침내 몇 년 동안 해외 건설 현장에서 일하기로 마음을 먹고 미영과 아이들 곁을 잠시 떨어져 지내기로 했다.

미영은 처음에는 한길의 변화를 믿기 어려웠다. 떠나는 날까지도 정말 일을 하러 가는 것이 맞느냐고 몇 번이나 확인했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달라지려는 남편의 마음을 믿어보고 싶었다.

미영은 두 손을 모았다.

‘그 사람,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무사히 돌아오게 해 주세요.’

그리고 잠든 아이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덧붙였다.

‘우리도 이제 이 단칸방에서 나갈 수 있겠지.’

그 작은 희망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곤하다고 계속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오늘 배달할 우유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 우유가 쌀이 되고 아이들의 학용품이 될 터였다.

겉옷을 걸치고 문을 나서려던 미영은 다시 아이들 곁으로 돌아왔다. 해나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다녀올게. 해나야, 별이 잘 보고 있어.”

잠결에 엄마의 목소리를 들은 해나는 대답 대신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별이 쪽으로 조금 더 몸을 붙인 채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미영은 문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

아이들을 깨워 옆집 미영의 남동생에게 부탁해야 하나, 미영은 평소보다 집을 나서는 시간이 조금 일러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 새벽에 매번 아이들을 맡기는 것도 미안했다.

금방 다녀오면 된다고 마음을 다잡은 미영은 방문을 조심스럽게 닫았다. 서두르면서도 아이들이 깰까 봐 문고리를 끝까지 붙잡고 소리가 나지 않게 놓았다.

골목에 세워둔 자전거 짐칸에는 우유팩이 가득했다. 미영은 우유가 하나라도 터질까 조심스럽게 자전거를 끌고 골목을 빠져나왔다.

밤사이 제법 많은 비가 내렸는지 길이 온통 젖어 있었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젖은 아스팔트 위에서 길게 흔들렸다. 움푹 팬 곳마다 빗물이 고여 작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사람도 자동차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고요하고 여유롭게 느껴졌을 새벽길이 그날은 이상하리만큼 쓸쓸했다.

미영은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해나를 생각했다. 며칠 전부터 해나는 피아노 학원에 보내달라고 졸랐다.

“엄마, 은지도 피아노 배운대. 나도 배우면 안 돼?”

“피아노가 장난감인 줄 알아? 학원비가 얼마나 비싼데.”

미영이 퉁명스럽게 말하자 해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고는 방바닥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건반을 누르듯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본 뒤로 미영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제 겨우 여덟 살이었다. 친구가 다니는 학원에 자기도 가고 싶다는 것이 무슨 잘못이겠는가. 그런데도 형편을 모르는 아이가 순간적으로 야속해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오늘 오후에는 피아노 학원부터 알아볼 생각이었다. 당장 보내주지는 못하더라도 학원비가 얼마인지는 물어보고 싶었다. 한길이 첫 월급을 보내오면 해나가 그토록 갖고 싶어 하던 피아노 가방도 사주고 싶었다.

한 집, 두 집.

미영은 익숙한 골목을 돌며 우유를 배달했다. 젖은 길을 조심해서 달리느라 평소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자전거 바퀴가 물웅덩이를 지날 때마다 긴 바지 아랫단에 빗물이 튀었다.

마침내 마지막 우유 한 팩만 남았다.

미영은 마지막 집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우유 주머니에 우유를 넣었다. 그러고는 빈 짐칸을 손으로 눌러 혹시 남은 것이 있는지 다시 확인했다.

방학 중인 아이들을 집에 단둘이 남겨두었다는 사실이 다시 마음에 걸렸다. 해나가 동생을 잘 챙기는 아이라고 해도 해나 역시 겨우 여덟 살이었다.

이제 집에 가면 된다.

오늘은 된장찌개에 두부를 넣어 아이들과 함께 아침을 먹고 싶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집을 잘못 찾아 헤매는 바람에 배달이 자주 늦어졌다. 집에 돌아가면 아이들은 이미 밥을 먹었거나 배가 고파 다시 잠들어 있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젖은 길 때문에 조금 늦어진 것 말고는 모든 배달이 순조롭게 끝났다. 지금 돌아가면 아이들과 따뜻한 아침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영은 자전거를 돌렸다.

해나가 된장찌개를 잘 먹어야 할 텐데. 별이는 두부만 골라 먹겠지.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자 집으로 향하는 마음이 급해졌다. 미영은 평소보다 힘껏 페달을 밟았다. 축축한 바람이 뺨을 스쳤다.

골목을 빠져나와 큰길로 접어드는 순간이었다.

멀리서 자동차 엔진 소리와 함께 뒤이어 날카로운 경적이 새벽의 정적을 찢었다.

미영이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젖은 도로 위로 흰 불빛 두 개가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급하게 돌아가는 핸들.

아스팔트 바닥을 긁는 타이어 소리.

미영은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움켜쥐었다. 자전거가 옆으로 기울며 중심을 잃을 때 짐칸에 얹혀 있던 빈 바구니도 도로 위로 떨어졌다.

무언가가 세게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모든 소리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미영은 차가운 도로 한가운데 서 있었다. 조금 전까지 들리던 바람 소리도,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 소리도 이상할 만큼 멀게 느껴졌다.

그녀 앞에는 자전거 한 대가 쓰러져 있었다. 찌그러진 앞바퀴가 허공에서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한 여자가 누워 있었다.

미영은 처음에는 그 여자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젖은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고 한쪽 신발은 멀리 벗겨져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도로 위에는 그 여자와 미영밖에 없었다.

미영은 홀린 듯 몇 걸음 앞으로 다가가, 그제야 여자가 입고 있는 옷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조금 전까지 입고 있던 겉옷이었다.

미영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분명 팔도 있고 다리도 있었다. 어디에서도 피가 나지 않았고 아픈 곳도 없었다.

그런데 도로 위에 쓰러져 있는 여자도 분명 미영이었다.

“아니야…….”

입술 사이로 가느다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때 도로 한쪽에 멈춰 선 자동차의 문이 열렸다.

차에서 내린 남자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쓰러진 미영에게 다가갔다. 몇 번이나 주머니를 더듬은 끝에 휴대전화를 꺼냈지만, 손이 너무 떨려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휴대전화를 주워 든 남자는 몇 차례나 화면을 잘못 누른 끝에 가까스로 119에 전화를 걸었다. 사람이 차에 치였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위치를 설명하는 남자의 손에서는 휴대전화가 금방이라도 다시 떨어질 듯 흔들렸다.

미영은 남자에게 다가갔다.

“이봐요. 운전을 어떻게 하셨어요!”

남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머리를 감싸 쥔 채 도로 위에 쓰러진 미영만 바라보고 있었다.

미영은 남자의 팔을 붙잡으려 다가가 잡으려던 찰나 손이 그대로 그의 몸을 통과했다.

미영은 숨을 삼켰다.

믿을 수 없어 다시 남자의 옷깃을 움켜쥐려 했지만 이번에도 손끝에는 아무런 감촉도 닿지 않았다. 분명 바로 앞에 서 있는데도 남자는 미영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멀리서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붉은 불빛이 어둑한 골목과 젖은 도로 위를 번갈아 비추며 가까워졌다.

구급대원들이 차에서 뛰어내려 도로 위의 미영에게 달려갔다. 한 사람은 호흡과 맥박을 확인했고, 다른 사람은 필요한 장비를 꺼냈다.

“의식 없습니다.”

짧고 다급한 목소리가 오갔다.

구급대원들은 미영의 몸을 들것에 옮겼다. 미영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구급차 문이 닫히는 순간, 미영은 자신도 모르게 차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구급대원들은 빠르게 응급조치를 하면서 환자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았다. 잠시 후 병원과 통화하던 대원의 얼굴이 굳어졌다. 응급 수술 인력이 없어 수용하기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곧바로 다른 병원에 연락했지만 이번에는 병상이 없다고 했다. 세 번째 병원에서도 당장 수술하기 어렵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좁은 차 안에서 의료 장비의 기계음과 전화 통화 소리가 뒤섞였다. 구급대원들의 손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지만, 미영의 몸을 받아주겠다는 병원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미영은 들것 위에 누운 자신의 손을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손은 아무런 저항도 느끼지 못한 채 겹쳐졌다가 그대로 빠져나왔다.

“저 아직 죽으면 안 돼요. 집에 어린아이들만 있어요.”

미영은 구급대원의 팔에 매달리려 했다. 하지만 손은 그의 몸을 통과할 뿐이었다.

곧 잠에서 깰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해나는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릴 것이고, 별이는 배가 고프다며 울 것이다. 냉장고 안에는 두부가 있었지만 아이들끼리 불을 켜게 할 수는 없었다. 아침밥도 차려놓지 않고 나온 일이 이제야 후회됐다.

구급차는 젖은 도로를 가르며 다음 병원을 향해 달렸다.

들것 위에 누운 미영의 얼굴에서 조금씩 온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빠르게 울리던 기계음 사이의 간격도 점점 길어졌다.

미영은 자신의 몸이 아주 깊고 어두운 물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 잠든 해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엄마 다녀올게. 해나야, 별이 잘 보고 있어.’

자신이 아이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왜 여덟 살짜리 아이에게 동생을 맡기고 문을 나섰을까.

오늘 아침 문 앞에서 분명 발걸음을 멈췄었다. 아이들을 깨워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옆집에 부탁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도 금방 다녀오면 된다고 자신을 달랬다.

삐——.

길게 이어지는 심정지를 알리는 기계음이 구급차 안을 울렸다.

구급대원들이 미영의 몸을 둘러쌌다. 한 사람은 가슴 압박을 시작했고 다른 사람은 다급히 필요한 장비를 준비했다.

미영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뒤로 밀려났다.

스스로 물러선 것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힘이 그녀를 구급차 밖으로 밀어내는 것처럼 몸이 점점 멀어졌다.

미영은 들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구급대원들의 모습도, 자신의 몸도 점점 희미해졌다. 낯선 어둠이 발밑에서부터 천천히 차올랐다. 어느 쪽이 위이고 어느 쪽이 아래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때 어둠 너머에서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엄마를 찾는 아이의 목소리였다.

해나의 목소리인지 별이의 목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신을 부르는 아이들의 소리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미영은 어둠을 등지고 달리기 시작했다.

발밑에 길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아무리 달려도 제자리인 것 같았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멀어질 때마다 미영은 더 힘껏 발을 내디뎠다.

달릴수록 어둠은 깊어졌고 숨이 차지는 않았지만 가슴이 조여왔다. 이대로 아이들의 목소리를 놓치면 다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 눈앞에서 어둠이 걷혔다.

미영은 자신이 살던 단칸방 앞에 서 있었다.

닫힌 방문 너머에서 별이가 울고 있었다.

“언니, 엄마 언제 와?”

“금방 온댔어. 엄마가 금방 온다고 했어.”

해나는 애써 씩씩한 목소리로 동생을 달랬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도 울음이 묻어 있었다.

미영은 다급히 문고리를 붙잡으려 했지만 손이 문고리를 그대로 통과했다.

“엄마 왔어. 문 열어봐.”

미영은 방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하지만 손바닥은 문을 통과할 뿐 아무런 소리도 만들지 못했다.

그때 방 안에 있던 해나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별이도 울음을 멈추고 언니가 바라보는 곳을 따라 방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미영은 숨을 죽였다.

해나는 한동안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들은 것처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울음을 터뜨리는 별이를 품에 안았다.

“울지 마. 엄마 금방 올 거야.”

미영은 문 앞에 주저앉았다.

아이들이 바로 저곳에 있는데 손을 잡아줄 수도, 눈물을 닦아줄 수도 없었다.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아이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제야 미영은 비로소 알았다.

자신은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이들 곁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미영은 아이들을 만질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