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은 술이 덜 깬 상태로 눈을 떴다.
어젯밤에는 얼마나 마신 것일까. 머리가 깨질 듯 아팠고 입안은 바짝 말라 있었다.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은 그는 한참 동안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낯선 나라의 뜨거운 아침이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온 햇빛은 이른 시간부터 따갑게 내리 꽂혔다. 멀리서 공사 차량이 움직이는 소리와 현장 인부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길이 이 낯선 곳에서 하루하루를 견딜 수 있는 이유는 한국에 있는 미영과 두 딸 덕분이었다.
예전의 한길은 제멋대로 살았다.
온라인 게임을 구해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기 일쑤였다. 일정한 수입도 없이 친구들과 어울렸고,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미영이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을 걱정하는 말조차 잔소리로 들리는 날이면 욱하는 성격을 참지 못하고 심하게 다투곤 했다.
한길은 젊은 나이에 부모를 잃었다. 누군가에게 남편으로 사는 법도, 아버지로 바카라임을 다하는 법도 배우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것이 미영과 아이들을 힘들게 한 변명이 될 수는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몇 달 전이었다.
술을 마시고 늦게 돌아온 어느 새벽, 한길은 집 앞 골목에서 자전거를 끌고 나가는 미영을 보았다. 자전거 짐칸에는 우유팩이 가득 실려 있었다.
처음에는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미영은 잠시 망설이다 생활비라도 보태려고 새벽 우유 배달을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매달 생활비가 턱 없이 부족해서 아이들 학용품과 반찬값이라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미영의 바지 아랫단은 새벽이슬에 젖어 있었고, 자전거 손잡이를 잡은 손은 차갑게 얼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한길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미영이에게 소리를 버럭 지르기만 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동안 미영은 어두운 새벽길을 자전거로 돌고 있었다. 자신이 편하게 잠들어 있는 시간에 집집마다 우유를 배달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었다.
미영이 힘들게 살아온 시간과 자신이 허비한 날들이 끊어진 필름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대로 살다가는 정말 곁에 아무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더 늦기 전에 달라져야 했다.
한길은 건설회사 본사에서 일하는 친구 성군에게 연락했다. 무슨 일이든 할 테니 일자리 하나만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성군의 도움으로 해외 건설 현장의 일자리를 구했고, 제대로 된 계획 하나 세워본 적 없던 한길은 그렇게 낯선 나라까지 오게 되었다.
일을 시작한 지도 벌써 한 달이 되어가고 있었다. 며칠 뒤면 첫 월급이 한국에 있는 미영에게 들어갈 터였다.
‘이번에는 달라질 거야.’
한길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족을 위해 일을 시작했다고 해서 오랫동안 몸에 밴 습관까지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일이 힘들거나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여전히 술부터 찾았다. 어젯밤에도 딱 한 잔만 마시려다가 빈 술병을 여러 개 만들고 말았다.
그는 세면대의 찬물로 얼굴을 씻었다. 거울 속에는 충혈된 눈과 거칠게 자란 수염이 보였다.
술부터 끊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다짐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숙소 밖으로 나오자 주임이 한길을 발견하고 손을 들었다.
“강 씨, 어제 또 마셨지?”
“잠이 안 와서 조금 마셨습니다.”
“조금 마신 사람 얼굴이 아닌데. 술 좀 줄여. 그러다 큰일 나.”
한길은 알겠다고 짧게 대답했다. 주임의 걱정이 잔소리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자신도 이제는 몸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침 업무 지시를 듣는 동안에도 마음은 한국에 가 있었다.
같이 있을 때는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지 못했다. 미영이 밥을 차려주고 아이들이 자신을 기다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세상에 당연히 주어지는 것은 없었다. 낯선 나라에 홀로 떨어지고 나서야 한길은 자신이 누리던 일상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오늘 일이 끝나면 미영에게 전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해나에게는 피아노 학원을 알아봤는지 물어보고, 별이에게는 아빠를 보고 싶어 했느냐고 장난스럽게 물어볼 생각이었다.
계약 기간은 아직 이 년 넘게 남아 있었다.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딜지 막막했지만, 한길에게는 처음으로 이루고 싶은 계획이 생겼다. 딸들이 함께 쓸 수 있는 작은 방과 부부 방이 딸린 집을 마련하고 싶었다. 해나에게는 바카라상과 피아노를, 별이에게는 예쁜 침대를 사주고 싶었다. 미영에게는 제대로 된 화장대를 선물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미영에게 해주지 못한 것이 너무 많았다.
앞으로는 잘해주고 싶었다. 더 많이 아껴주고,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함께 지켜보며 나란히 늙어가고 싶었다.
그 모습을 상상하자 한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오전 작업이 시작되었다.
한길은 무거운 자재를 나르고 철골에 부품을 고정했다. 빔을 설치하는 일도 처음보다는 제법 익숙해졌다.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지만, 일을 마친 만큼 가족에게 보낼 돈이 쌓인다고 생각하면 견딜 만했다.
오전 작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사무실 쪽에서 주임이 한길을 불렀다.
“강 씨, 한국에서 전화 왔어. 빨리 받아봐.”
한국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 한길은 들고 있던 장갑을 벗어던지고 사무실로 달려갔다. 수화기를 들자 본사에서 일하는 성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길아, 너 한국에 들어와야 할 것 같다.”
성군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주임님께는 내가 말씀드렸어. 회사에서 비행기표도 준비해 줄 거야. 일단 짐부터 챙겨.”
“왜 그러는데? 집에 무슨 일 있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성군은 아이들이 아빠를 찾는다며 말끝을 흐렸다. 그 말이 오히려 한길을 더 불안하게 했다. 아이들이 보고 싶어 한다는 이유만으로 하던 일은 멈추고 한국으로 돌아오라 할 리가 없었다.
“성군아, 무슨 일이냐고.”
“일단 들어와. 자세한 이야기는 와서 하자.”
전화가 끊겼다.
한길은 수화기를 든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주임을 돌아보았다. 주임은 이미 무언가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시선을 피했다. 아무도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불길했다.
불안감이 목을 죄었다. 당장이라도 성군에게 다시 전화해 따지고 싶었지만 그럴 겨를이 없었다. 분명 집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이었다.
한길은 급히 짐을 챙겼다. 숙소로 돌아가 필요한 물건만 가방에 넣고 주임이 건네준 비행기표를 받았다.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도 성군에게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성군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혹시 아이들이 다친 것은 아닐까. 미영이 아픈 것은 아닐까. 온갖 생각이 떠 올랐지만 그 어느 것도 끝까지 상상할 수 없었다.
긴 비행 끝에 한국 상공으로 들어서자 착륙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한 달 만에 돌아오는 한국이었다.
하지만 한길의 가슴은 귀국의 기쁨으로 뛰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숨을 쉴 수조차 없을 것 같았다.
입국장 앞에는 성군과 그의 아내, 그리고 큰 매형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길은 그들 뒤를 살폈다.
해나와 별이는 보이지 않았다.
불안감이 확신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어디 있어? 도대체 무슨 일이야?”
성군은 대답하지 않고 한길의 가방부터 받아 들었다. 큰 매형도 한길과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일단 차에 타자.”
세 사람은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왔다.
차가 출발한 뒤에도 누구 하나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차 안에는 도로를 달리는 소리만 무겁게 이어졌다.
한길은 몇 번이나 성군을 재촉했지만 성군은 운전대만 붙잡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사람처럼 입술을 깨물었다.
한참 뒤, 큰 매형이 먼저 입을 열었다.
미영에게 큰 사고가 생겼다고 했다. 너무 놀라지 말고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한길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사고가 났다는 말 뒤에 무엇이 이어질지 묻고 싶지 않았다. 입으로 확인하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 될 것 같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차가 멈춘 곳은 병원 장례식장 앞이었다.
한길은 차창 밖에 적힌 글자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자신이 잘못 읽은 것이기를 바라며 몇 번이나 눈을 깜빡였다.
“왜 여기로 와?”
성군은 운전대 위에 두 손을 올려놓은 채 고개를 숙였다.
“미영 씨가 새벽에 우유 배달을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어. 구급차가 여러 병원을 돌았는데 수술할 병원을 제때 찾지 못했대.”
그 뒤의 말은 더 이상 한길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누가?’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이었다.
‘왜 미영이가?’
미영에게 우유 배달을 그만두라고 몇 번이나 말했었다. 새벽길은 위험하니 이제 자신이 돈을 벌 때까지만 기다리라고 했다. 하지만 미영은 아이들에게 들어갈 돈을 생각하며 또 자전거를 끌고 나간 것이었다.
원망할 수 없는 사람을 원망하는 말이 가슴속에서 터져 나왔다.
‘이 여편네야. 내가 하지 말랬잖아.’
그러나 그 원망보다 더 큰 것은 미안함이었다.
자신이 조금만 일찍 정신을 차렸다면 미영이 새벽길로 나설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가족을 제대로 바카라임졌다면 그날의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았다.
차에서 내린 한길은 휘청거리며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빈소 정면에 놓인 영정사진 속에서 미영이 웃고 있었다.
사진을 보는 순간 다리에서 힘이 빠졌다.
한길은 가까스로 벽을 붙잡았다. 사진 속 얼굴은 분명 미영인데, 자신이 알던 미영 같지 않았다. 며칠 전 전화기 너머로 들었던 목소리와 눈앞의 영정사진이 하나로 이어지지 않았다.
한길이 해외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느라 입관은 미뤄진 상태였다. 장례지도사는 아내를 마지막으로 확인하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길은 대답하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마주한 미영의 얼굴은 고요했다. 깊은 잠에 빠진 사람처럼 두 눈을 감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을 뜨고 왜 이제 왔느냐고 물을 것만 같았다.
한길은 미영 곁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며칠 전에도 통화했잖아. 해나 피아노 학원 알아본다고 했잖아.”
미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길은 떨리는 손으로 아내의 차가운 손을 감쌌다.
“미영아, 나 왔어.”
그 한마디를 내뱉자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한길은 이제야 첫 월급을 보내려 했다고, 아이들 방이 있는 집으로 이사하자고 말하려 했다고 속으로 되뇌었다. 미영에게 화장대를 사주고, 아이들과 함께 늙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혼자만의 계획으로 남았다.
빈소에는 한길의 누나가 상복을 입은 해나와 별이를 돌보고 있었다. 해나는 울음을 참으려는 듯 입술을 깨물고 있었고, 별이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다 이해하지 못한 채 언니의 옷자락만 붙잡고 있었다.
미영의 어머니는 딸을 먼저 보낸 충격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빈소 안에는 남겨진 사람들의 울음과 낮은 목소리, 분주하게 오가는 발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한길은 두 딸을 바라보다가 끝내 바닥에 주저앉았다.
미영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다. 이번에는 자신을 믿어도 된다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잘 살아보겠다고 마음먹은 시간은 너무 늦게 찾아왔다. 그 다짐마저 이제는 죄처럼 느껴졌다.
한길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몸을 웅크렸다. 참으려던 울음이 어깨를 세차게 흔들었다.
얼마나 울었을 까, 고개를 들어 영정사진을 바라보았다.
사진 속 미영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러나 눈물에 흐려진 한길의 시야에서는 그 웃음마저 금방 울음으로 변할 것 같았다.
그 순간, 아무도 듣지 못하는 목소리가 빈소 안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한길 씨, 우리 아이들 잘 부탁해요.’
한길은 이유도 모른 채 숨을 멈췄다.
무언가를 들은 것 같아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빈소 안에는 사람들의 흐느낌만 가득했다. 영정사진 속 미영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고 있었다.
그날 밤, 영정사진 아래에 놓인 촛불 하나가 바람도 없는 빈소에서 길게 흔들렸다.